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글 Apr 25. 2024

 지구대 첫 방문기

스무살 딸내미, 인수증에 싸인하기

아이의 통금은 기본 10시

주 1회만 막차 타고 귀가가 허용된다.


내가 결혼하기 전까지 통금이 10시였는데

이십수년전의 규칙을 적용하기엔 시대적으로 조금 무리가 있어보이긴 하나

특별한 일이 있을 경우에는 시간을 늦춰주기도 했다.


올해 대학생이 된 딸아이는

몇번 귀가 시간이 너무 타이트하다고 했으나

그닥 투쟁까진 벌이지 않았는데,

놀라운건 동기들이나 선배들은 통금이 아예 없다고 했다.

대중교통의 막차를 타야 택시비를 쓰지 않으니

적정한 선에서 귀가 하거나

정 안되면 늦게 택시를 타고 귀가 한다고 했다.


나만 너무 고리타분한 엄마인가 ,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을 참 많이 풀어주는가.. 했는데






사건은

엊그제 일어났다.


첫 중간고사가 끝난 날,

8시반쯤,

시험은 잘 봤다고

밥먹고 술 조금 마시고 들어온다고 마지막 통화를 했다.


11시쯤 학교에서 막차가 있으니 

버스를 탔나 궁금해서 메세지를 보냈는데 보지를 않는다.

잠시 후에 전화를 했는데 받지를 않는다.

자꾸만 전화하는 엄마이고 싶지 않아서 한.. 10분쯤 후에 다시 걸어본다.

또 받지 않는다.

그때부터 가슴이 오그라들고 입술이 마르기 시작했다.


하필, 친정아버지의 시술로 

아이아빠는 병실에서 간병을 해야해서 집에 없었고

열댓번의 통화시도에도 아이는 받지 않았다.

막차를 탔다면 집앞에 내렸어야하는 시간은 이미 지났고

버스앱에는 더이상 도착 시간이 표시되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연락해볼 사람도 없고 

어찌된 상황인지 알 방법이 전.혀 없었다.


전화기에 아이의 번호가 뜬다.

낯선 남자의 목소리다. 

선배인가, 누구지... 

경찰관이라고 한다.

가슴이 철렁!

** 지구대라는 말과 함께 버스에서 잠이 들어 차고지까지 갔고 

지금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지구대라는 황당함보다 안도의 가슴을 쓸어내리고 

급히 집을 나섰다.

운전도 못하겠고 택시를 잡아 타고 

구가 다른 먼곳의 지구대를 찾아가는 길,

아이가 전화를 했다.


" 엄마~ 미안해...  "


눈물이 왈칵, 

스무해동안 단 5분도 내 눈밖에 내가 모르는 곳에 

나를 걱정하게 했던 적이 없는 아이였다.


시험을 잘 보고 싶어 이틀 밤을 세웠고

긴장이 풀어지고 술이 들어가고 

버스타기 전까진 정신줄을 잡고 있었겠지만

버스를 타니 졸음이 밀려왔겠지 

종점까지 가고 기사님이 신고를 하고

경찰관이 지구대로 옮겨와 보호하고 있었으니,

이 상황은 정말 하늘이 도와주셔서 이리 된거지

요즘 뉴스에 나오는 무서운 상황들을 보면

가방을 도둑맞고 폰을 뺏기고 

폭행을 당하고 어디론가 끌려가고

상상만으로 너무나 무서운 상황들이 얼마나 많은지....



지구대로 달려들어가니

종이컵을 손에 쥐고 가방을 끌어안고 반눈을 겨우 뜨고

엄마를 보더니 배시시 웃는다.


아이고, 이녀석!!!!!


인수증에 인적사항을 적고 싸인을 하고 꾸벅 인사를 하고

팔짱을 끼고 나왔다.

몸을 기대오는 아이에게서 익숙한 냄새가 난다.

내새끼...



타고 온 택시가 기다리고 있어서 

낯설고 캄캄한 밤, 다시 택시를 잡아야하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

집으로 오는 길, 

다행이다 다행이다를 수없이 되뇌이며

그새 또 잠든 아이의 손을 꼭 잡아본다.






다음 날,

아이는 찍소리 없이

위치추적 앱을 설치했다. 



작가의 이전글 너에게 쓰는 편지 29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