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랑 똑같은 하루가 또 지나가네, 뭐 좀 스펙터클한 거 없나?.” 이 말을 우리는 종종 지루함이나 권태의
표현으로 쓴다. 반복되는 출근길, 반복되는 아침, 반복되는 저녁 식사. 그런데 정말 그럴까?
반대로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어제의 반복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시간은 흘러간 게 아니라, 쌓여 있는 중이다.
시간은 선이 아니라 패턴이다
우리는 흔히 시간을 이전→이후→다음의 직선 구조로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시간은 ‘반복’과 ‘리듬’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가 뜨고 지고, 몸이 배고파지고 다시 차오르고 , 일어나고 눕고, 숨을 쉬고, 말하고, 걷고, 기억하고...
삶은 선이 아니라 둥글게 돌아오는 반복의 집합이다.
루틴은 무의미한 습관이 아니라 의식적인 시간의 틀
루틴이란, 그저 정해진 행동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루틴은 ‘의미 있는 반복’의 의지적 설계다.
하루가 너무 휘발된다고 느껴질 때, 내 시간에 손잡이를 다시 다는 법은 이것뿐이다:
“의도적으로 반복할 무언가를 만들 것.”
루틴은 삶을 붙잡아주는 시간의 뼈대다. 그 뼈대가 없으면 시간은 쏟아지고, 그 뼈대가 있을 때 시간은 쌓인다.
철학자들은 왜 루틴을 말했을까?
하이데거
반복은 존재를 형성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반복하는 행위가 결국 ‘누구인가’를 결정한다.
파스칼
습관은 이성보다 더 깊다. 반복은 생각보다 먼저 작동하고, 더 오래 지속된다.
니체의 ‘영원회귀’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이 영원히 반복된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아야 한다.
이 말들의 핵심은 하나다. 루틴은 반복이 아니라 선언이다. 매일 반복되는 행위가 곧 내가 믿는 삶의 방식이라는 것.
루틴이 시간을 만들어 내는 방식
가만히 생각해 보자. 당신이 가장 기억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아마도
매일 같은 시간에 걷던 어른
자리에 앉자마자 펜을 꺼내던 선생님
책상에 앉을 때 커피를 올려놓는 사람
매일 아침 같은 인사를 건네던 동료
이름은 몰라도 루틴은 기억난다. 그만큼 루틴은 존재를 ‘형태’로 만든다. 반대로, 루틴 없이 휘발된 하루는
기억에도 남지 않는다. 반복된 행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시간 감각’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건 ‘바쁘다’는
착각을 부수고 ‘지금 여기’에 있는 나를 돌아보게 한다.
루틴은 철학이다
루틴은 성취를 위한 도구가 아니다. 루틴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나의 고백이다. 무기력할수록,
복잡할수록, 정신이 산만할수록 나는 더욱 단단한 루틴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 반복 속에서만
시간은 구조를 갖고, 구조가 있는 시간만이 기억될 수 있는 삶’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