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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권조 Sep 04. 2021

오늘의 성취 : 고양이 트리플 크라운

까망, 치즈, 쿠앤크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가끔 고양이가 맹하게 구는 영상을 보지만 겉모습을 보고 종류를 나누어 말할 정도는 되지 못한다.


어릴 적에는 고양이와 밀고 당기는 싸움을 하곤 했다. 어디에서 들었는지 고양이는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사람에게 관심을 준다더라 하는 상식이 있는 때문이었다. 그래서 길을 걷다 고양이를 마주치면 1초에서 2초 정도 눈을 마주쳤다가 고개를 휙 돌렸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내게 관심을 가졌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방법으로 지금껏 내게 관심을 보인 고양이는 단 한 마리도 없다. 그럼에도 이 밀당은 요즘도 벌어지곤 한다.


출근하고 퇴근하는 그저 피곤한 길에 약간의 성취감을 더하기 위해, 이번 도전은 '세 종류의 고양이 사진을 찍기'로 정했다. 왜 세 마리인가 하면 명쾌한 답은 없다. 굳이 사진을 찍는 건 '포켓몬 스냅'이라는 게임과 관련이 깊다.


스마트폰은커녕 조그마한 게임기도 없어 장거리 여행을 달래주는 건 휴게소 간이 서점에서 파는 잡지가 고작이던 때가 있었다. 그때 한 게임잡지에서 '포켓몬 스냅'이라는 게임을 소개했는데 꽤나 신선했다. 포켓몬을 포획하고 싸움을 붙이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게 전부라 했다.


끝내 해 본 적이 없어서 어떤 게임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재미있었을 테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담아 고양이 사진을 찍기로 했다.


머리로만 계획을 세우고 회사에서 돌아오는 길에 검은 고양이를 만났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곧장 사진을 찍었다.

편의점 앞에서 만난 까망

회사에서 어떤 성취감도 느끼지 못하고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오던 차에 반가운 만남이었다. 누가 두었는지 그릇에 담긴 먹이를 먹는 까망이었다.


옆을 걷던 때에는 관심도 없었는데 발을 멈추니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까만 턱시도를 입은 고양이 덕분에 마음이 조금 폭신폭신해졌다.


그다음 날에는 늦잠을 잔 때문에 택시를 타고 출근했다. 그런데 택시 창문으로 보니 실외기 위에 노란 고양이가 누워있는 걸 보았다.


사진을 찍으려고 했지만 핸드폰을 꺼낼 힘을 내지 못했다.


예상외로 장기 프로젝트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외식하면서 하얀 옷에 양념을 묻혀 기분이 가라앉던 차에 노란 고양이를 만났다.

게임이었다면 C 등급 정도의 사진이지 않았을까

노란 고양이는 나를 보고 도망쳐서 차 하나를 사이에 둔 나름 추격전이 벌어졌다. 사진을 찍겠다는 도전 때문에 가만히 쉬는 고양이를 괴롭힐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나름 인기척을 줄이고 살금살금 걸었다.

실패 2. 이번에는 D 등급 사진을 획득했다

노란 고양이는 이번에 포기할까 하는 마음에 돌아가다 운 좋게 사진을 건졌다.

"그래, 찍어라 찍어."

두 번째 사진을 찍으니 고양되는 기분이다. 고양? 고양.


운이 좋으면 세 번째 고양이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가장 빠른 길을 두고 옆길로 잠깐 샜다. 평소 고양이가 자주 다니던 길이었다.


그리고 펜스 너머로 고양이를 발견했다. 이번에는 두 마리. 심지어 한 마리는 새끼 고양이였다. 오며 가며 지나는 사람들에게 먹이를 자주 얻어먹더니, 새끼를 키우느라 그랬던 모양이다.

숨은 그림 찾기. 이 사진에서 고양이 두 마리를 찾으시오

젖을 문 새끼 한 마리와 머리를 핥아주는 얼룩 고양이를 보니 기분을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젖을 물리는 고양이를 직접 본 것이 처음이기도 했고, 이런 감정 또는 장면과 자주 마주치지 않은 때문이기도 했다.


이렇게 이번 도전은 성공! 드디어 성취가 1 더해졌다.


길을 걸으며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살피게 된 계기가 되었다. 어쩌면 골목골목에는 보다 재미난 탐구 대상들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비슷한 시도를 하시려거든 차 조심과 사람 조심을 잊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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