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가져야 하는 것일까
어릴 적 우리는 '꿈'을 가지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습니다. 세상이 정해놓은 멋진 이름들, 선망받는 직업들이 텅 빈 우리의 미래를 채워주길 기대하며 열심히 달렸습니다. 그 길의 끝에 도달하기만 하면, 찬란한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었죠.
그런데 만약, 그토록 원하던 꿈의 정상을 밟았는데도 마음 한편이 서늘하다면 어떨까요. 모두의 박수갈채 속에서 홀로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다면요. 어쩌면 우리는 길을 잘못 든 것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그토록 좇았던 그 꿈이, 애초에 나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여기, 모두가 성공이라 부르는 삶의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은 한 남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김지훈(34) 회계사는 반듯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관리된 가르마, 고급 원단이지만 어떤 무늬도 없는 단색의 넥타이, 그리고 그의 책상 위 먼지 하나 없는 유리 표면까지. 그의 삶은 마치 잘 짜인 대차대조표 같았다. 왼쪽의 노력과 오른쪽의 성취는 언제나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었다. ‘국내 최고 회계법인, 최연소 파트너 후보.’ 신문 기사의 한 줄로 요약되는 그의 삶은 다른 이들에게 ‘꿈’ 그 자체였다.
하지만 정작 지훈 자신은 그 꿈속에서 자주 길을 잃었다. 아침마다 익숙한 무표정으로 운전대를 잡고 강변북로를 지날 때, 그는 생각했다.
‘이게 맞나? 분명 나는 내가 원했던 길을 정확히 걸어왔는데. 왜 아무런 감흥이 없을까.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하는데, 왜 나는 출근길이 조금도 설레지 않을까.’
그 공허함은 주말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며칠 전, 그는 이사를 위해 창고 깊숙한 곳의 묵은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대학 시절의 낡은 상자를 열었을 때, 잊고 있던 물건 하나가 툭, 하고 떨어졌다. 손때 묻은 낡은 스케치북이었다.
첫 장을 넘기자, 잉크가 번진 어설픈 풍경화가 나타났다. 강의실 창밖으로 보이던 벚꽃 나무, 동아리 방의 낡은 소파, 여행 가서 그렸던 바다. 잘 그리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그림들이었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기는 지훈의 손끝에 아주 오랜만에 어떤 온기가 느껴졌다. 목적도, 이유도 없이 그저 좋아서 그렸던 시간들. 그림 밑에 적힌 날짜들은, 그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계획 없이 흘러갔던 순간들이었다.
그날 저녁, 그는 대학 동기였던 수진을 만났다. 작은 공방을 운영하며 자기가 만든 가구들을 파는, 지훈의 삶과는 정반대의 궤도에 있는 친구였다. 값비싼 레스토랑의 음식을 앞에 두고 지훈은 무심코 스케치북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던 수진이 물었다.
“지훈아, 넌 회계사가 정말 되고 싶었어?”
“그럼. 어릴 때부터 꿈이었지. 안정적이고, 모두가 인정해 주잖아.”
지훈은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수진은 그런 그를 잠시 바라보더니, 부드럽지만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래? 남들이 인정해 주는 것 말고, 그냥… 네가 진짜로 하고 싶어서 한 건 마지막이 언제야? 돈이 되든 안 되든, 누가 알아주든 말든 상관없이 말이야.”
수진의 질문에 지훈은 잠시 멈칫했다. "무슨 소리야, 수진아. 지금 내가 하는 일도 다 내가 원해서 하는 거야. 힘들지만 보람도 있고, 성취감도 크고…" 그는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왠지 모르게 입안이 썼다. 수진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지훈을 지그시 바라볼 뿐이었다. 그 시선이 마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 느껴져 지훈은 불편했다.
값비싼 레스토랑의 화려한 조명 아래, 지훈은 자신의 대답이 마음에 걸렸다. '원해서 하는 일이라고? 정말일까?' 그의 머릿속은 왜인지 복잡하게 얽혔다. 레스토랑을 나서고, 익숙한 퇴근길 강변북로를 달리는데, 수진의 질문이 메아리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돈이 되든 안 되든, 누가 알아주든 말든 상관없이… 그는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 머릿속을 맴돌던 질문들이 하나의 거대한 망치처럼 그의 생각 한복판을 강타했다. 지난 10년간 그의 모든 행동에는 목적이 있었다. 학점을 위한 공부, 스펙을 위한 대외활동, 승진을 위한 야근. 곰곰이 생각해도 그냥 좋아서 해본 것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진심 어린 소망 같은 추상적인 단어는 그의 대차대조표에 들어설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지훈은 자신의 집이 낯설게 느껴졌다. 모델하우스처럼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돈된 공간. 하지만 그 어디에도 ‘김지훈’이라는 사람의 색깔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겉만 번지르르한 유령처럼 자신의 집을 부유하고 있었다.
다음 날, 지훈은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의 큰 문구점을 찾았다. 그리고는 한참을 망설인 끝에, 가장 평범한 스케치북 한 권과 4B 연필 한 자루를 샀다. 퇴근 후, 그는 늘 가던 피트니스 센터 대신 공원이 보이는 카페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스케치북의 새하얀 빈 페이지가 그가 잊고 있던 어떤 가능성처럼 느껴졌다. 그는 어색하게 연필을 쥐고, 눈앞의 커피 잔을 그리기 시작했다. 삐뚤빼뚤하고, 명암도 엉망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지난 몇 년간 그 어떤 성공의 순간에도 느끼지 못했던 잔잔한 충만감이 밀려왔다.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목표도 아니었다. 그저, 아주 오랜만에 들어보는 자기 자신의 작은 목소리였다.
지훈의 이야기는 어떤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다. 그는 회사를 그만두지도, 화가가 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다만 그는 이제 막, 남의 꿈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쓸 첫 번째 문장을 시작했을 뿐입니다.
우리는 종종 '꿈'을 거창한 명사라고 오해합니다. 반드시 무엇이 되어야 하고, 세상의 인정을 받아야만 완성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관점에서 진정한 꿈이란, 그렇게 좇아가야 할 목표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활동에 몰두할 때, 혹은 아무런 목적 없이 고요히 나를 들여다볼 때,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발견되는 것'에 가깝습니다.
어쩌면 당신의 진짜 꿈은, 화려한 직업의 이름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동사의 형태를 뿌리로 두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는 것’, ‘음악을 듣는 것’, ‘대화하는 것’처럼 말이죠.
당신에게 조용히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심장을 뛰게 하는, 세상의 어떤 기준과도 상관없는 당신만의 ‘동사’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