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월간소비-1월, CD 플레이어

by nomad

이렇다 할 새해 계획을 세우지도 못한 채 열흘을 흘려보냈다. 적어도 작년까지는 지키지 못할 약속이라도 세웠던 것 같은데. 그 와중에 계획을 앞지른 것이 하나 있었나니, 놀랍지 않게도 '소비욕'이었다.


몇 년 전에 기질 검사를 받아본 적이 있다. 결과지를 받아 든 상담 선생님께서는 내게 쇼핑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화들짝 놀라며 어떻게 아셨느냐고 여쭸다. 충동성이 높아서 내가 만일 남자로 태어났으면 술이나 도박에 쉽게 빠졌을 것 같단다. 다행이라 여겨야 할지. 아무튼, 덕분에 한동안 나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이냐고 묻는 이에게 한결같이 물욕이라고 답했다.

- 적재적소의 물건을 잘 구비하는 반면에 주머니에는 먼지만 쌓인다는 점.


화수분 같은 내 욕심이 2026년이 되었다 한들, 그칠 리가 없었다. 새해 기념으로 지난 한 해 동안의 일기를 들춰보며 행복했던 순간을 꼽아보았다. 다섯 손가락 안에 김동률 콘서트 관람이 있었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던 사연 많은 콘서트를 떠올리고 나니, 나는 엉뚱하게도 집에 잠들어있는 CD가 생각이 났다.


그래서-. “월간소비”의 첫 장은 CD 플레이어가 차지하게 되었다. 남편은 택배상자를 보자마자 나의 넘쳐나는 구매욕심에 핀잔 한 숟갈을 떴다.(다행히 바가지는 아니었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꿋꿋이 플레이어의 버튼을 눌렀다. 찰칵. 찰나의 공백이 지나가고 곧 음악이 울려 퍼졌다. CD를 일깨우니 잠들어있던 그날의 행복과 경이도 깨어났다.

거실을 메우던 한 곡이 끝났다. 잠자코 음악을 듣던 그는, 어디에 둘까, 라며 내 다음 고민을 거들어 줬다. 우리는 플레이어를 거실 한 귀퉁이에 두었다.




올해 계획이 하나 생겼다.

화면으로 덧입혀진 음악이 아니라, 귀로만 듣는 음악시간을 늘려나가기.

내 게으름이 얼마나 허락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계획이 아주 없지는 않게 되었다.


2026. 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