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D+72 (사라지지 않았던 것들에 대하여)
미루는 것은 좋지 않다. 그렇기에 바로 화면을 켜고 글을 써 내려간다. 사실 이 역시도 몇 번이고 밀려버린 페이지일 것임이 분명하다. 어찌 보면, 이는 여러 가지 핑계로 둘러 쌓였던 나 자신을 내려다보는 반성이자 참회, 그리고 회고일 것이다.
미룬다는 것은 게으르다는 것. 게으르다는 것은 나태함을 의미하며, 이는 결론적으로 시간의 무의미한 소모에 도달할 것이다. 지금의 나는 누구보다 긴 영겁의 시간 속에서 보이지 않는 곳까지 깊은 항해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무의미한 시간 소모의 촉진이 내가 수면 위로 떠올라 저 밝은 태양을 마주하는 것을 가속화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다만, 의미 없이 보낸 나날들의 끝이 반드시 맑고 깨끗한 하늘 아래라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그래서 다시 한번 무언가를 폈다. 무언가를 꺼냈고, 무언가를 썼다 지우며 가다 듬는다. 어쩌면 이 행위 자체가 무언가를 위한 수단이 아닌 나 자체의 형태를 바꿀지도 모른다는 자그마한 희망을 품고. 무언가를 써 내려가기 위해서는 쓰는 법을 알아야 한다. 그 방법을 알고 있다고 자신했던 과거의 나는 지금 나에게 너무나도 부끄럽고 초라한 모습이다.
그리하여 다시 한번 글을 썼다. 다시 한번 썼다 지우며 가다 듬었다. 그 이전에는 무언가를 꺼냈고, 무언가를 펼쳤다. 마지막으로는 그 무언가를 진심으로 삼켜냈다. 읽는다는 행위로. 내가 읽은 그 무언가는 절대 일반적으로 형용되는 '책'은 아니지만, 얼어있던 무언가를 녹이기에 충분했다.
나는 왜 무언가를 미루었는가, 그리고 왜 밀어냈는가.
그 끝에 나는 왜 미련했을까. 이러한 사유 혹은 회고는 내가 머물고 있는 영겁의 시간이 단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심해는 아니라고 언질 했다. 아, 내가 미루었고, 밀어내버린 그 어떤 무언가는 훗날 내가 마주할 저 밝은 태양이었음을.
사람으로 살아있다는 이유는 생각의 연결선을 어떠한 이유에서도 끊지 못한다는 것. 다만 나에게 있어서는 그 연결선 혹은 고리를 다른 무언가로 전환하거나, 새로운 무언가를 창출하는 것. 즉, 그 안에서 예상치 못했던 그 어떤가를 잉태 혹은 발견하는 것. 나의 삶의 목적성은 분명 그러했을 터.
허나, 언제부터 나는 목적보다는 결과에 치중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결과 없는 사유, 생각, 언행, 그리고 행동. 이것들의 존재를 스스로 부정하며 고독하게 저 먼바다 끝으로 헤엄쳐 간 것이 아닐까.
심해로, 해저로 스스로 어둠에 갇힌 채 내려가며 인지한 그 어떤 것은, 그 아래에는 무언가. '나'라는 오로지 개인적 주체가 그 어릴 적부터 쌓아 올린 그 무언가로 가득했다.
사소한 행복, 긍정적인 가치, 새로운 무언가를 학습했을 때 밀려오는 짜릿한 쾌감 등. 그동안 나는 왜 이것들을 미루고, 밀어내며 미련하게 살아왔는가.
이제는 다시 한번 올려다볼 필요가 있다. 수면 위로 올라 저 밝고도 높은 태양을 올려다보기 전에, 그 보다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갈 필요가 있다. 내가 미루고, 밀어냈던 것들. 그것들의 존재는 어떠한가, 그것들 아래로 더 깊이 내려가 마주한 그것들은 너무나도 밝고 따뜻했다.
말없이 하나 꺼내 고이 간직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이름 삼켜내고, 받아들였다. 이제 진정으로 무언가를 펴고, 꺼내고, 썼다 지우며 가다듬을 시간이 되었다. 나의 이 시작점이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지어질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