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느껴지고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것을 적어 내려가고 있을 뿐이다
처음 글쓰기라는 것을 시작한 때는 고2 때였다. 왜 그때 갑자기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 잘 모르겠다. 새 학기에 막 접어든 3월. 자세히는 기억에 없지만, 뭔가 나에게 느껴지는 대로 글로 적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무 정해진 바 없이 좋은 대로, 쓰이는 대로 글을 썼었다. 대부분은 한 토막의 짧은 글들이 가득했던 걸로 떠오른다.
그렇게 글을 쓰다 보니 원래 수학문제풀이로 덮여있거나, 이것저것 암기할 공부 내용들로 뒤덮여 있었어야 할 연습장이 글로 채워졌다. 솔직히 나 역시 놀랐다. 아무리 내 멋대로 쓴 글이라고 해도 ‘스스로의 의지’로 이 많은 글을 쓰다니... 그것도 뭔가 공부하기 위한 게 아니라, 내 안의 느낌과 생각을 표현해서 말이다.
그렇게 한 달 만에 꽤나 두꺼운 연습장 하나를 가득 채운 이후, 뭔가를 표현하고 해소하는 글은 이어졌다. 물론 잘 쓰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부정적인 면도 많았고 어리다 보니 당연히 어리석고 자기중심적인 면도 많았다.
요즘은 어떤가? 40대가 된 지금 내 생활에는 글쓰기가 있을까? 살아남아 있기는 하다. 내 안의 느낌들, 생각들을 표현하는 글쓰기는 가끔 떠오를 때면 짧게 써둔다. 흔히 혼자 운전을 하고 있으면 툭툭 떠오를 때가 많은데, 핸드폰에 음성인식을 켜놓고 생각나는 대로 큰소리로 외친다. 아무도 없는 차 안에서 핸드폰과의 대화가 시작된다. 글자를 잘 입력시키기 위해 혼자 천천히, 크게, 또박또박 발음하는 내 모습을 자각할 때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다.
그러다가 이 흐름이 최근에, 올해 하반기부터는 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업무적인 아이디어가 주를 이루었는데, 요즘에는 다르다. 일상을 겪으면서 드는 느낌들, 혹은 나름의 통찰들이 글로 많이 떠오른다. 업무를 위한 생각 정리와 할 일 목록인 글이 줄고, 내면의 글이 많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주제로 돌아와 보자. 그래서? 나는 왜 글쓰기로 돌아오는가? 사실은 잘 모르겠다. 마치 고2 때 별 이유 없이 글을 쓰기 시작한 나를 보고 놀란 자신처럼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글쓰기는 시간이 갈수록 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냥 써보라고 하면 그런대로 쓰이는 것이다.
뭔가 현실적인 이유도 찾아볼까? 나는 그렇게 계산과 실리에 밝은 사람은 아니다. 최소한 그것이 내 장점 같지는 않다. 그래서 첫 번째 이유로,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적인 계산들에 피로를 느끼고 거리를 두는 건 아닐까 싶다. 과한 압력이 느껴질 때 잠시 그곳에서부터 나와 압력을 빼주는 버튼을 누르고 싶어진 것이다. 그렇게 ‘딸깍’하고 버튼을 눌러 잠시 긴장도를 낮추는 것이다. 그러면서 기분전환도 하고 회복도 하는 도피처를 만들어둔 것 아닐까.
둘째는, 일상을 살다 지쳐서 객관적인 시각을 찾고자 할 때 유용하다는 것이다. 자연히 이 딸깍 버튼을 누르고 나면 좀 더 넓은 시야와 마음가짐으로 돌아올 수가 있다. 글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와 같다. 그저 느껴지는 대로 솔직하게 쓰는 일은 나에게 해소를 준다. 그러고 나면 자연스레 좀 더 두루 살피면서 생각할 여유가 생긴다. 자기중심적인 시야를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셋째는, 이제부터라도 살면서 경험한 느낌 자체를 온전히 표현해 남겨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추상적인 내면의 느낌들은 차분히 가라앉아 있으나, 분명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침전물들이 변화했음을 느낀다. 그것들을 이제는 의식밖으로 꺼내어 한번 표현해 보고 싶다. 그것들을 좀 더 밝은 빛에다 놓고 펼쳐보고 싶다. 그렇게 하면 뭔가 막연한 느낌이 점점 선명하고 명료해지지 않을까. 그리고 추가로 그것의 모습을 사람들이 어떻게 여길지도 좀 궁금하다.
사실 이런 이유들도 단지 하나의 생각일 뿐이다. 무슨 이유가 됐든 그냥 쓰고 싶어지면 쓸 뿐이다.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저 생각나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쓸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가볍게 쓸 때 내 마음도 편하고 말이다. 글을 읽게 되는 당신도 역시 편안함을 느끼기를 바란다.
어쨌든 글쓰기는 나에게 참 잘 맞는 도구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에게 말로 설명하는 것이 부족한 편인데, 글을 쓰고 정리하는 버릇이 생기면서부터 그런 부분이 많이 보완되었다. 글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깊이 생각하게 된다. 말과 다르게 그것이 종이에 남아서 휘발하지 않는 시각적인 물질로 남고, 그 결과물로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도 있고, 스스로의 행동과 생각을 제삼자의 눈으로 보며 개선할 수도 있다.
최종 결론은 이렇다. 사족을 붙이느라 뭔가 이유를 대며 뒷받침될만한 이런저런 구실을 찾지만 실상은 ‘모른다’는 것이다. 그냥 느껴지고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것을 적어 내려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꼭 왜?라는 물음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쓰기 시작했으며, 이번에는 글이 제법 길어질 것 같다는, 제법 오래갈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실제로도 꽤 오래 글을 붙잡고 쓰고 있다.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실컷 쓰면서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 보기로 마음을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