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 유적에서 발견된 작은 뼈들이 들려주는 놀라운 비밀
오래된 영화나 드라마에서 로마 시대를 접할 때면, 으레 웅장한 콜로세움이나 화려한 황제의 연회, 혹은 장엄한 개선식 장면이 떠오르곤 한다. 하지만 그 찬란한 역사 뒤편, 로마의 평범한 서민들은 과연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오늘날 우리의 일상에 '김밥 한 줄'이나 '햄버거 세트'처럼 익숙한 '길거리 음식'이 과연 2천 년 전 로마에도 있었을까?
최근 스페인 마요르카 섬의 고대 로마 도시 폴렌티아(Pollentia)에서 발견된 작은 새 뼈들이 바로 이 질문에 대한 흥미로운 답을 내놓는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은 단서들이 고대 로마인의 식생활을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스페인 지중해고등연구소(IMEDEA)의 고고학자 알레한드로 발렌수엘라 박사팀은 기원전 10년에서 서기 30년 사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폴렌티아의 한 쓰레기 구덩이에서 놀라운 유물을 발견했다. 바로 유럽울새과인 노래지빠귀(Turdus philomelos) 뼈들이 대량으로 출토된 것이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국제 골고고학 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Osteoarchaeology)'에 실렸다.
고대 로마의 '패스트푸드점'과 간식의 흔적
폴렌티아는 로마가 기원전 123년 발레아레스 제도를 점령한 후 세운 도시로, 곧 마요르카 섬에서 가장 활발한 항구 도시로 성장했다. 20세기 초부터 이어진 발굴 조사 덕분에 공공광장, 신전, 극장 등 고대 로마 도시의 주요 구조물들을 우리는 오늘날 만날 수 있다.
이번 연구의 핵심 현장은 도시 중심부 인근, 약 4m 깊이의 오수 저장소다. 이곳은 다름 아닌 '포피나(popina)'라 불리던 서민형 소규모 음식점 근처에 자리하고 있었다. 와인이나 간단한 음식으로 가볍게 식사하던 장소, 오늘날의 가성비 좋은 '백반집'이나 '분식집'쯤으로 이해하면 될까? 이곳의 조리대에서는 도기 항아리(암포라)와 도기 조각, 그리고 포유류, 어류, 조류 뼈 등 다양한 쓰레기가 대량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노래지빠귀의 뼈였다. 다른 새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양이 발견된 것이다. 발렌수엘라 박사는 "노래지빠귀는 현대 마요르카 일부 지역에서 여전히 간헐적으로 식용되며 닭보다는 메추라기와 비슷한 맛을 낸다"고 설명한다. 상상해보라, 2천 년 전 로마의 골목에서 메추라기 숯불구이와 비슷한 고소한 냄새가 풍겼을지도 모른다.
발견된 뼈 분포 양상 또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연구팀의 정밀 분석 결과, 머리뼈, 흉골, 팔뼈는 많이 발견된 반면, 고기가 많이 붙은 다리뼈와 복부 부위 뼈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아래 그림은 오수 웅덩이에서 나온 노래지빠귀 뼈 분포를 색으로 나타낸 것이다. 색이 짙을수록 발견된 뼈가 많다는 의미다.
이러한 뼈의 흔적은 무엇을 의미할까? 바로 고기를 발라내고 남은 뼈들만 버려졌다는 명확한 증거다. 즉, 이곳에서 노래지빠귀 고기가 상업적으로 조리되고 판매되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어쩌면 오늘날 길거리 푸드트럭처럼, 갓 구운 지빠귀 꼬치나 간단한 고기 요리를 팔았을지도 모른다.
특히 일부 흉골이 제거된 흔적에 발렌수엘라 박사는 "가슴살을 평평하게 눌러 빠르게 조리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작은 크기와 간편한 포장을 고려할 때, 접시에 담아주기보다는 꼬치에 꿰어 '테이크아웃' 형태로 판매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조리와 소비 방식은 놀랍게도 오늘날의 길거리 음식, 즉 '패스트푸드'와 너무나도 닮았다. 연구진은 "고대 로마 도시에서 거리 음식은 일상생활의 핵심이었으며, 계절마다 다양한 재료가 빠르게 식단에 편입됐다"고 강조한다.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인간의 '빨리빨리' 식문화는 꾸준히 이어져 왔던 것이다.
귀족의 특식에서 서민의 한 끼로, 새가 바꾼 로마 식탁
고대 문헌을 살펴보면 노래지빠귀를 포함한 지빠귀과 조류는 주로 귀족 잔치에서 사용되던 고급 식재료였다. 로마의 부유층은 사냥용 그물이나 함정으로 지빠귀를 대량 포획하거나 심지어 사육하여 상업적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마치 오늘날 송어나 캐비아처럼 귀한 대접을 받았던 셈이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기존의 이러한 인식을 바꿔놓는다. 포피나 인근 오수 구덩이에서 다량의 노래지빠귀 뼈가 발견된 사실은, 이 작은 새가 단순히 귀족의 식탁만을 채웠던 것이 아니라 도시의 식량 경제에 깊숙이 통합되어 서민들의 일상 식단에도 널리 소비되었음을 보여준다.
2천 년 전 로마의 쓰레기 구덩이에서 나온 조각난 뼈들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바쁜 일상 속에서 허기를 달래기 위해 작고 빠르게 조리된 고기를 즐겼던 고대 로마 서민들의 삶의 한 조각을 생생하게 복원해주는 중요한 단서다. 우리의 부모님 키가 줄어드는 모습에서 세월의 흔적을 읽듯, 이 작은 뼈들에서도 2천 년 전 사람들의 삶의 애환과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역사란 어쩌면 거대한 유적 너머, 이렇듯 소박하고 일상적인 흔적들 속에 숨어 있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