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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cd Aug 28. 2021

혼자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혼자 하기' 만렙의 고백



혼자인 게 뭐 어때서


새벽 5시 반. 평일 아침인 줄 알고 눈을 떴는데, 토요일일 때의 그 행복이란. 오늘은 마음껏 혼자여도 되는 토요일이다. 하기 싫지만 오늘 꼭 해야만 하는 회사 업무도, 누군가를 만나러 가야 하는 약속이나 어디를 가야 하는 그 어떠한 일정도 없는 토요일. 나 혼자만을 위한 온전히 자유로운 하루.


누가 '순도 100퍼센트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나는 바로 이 순간을 답하지 않을는지. 오늘 뭐 하면서 하루를 보내볼까, 이불속에서 미적거리며 비죽비죽 행복함이 입꼬리 사이를 새어나온다.


나는 어느 쪽이냐 하면,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혼자 있는 것을 별로 고통스럽게 여기지 않는 성격이다. 매일 1시간이나 2시간, 아무하고도 말하지 않고 혼자 달리고 있어도, 4시간이나 5시간을 혼자 책상에 앉아 묵묵히 글을 쓰고 있어도 별로 고통스럽다거나 지루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경향은 젊었을 때부터 한결같이 내 안에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中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다.

토요일 아침부터 향한 한 북카페에서 읽는 책.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문장들을 읽으며, 나도 문득 나에 대해 어딘가에 솔직하게 고백하고 싶어졌다.


소설가 하루키도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대. 묘한 동질감, 그리고 작은 위로.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래, 혼자를 좋아하는 것이 뭐 어때서.




유난히 내성적인 아이


나의 첫 <혼자>의 기억은 사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릴 적 혼자서 몇 시간이고 종이 접기나 만들기에 몰두하거나, 또박또박 열심히 일기 쓰고 조용히 숙제하던 기억이 나에겐 흔하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 애는 말이 좀 없어요', '너도 얘기 좀 해봐 OO야'라는 이야기를 숱하게 들었다.


초등학교 시절, 매년 담임 선생님의 한줄평에는 '조용하다', '자신감을 더 가졌으면', '차분한 모범생이다' 하는 나에게는 뻔한 말들이 늘 등장하고는 했다. 그 코멘트들의 공통점은 내가 내성적인 성격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냐를 제대로 생각해보기도 전에, 나는 그게 아주 큰 결함이라고 생각했다. 너무나도 고치고 싶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아서 스스로에게 화가 나는 그런 약점 말이다. 내성적이다라는 말은 곧 나를 욕하는 말과 같이 들렸다. 그 어떤 말보다 나를 속상하게 했다. 나는 분명 바뀌어 봐야지 매 해 노력하는데, 여전히 똑같은 평을 하는 사람들 앞에서 나 자신이 싫었던 것도 같다.


조금 다행인 건, 커가면서 내성적인 것과 쑥스러움이 많다는 것은 다른 것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 중에 1/3 정도는 내성적인 성격이며, 그건 타고난 기질과 같은 것이라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물론 나는 여전히 내성적이면서 쑥스러움 또한 많은 사람이기는 하다. 하지만 '안되는걸 그럼 뭐 어쩌란 말인가-' 하는 마음이 좀 더 자라나게 되었달까. 이제는 내성적인 나를 마냥 미워하기보다는, 그런 나도 좀 더 사랑해 줄 수 있는 근육이 조금은 생겼다.


그리고 그 사이에 사회생활의 짬밥도 나름 얻게 되었다. 하루키도 말한 것처럼, 나도 살다 보니 사람들과 적당히 잘 어울리는 법을 터득했다. 아직도 차분하다는 말은 늘 듣는 편이지만, 그래도 사람들 사이에 잘 섞여 들어서 무난하게 지낼 줄 안다. 남녀관계로 가보자면, 내가 이렇게나 처음 보는 사람과의 소개팅을 잘하는 사람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무엇보다도 혼자서는 절대 살아갈 수 없다는 그 진리 또한 깨치게 되었다. 사랑하는 가족과, 깊고 좁지만 소중한 내 인맥과의 만남들이 주는 행복에 대해서 감사할 줄 안다.




그런 너라도 괜찮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랑한다. 올해는   일부러 혼자 여행을 떠나기도 했고, 주마다 혼자서 조용한 북카페를 찾아가기도 했으며, 혼밥쯤은 그야말로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되었다.


좀 더 외향적이고, 늘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이나 혼자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으면, 그 좋은 곳을 혼자서 여행하면 무슨 재미가 있느냐고. 하지만 그들이 누군가와 대화하는 시간이나 활동적인 액티비티를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면, 나는 그 반대로 조용히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라고. 이제는 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타인과 얼마간이나마 차이가 있는 것이야말로, 사람의 자아란 것을 형성하게 되고, 자립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유지해나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내경우를 말한다면, 소설을 계속 써나갈 수 있는 것이다. 하나의 풍경 속에 타인과 다른 모습을 파악하고, 타인과 다른 것을 느끼며, 타인과 다른 말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님으로써, 나만의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는 것이다. ...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라는 것은, 나에게 있어 하나의 소중한 자산인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中


그게 나인거라고. 혼자 사색하고, 혼자 노는 것을 통해 스트레스를 푸는 모습이 누군가에겐 불쌍해 보일지 몰라도, 바로 그 면이 독특한 나라는 인간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하루키가 고맙다.


요즘 들어 막연히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있다면, 나같이 내성적인 기질을 타고난 사람들이 스스로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좀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 팁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현명함과 연륜이 쌓인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열 살의 소심한 나에게, 스무 살의 불안한 나에게, 그리고 서른 살의 여전히 고군분투하는 나에게. 막연히 듣기 좋은 위로가 아니라 이유 있는 힘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길.


이런 나여도 어쩌겠나. 이렇게 태어난걸. 이런 나로 태어난 것에도 분명히 내가 다 모르는 이유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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