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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 May 30. 2024

3. 실패한 술래잡기 놀이

아이스크림은 저 멀리 도망가버리고 이쑤시개는 애먼 데에서 잡히고.

사람 다섯, 여행 가방 셋, 휠체어 하나는 공항에서 빠져나와 하카타역으로 갔다. 우리 가족은 역 주변에 있는 이치란 라멘집을 찾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했다. 이치란 라멘은 맵기, 기름기, 면의 익힘 정도 등을 선택할 수 있다. 특히 기름기 농도와 소스 맵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게 어르신들 모시기 큰 이점으로 작용할 거로 생각했다. 일본 라멘은 대개 느끼하니까. 부모님이 나를 따라 할 것 같아서 나는 최대한 담백한 선택지를 골랐다. 어떤 선택을 하든 평소에도 일본 라멘을 잘 먹어왔던 터라, 내 라멘을 먹는 데에는 부담감 없이 없었다. 반면 부모님은...? 굳이 어떠셨는지 묻지 않았다. 한창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부모님 해외여행 십계명’을 거스르는 답을 들을 것이 자명했기에


나의 조합: 맛 기본, 기름기 담백, 마늘 한쪽, 실파 축하, 차슈 추가, 비밀소스 2배, 면 익힘 기본


뱃속에 연료를 가득 채우고 휠체어의 손잡이를 굳세게 쥐었다. 에너지가 ‘만땅’이라며 호기롭게 출발했지만, 숙소에는 겨우 도착했다. 날은 어찌나 덥던지, 인도의 턱은 또 어찌나 높던지. 나는 요령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빨리 바퀴를 굴리면 얕은 언덕배기 정도야 쉬이 올라갈까 싶어 달려 나갔다. 그랬더니 휠체어의 귀여운 앞바퀴는 턱을 오르지 못했다. 대신 토실한 남동생이 관성을 이기지 못한 채 앞으로 튕겨 나갔다. 하마터면 그의 멀쩡한 다리와 무릎마저 땅바닥과 인사시킬 뻔했다. 지나는 길목, 길목이 새삼스러웠다. 느닷없는 새로움에 지쳐갈 때쯤 숙소 앞에 도착했다.

우리는 호텔 직원들의 배려로 예상보다 더 일찍 입실할 수 있었다. 방에 여행 가방과 휠체어를 던지다시피 두고 바로 나왔다. 남동생은 일단 제 발로 보겠다고 했다.

- 오늘은 버스 타는 일정이 많으니 일단 걸어 다녀볼게.

 우리는 가벼움을 얻었으나 속도를 포기해야만 했다. 이미 여행은 기존의 계획과는 멀어진 지 오래였다. 우리는 욕심을 비우고 소화할 수 있을 만큼 다녀보기로 했다.

누가 그랬던가, 여행은 느림의 미학이라고.




첫 관광지는 모모치 해변이었다. 인공해변이라는 여동생의 짤막한 소개를 들었다. 남동생은 조금 둘러보더니, 이내 쉬겠다고 했다. 폭폭 발이 빠지는 모랫길을 걷기에 힘들었을 게다. 가족에게 민폐일 거란 생각도 했을 테다. 역시 센스가 좋은 여동생은 해변 초입에 있는 식당을 보더니 말했다.

- 그럼, 우리 저곳에서 일단 아이스크림을 먹자. 넌 여기서 쉬고 있어. 우리 다녀올 동안.

사이좋게 모두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아빠는 바닐라, 남동생은 초콜릿, 나머지 녹차.

아이스크림인데도 제법 시간이 걸렸다. 아빠, 남동생, 엄마 순으로 차례차례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나머지 두 개는 안 나오는 거다. 아이스크림을 직접 만들러 갔느냐란 상투적이고 흔한 말이 절로 나왔다. 기다리다 지쳐 물어보니, 들려오는 말은 품절이란다. 그냥 웃어버렸다. 야, 이건 오늘 이야깃거리 축에도 못 끼네, 라면서. 나는 빠르게 입맛은 거두고 눈 맛을 채우기로 했다.

입대신 눈과 몸이 한껏 시원했다. 청량한 바다 내음에 흠뻑 취했으니 나름 새옹지마라 해야 할까.




간단히 해변 구경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도심으로 돌아왔다. 캐널시티에서 열리는 분수 쇼와 시간이 맞아떨어져서 구경하기로 했다. 3분여 동안 물줄기들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이번 여행기간 동안 겪을 흥도 저리 높이 올랐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행이 끝난 후에는 모두 건강하고 안전하게 각자의 생활로 안착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잠시나마 빌어보았다.

저녁은 우리가 위치한 곳에서 제일 근접한 곳에 있는 모츠나베 식당으로 가기로 했다. 식당 예약을 별도로 하지 않아서 걱정했지만, 다행히 기우였다. 일정을 줄이니 밥시간을 일찍 맞이할 수 있었다. 우리는 바로 자리에 안내받았다. 이윽고 부추가 산더미같이 쌓인 냄비도 받았다. 물이 끓어오르고 엄마는 부추를 흩뜨려 놓으셨다. 엄마는 ‘겁나 험한 것’을 발견하셨다.

- 이것 봐라, 이쑤시개야.

처음엔 노란 것이 보이기에 부추가 심히 익은 줄로 아셨단다. 다시 보니 딱딱하고 끝이 뾰족한 그것이었다고. 나는 잽싸게 벨을 눌렀다. 그리고 말했다.

- We found it!

당황한 직원들이 저들끼리 속닥대더니 이내 새로운 냄비로 교체해 주었다. 냄비가 한 차례 바뀐 덕분에 우리는 허기진 상태에서 식사했다. 추가로 짬뽕 사리까지 주문해다 먹었다. 나름 흡족하게 냄비의 바닥을 보았다. (부모님은 숙소에 돌아와 햇반과 컵라면으로 해장하신 건 안 비밀이다.)




아빠의 목발 나사에서 엄마의 이쑤시개까지.(아이스크림 품절은 덤으로) 우리의 술래잡기는 가는 곳곳마다 이렇게 족족 실패였다. 그래도 가족과의 일화였기에 웃어넘길 수 있었다.

내일 우리 가족은 또 무엇을 놓치고 무엇을 얻으려나.

거기에서 뭔가 나왔다고, 겁나 험한 것이...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아쉽다. 말하기 바빴던 우리. "We found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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