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중배 Apr 02. 2022

“조명이란 무엇인가?”

역사는 인류가 탄생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발생한 일들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그런데 이 역사 분야에는 아주 오래 동안 논란이 됐던 주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역사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입니다.


◆역사를 보는 세 가지 관점

 

이 논란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은 세 명입니다. 먼저 독일의 역사학자인 레오폴트 폰 랑케(Leopold von Ranke)는 “역사는 사료를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을 실증주의적 역사관, 객관주의적 역사관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역사가인 베네데토 크로체(Benedetto Croce)는 “역사를 기술하는 과정에서 부득이 역사가의 판단이 작용한다”면서 ‘있는 그대로의 역사’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을 상대주의 역사관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는 사이에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테드" 카(Edward Hallett Ted Carr)가 1961년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이 책에서 카는 랑케의 실증주의적 역사관과 크로체의 주관주의적 역사관을 모두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역사가는 사실(史實)만을 추종하는 노예도 아니며, 사실을 입맛대로 주무르는 주인도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역사가와 사실은 평등한 관계에 있으며, 그 한도 내에서 역사를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카가 추구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인 동시에, ‘늘 미래를 염두에 두고 이루어지는 대화’였습니다. 카는 "과거에 대한 이해는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고양시킨다"고 믿었습니다. 


이에 대해 데이비스는 “회의와 절망의 시대일수록 현재에 대한 그 자신의 이해와 미래에 대한 전망을 검토하여 제시하는 것이 한 사람의 역사가로서의 자신(카)에게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해석했습니다.


◆‘조명의 본질’에 대한 2개의 생각 


하지만 이런 ‘본질에 대한 논쟁’은 조명 분야에도 존재합니다. 그런 대표적인 이슈가 “조명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조명 디자인을 보는 시각에는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조명 디자인을 ‘조명 공학’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 관점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조명 디자인은 공간 안에 최적의 조명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철저하게 계산된 조명 공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조명 물리학에서 전기 공학, 건축 설계까지 모든 요건을 과학적, 공학적, 기술적으로 제대로 해결했을 때 좋은 조명 공간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조명 디자인을 말 그대로 '디자인'이라는 관점에서 보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조명 디자인은 공학이 아니다. 말 그대로 디자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이너의 주관적인 생각과 미적 감각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의 주장은 최종적으로 “조명 디자인은 예술과 같은 디자인의 영역이다. 그러니 조명 디자인 작품을 공학적인 시각으로 평가할 수 없다. 조명 디자인은 예술적인 활동으로서 자격증 같은 것도 필요 없다”는 주장으로 이어집니다. 


◆‘올바른 조명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 논란에 관한 진실은 무엇일까요? 과연 조명 디자인은 조명 공학, 조명 엔지니어링인 것일까요? 아니면 공학과 기술적인 토대는 필요 없는 예술의 분야일까요? 어쩌면 진실은 이 두 가지 주장을 모두 포용한 ‘제3의 길’에 있는 것은 아닐까요? 


말하자면 조명 공학이라는 기반 위에서 조명 디자이너의 창의성과 예술성이 최대한 발휘된, 사용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한, 최적의 조명 공간 환경을 설계하는 것이야 말로 제대로 된 조명 디자인은 아닐까요? 


실제로 조명 디자인은 조명 공학만의 영역도, 그렇다고 순수한 예술의 영역만도 아닙니다. 공학과 디자인이 만나 하나가 되는 세계입니다. 그리고 그럴 때라야만 최적의 조명 공간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우리가 이런 사실과 현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조명의 과학화, 공학화, 기술화, 전문화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럴 때라야만 공학을 기반으로 삼으면서도 예술성도 높은 조명 공간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야 말로 조명이나 조명 디자인이 앞으로 추구해 나가야 할 목표이자 과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글 : 김중배 [한국조명신문] 발행인 겸 편집인. 조명평론가.


# 이 글은 [한국조명신문] 2020년 1월 15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이미 시작된 미래, 2020년대의 10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