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라는 삶의 과제,

행복한 삶은 증명되어야 가능한 것일까

by 사유의 공간

온라인은 거대한 행복 전시장 같습니다. 누군가는 눈부신 해변에서 칵테일을 즐기고, 누군가는 반짝이는 트로피를 들어 올립니다. 갓 구운 빵과 따뜻한 커피, 사랑하는 연인과의 저녁 식사. 우리는 스크롤을 내리는 것만으로 세상의 모든 행복을 실시간으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참 편리한 세상입니다. 하지만 문득 궁금해집니다. 수많은 좋아요를 받은 그 사진 속에서, 그들은 정말 사진만큼 행복했을까요? 어쩌면 우리는 언제부턴가 행복해지는 것보다, 행복해 ‘보이는’ 일에 더 능숙해진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우리도, 행복을 삶의 과제처럼 여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여기, 그런 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퇴근길 지하철, 수진은 습관처럼 인스타그램을 켰다. 입사 동기의 결혼사진, 선배의 승진 파티, 친구의 주말농장. 반짝이는 사진들을 넘겨볼수록 마음 한구석이 조급해졌다.


“다들 저렇게 잘 살고 있는데, 나만 불행한 것 같아.


이번 주말만큼은 뭐라도 해야 했다. 그녀는 SNS에서 가장 좋아요가 많았던 브런치 카페를 예약했다.


일요일 아침, 수진은 가장 아끼는 옷을 입고 그 카페로 향했다. 창가 가장 좋은 자리에 앉은 그녀는 팬케이크와 커피가 나오자마자 의식을 치르듯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가장 예쁜 각도를 찾아 수십 장의 사진을 찍고, 정성껏 보정했다. 사진 속 팬케이크는 실제보다 더 폭신해 보였고, 커피 위에는 따스한 김이 피어오르는 듯한 효과까지 더했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는 주말 브런치! #행복 #여유 #힐링”


게시물을 올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좋아요가 쌓이기 시작했다.


“우와, 부러워요!

“너무 맛있겠어요!


댓글이 달렸다. 수진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이제 정말로 행복한 브런치를 즐기기 위해 포크를 들었다. 하지만 그 사이 팬케이크는 차갑게 식어있었고, 커피는 미지근했다. 사진을 찍는 동안 음식의 가장 맛있는 순간은 이미 지나가 버린 뒤였다.
아쉬운 기분으로 몇 입 베어 물었을 때,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친구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사진 보니까 너무 행복해 보인다! 보기 좋다, 야.”


수진은 잠시 메시지 창을 바라보았다. 친구의 글자와, 눈앞에 식어버린 음식. 그 둘 사이의 아득한 거리감. 그리고 그녀는 꺼진 휴대폰 화면을 멍하니 바라봤다. 까만 화면에 비친 것은, 사진 속 웃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아무런 표정 없는 자신의 얼굴이었다.


한 손에는 식어버린 팬케이크 조각이 들린 포크. 다른 한 손에는 ‘너무 행복해 보인다’는 메시지가 떠 있는 휴대폰.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켜보는 텅 빈 표정의 나.
순간, 처음으로 이 모든 상황이 너무나 기묘하게 느껴졌다.


‘행복해 보인다’는 말. 어쩌면 자신은 그 한마디를 듣기 위해 이 모든 것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진짜 행복이 아니라, 행복해 보이는 연기.


그리고 그 연극의 대가는 눈앞의 차가운 팬케이크와 미지근한 커피, 그리고 지금의 비어있는 마음이었다.


수진은 조용히 SNS를 다시 열어, 방금 올린 게시물의 점 세 개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삭제’ 버튼을 눌렀다. 그녀는 비로소 허기를 느끼며, 차갑게 식어버린 팬케이크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수진의 텅 빈 브런치는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지 모릅니다. 우리는 행복을 느끼기 위해 행동하는 걸까요, 아니면 행복이라는 삶의 과제를 해치우기 위해 행동하는 걸까요?


타인의 ‘좋아요’가 나의 행복을 완성시켜 줄 수 있다고 믿는 한, 우리는 영원히 배고플지도 모릅니다. 식어버린 팬케이크처럼, 미지근해진 커피처럼, 진짜 맛봐야 할 삶의 순간들을 놓쳐버린 채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행복은, 해치워야 할 과제인가요, 아니면 주어진 선물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