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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배 Apr 02. 2022

‘좋은 뜻’이 만들어낸 ‘나쁜 결과들

#1. 지금으로부터 약 8년 우리나라 전체가 ‘무상 급식’ 논란에 휩싸였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교육감선거를 앞두고 일부 후보자들이 “내가 당선되면 초·중·고 학생들에게 ‘급식’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나 가정 형편이 좋은 학생을 구분하지 않고 똑같이 ‘무상 급식’을 실시하겠다면서 내세운 이유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만 골라서 ‘무상 급식’을 주면 이 학생들이 가난하다는 사실이 알려져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무상급식’ 논란은 ‘무상 급식’ 공약을 내세운 교육감 후보들이 대거 선거에서 당선되는 것으로 일단락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모든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무조건 무상 급식’이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그렇다면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눈치를 보면서 무상으로 급식을 받는 것을 막겠다”는 ‘좋은 뜻’으로 시작된 ‘무상 급식’이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진짜 도움이 되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무엇이었는가는 ‘무상 급식’이 시작된 지 몇 년 뒤인 2014년에 한 중학생이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글을 통해서 밝혀졌습니다.

2014년 당시 자신을 중학교 3학년이라고 밝힌 이 학생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무상 급식’이 전면적으로 실시되기 전부터 ‘급식 지원’을 받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학생이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치인들은 (선별적인 무상 급식을 하면) 무상 급식 혜택을 받는 아이들이 가난하다는 사실이 알려져 마음에 상처를 입으니 모든 학생에게 ‘무상 급식’을 하자고 했지만, 나는 좋아진 게 하나도 없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누가 (가정 형편이) 어려운지 친구들은 (이미) 알고 있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달라진 게 없습니다. (‘무상 급식’을 한다고 해도) 저는 (학교에서) 거의 점심 한 끼만 먹는데 급식 수준은 전보다 더 못해졌습니다. 


제가 ‘부자 아이들에게는 급식 지원을 하지 말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의 방과 후 학습비를 지원해달라’고 하면 염치가 없는 건가요? (만일) 그렇다면 가난한 저희를 위해 ‘무상 급식’을 했다고 하지는 말아주세요.”


#2. 몇 년 전 미국에서는 “미국 의류 업체들이 방글라데시 등 아시아 국가에서 OEM으로 생산해 수입한 옷들이 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어린이들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해당 업체들이 “비윤리적인 행동을 했다”는 비난을 받은 바 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미국 상원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아동들이 만든 제품의 수입을 금지한다”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렇게 하면 어린이들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문제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의류 공장에서 저임금을 받고 장시간 일하면서 ‘푼돈’을 벌던 방글라데시의 어린이들은 직장에서 쫓겨나 쓰레기를 줍는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심지어 일부 여학생들은 매음굴에서 ‘몸을 파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3. 1958년 4월 19일 아침, 중국의 수도 베이징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빗자루와 몽둥이를 들고 일제히 ‘참새섬멸작전’에 돌입했습니다. 


베이징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참새들이 많이 출몰하는 지역에 독극물이 든 과자를 뿌려놓고 다른 지역에는 총을 든 명사수들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베이징시뿐만 아니라 중국 전체가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참새섬멸작전’으로 인해 죽은 참새는 무려 2억 마리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이런 ‘참새섬멸작전’에 나선 것은 한 농부가 마오쩌둥 주석에게 한 장의 탄원서를 보내면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이 농부는 탄원서에 “참새들이 추수철에 벼 이삭을 쪼아 먹는 바람에 소출이 줄어든다”고 썼습니다. 


마침 전국의 쌀 수확량이 줄어든 것을 보고 그 원인을 찾던 마오쩌둥 주석은 이 탄원서를 보고 “벼 이삭을 쪼아 먹는 참새는 해로운 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중국 공산당과 정부에 ‘참새섬멸본부’가 설치되고 ‘참새소탕작전’이 시작됐던 것입니다. 


마오쩌둥 주석이 “참새는 나쁜 새”라고 말한 이유는 명백합니다. 농민들이 애써 재배한 쌀을 먹어치우기 때문이지요. 당시 중국 공산당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쓰촨성 농촌마을에 있는 참새는 320만 마리였습니다. 


참새 한 마리가 2.4kg 벼 이삭을 쪼아먹는다면 320만 마리의 참새가 총 7680만 톤을 먹게 됩니다. 사람 한 명이 1년에 240kg의 쌀을 소비한다고 봤을 때 참새가 먹어치우는 쌀이 중국인 3만2000명의 1년치 식량에 해당됐던 것입니다. 


그럼 이 ‘참새섬멸작전’으로 중국의 쌀 수확량은 증가했을까요? 늘기는커녕 참새소탕작전을 벌인 첫 해부터 쌀 수확량은 극심하게 줄어들었습니다. 


그 결과 식량 부족으로 굶어죽는 사람들은 늘어났습니다. 1958년 한 해 동안 굶어죽은 사람의 수는 172만 명으로 집계됐습니다. 1958년부터 1960년까지 굶어죽은 사람은 무려 4000만명에 이르렀습니다.

참새를 한꺼번에 잡아 없애자 해충이 늘어났고, 해충이 갉아먹는 벼가 갈수록 많아지면서 대기근이 몰아닥쳐 굶어죽는 사람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 ‘나쁜 결과’를 예상하지 못한 '좋은 의도'는 안 하니만 못해 


앞에서 예로 든 3개의 사례들은 모두 “좋은 뜻, 착한 뜻(善意)으로 시작했지만 그 결과는 더할 나위 없이 나빴다”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애초의 착한 뜻은 사라진 대신 오로지 나쁜 결과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한 일이 되고 만 것이지요.


하지만 사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좋은 뜻’이나 ‘착한 뜻’에서 시작한 일은 ‘그 결과도 당연히 좋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이런 지레짐작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대부분이 누군가를 고통으로 몰아넣거나, 불행하게 만들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매우 단순합니다. ‘좋은 뜻’을 내세우는 분들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아주 지엽말단적인 면만을 보고, 결과를 꼼꼼하게 예측해 보지 않은 채 ‘일’을 밀어붙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한 3개의 사례 말고도 ‘착한 뜻’을 내세워 시작했지만 결과는 참담한 비극으로 끝나고만 역사적인 사실들은 책 한 권에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차고 넘칩니다. 


그러면 이런 일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은 다음에 소개하는 한 줄의 문장을 기억하는 것으로부터 돼야 할 것입니다. 


제가 앞에서 2번째 사례로 들었던 ‘저임금 어린이 노동을 통해 생산한 제품의 미국 수입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미국 상원의 행위에 대해 영국의 미래학자 이언 앵겔은 자신이 쓴 책 ‘지식노동자 선언’에서 “지나친 감상주의는 반드시 역효과를 가져온다”면서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말이야 말로 요즘 우리 모두가 마음 깊이 되새겨야 하는 ‘금언(金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글 : 김중배 [한국조명신문] 발행인 겸 편집인. 조명평론가. 


# 이 글은 [한국조명신문] 2018년 10월 15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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