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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배 Apr 02. 2022

‘조명 전문가’에 대한 생각

이 세상에는 수많은 전문 분야가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교육 같은 곳이 바로 그런 ‘분야’입니다. 


눈을 조명과 관련된 분야로 돌려보아도 그렇습니다. 조명과 가장 밀접한 분야는 건설, 건축, 인테리어, 전기, 도시경관, 공공디자인, 조경 등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야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전문 분야로 인정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전문 분야로 자리를 잡았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이 세상에 건축이나 건설, 인테리어 같은 분야에 대해 “전문 분야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분야에는 모두 ‘전문가’를 교육시키고, 일정한 자격에 도달한 사람을 전문가라고 인정해서 자격을 부여하고, 전문가로 배출하는 ‘전문가 양성 시스템’이 있기 때문입니다. 


◆길고 어려운 전문가가 되는 길 


물론 “그런 전문가를 어떻게 교육하고 배출하는가?”라고 하는 방법론에 있어서는 분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합니다. 건축 분야에서는 대학교 교육 이수 - 일정한 기간 동안의 실무경력 쌓기 - 국가자격시험 응시자격 취득 - 국가자격시험 합격 - 건축사 면허 발급 같은 과정을 모두 정상적으로 통과한 사람만이 ‘건축사’라는 국가자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의료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의과대학교 합격 - 예과(豫科) 교육과정 이수 - 본과(本科) 교육과정 이수 - 의사자격고시 합격 - 의사 면허 취득 - 인턴 과정 이수 - 레지던트 과정 이수 - 전문의자격 이수 - 전문의자격시험 합격 - 전문의 면허 발급 등 매우 복잡다단한 과정을 장기간에 걸쳐 밟아 올라가야 비로소 전문 분야의 의사 자격을 인정받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과대학교를 합격하고도 족히 20년은 넘어야 전문의사라는 자격을 취득할 수 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길고 어려운 교육과정과 단계별 시험과정을 모두 통과해서 전문의가 됐다고 하더라도 실력이 없으면 그 세계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그저 그런 실력을 지닌 평범한 의사로 평생을 마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자격과 실력을 갖춘 위에 의사의 직업윤리까지 갖춰야 합니다. 아무리 국가가 인정한 의사자격증이 있고 실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의료계가 요구하는 직업윤리를 갖추고 지키지 못하면 의료계에서 ‘직업윤리 부족’으로 퇴출을 당합니다. 말하자면 의료계라는 사회에서 엉따를 당하거나, 축출당하는 것이지요. 


이와 같이 자격 취득 - 전문가다운 실력 배양 - 엄격한 직업윤리의 함양 및 실천을 요구하는 전문 분야는 비단 건축 분야만이 아닙니다. 


법(法)을 다루는 법조계, 기술을 다루는 건축계를 포함한 모든 공학계, 학문과 교육을 다루는 교육계와 학계, 취재와 보도를 통해 사회적인 사안(사안)에 대해 옳고 그름을 가르는 언론계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각 분야의 전문가를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 능력을 갖춘 능력 있는 사람인 동시에 투철한 직업윤리를 갖춘 인격자’로 대우하고 대접하는 이유도 ‘자격 - 실력 - 직업윤리’라는 3가지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고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예술 분야에도 ‘전문가’는 있다


어떤 분들은 종종 “예술 분야에는 이런 자격증 같은 것이 필요 없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예술이라는 분야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제로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더 엄격하고 철저하게 ‘자격’의 있고 없음을 따지고, ‘자격’을 기준으로 사람의 대접을 다르게 하는 곳이 바로 예술 분야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이 세상에는 글을 아주 잘 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글을 잘 쓴다고 해도 아무에게나 시인이나 소설가, 수필가라는 이름을 붙이지 많습니다. 시인이나 소설가, 수필가가 되려면 일정한 ‘등단과정’을 통과해서 시인, 소설가, 수필가로 세상 사람들과 문단(文壇)의 공식적인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정부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고 발행되는 문학잡지의 신인상(新人賞) 공모전에서 1등(장원)으로 당선을 하거나 ▲문학 잡지가 정해놓은 절차에 따라서 작품에 대한 심사를 거쳐 정식으로 추천(推薦)을 받거나 ▲일간신문사에서 실시하는 신춘문예에서 당선을 하거나 하는 3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를 통과해야 비로소 시인, 소설가, 수필가 같은 문학가나 작가의 반열에 오를 수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문학적 재능과 실력을 겨루거나 평가를 받아서 세상의 인정을 받아야 겨우 시인, 소설가, 수필가로 구성된 문단의 말석을 차지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게다가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서 등단을 하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요즘은 매년 변호사시험에 합격하는 사람이 2000명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시인이나 소설가, 수필가로 등단을 하는 사람은 문학상, 신인상, 문학 잡지의 추천, 신춘문예를 모두 다 합쳐도 1년에 30~40명이 안 됩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누가 시인이나 소설가 수필가로 등단할 확률이 변호사가 될 확률보다 50분의 1이나 66.6분의 1 정도로 훨씬 적습니다. 


그렇게 등단을 한 뒤에도 문학적 재능과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이름 없는 시인, 소설가, 수필가로 그치고 맙니다. 이런 식으로 어렵고 혹독한 등단 과정을 거치는 것은 미술가나 음악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예술가에게는 자격증이 없다”고 함부로 말할 일이 아닙니다. 


이렇듯 이 세상의 모든 중요한 분야에는 ‘전문가’라는 자격을 인정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야를 전문 분야라고 말하는 것도 사실은 이런  ‘전문가’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떤 분야가 전문 분야인가 아닌가를 구분하는 잣대는 ‘전문가’들이 있는가 없는가, 그리고 그런 전문가를 양성하고 자격을 갖춘 사람들을 ‘전문가’로 배출해내는 시스템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전문가들이 있고, 전문가를 배출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다면 그 분야는 ‘전문 분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일 그렇지가 않다면 그 분야를 ‘전문 분야’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전문가가 없는 전문 분야란 있을 수가 없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조명 분야는 어떤가요? 전문가나 전문가를 배출하는 시스템은 과연 있는 것일까요? 이제는 우리 다 함께 이 문제를 정면으로, 그리고 깊이 있게 생각해 보아야 할 때가 되지는 않았을까요? 

/글 : 김중배 [한국조명신문] 발행인 겸 편집인 


# 이 글은 [한국조명신문] 2018년 6월 15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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