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력이 부족한 내면을 해독하기
나는 시작이 어려운 사람이다. 어려운 시작에 대한 핑계는 얼마든지 많이 댈 수 있다.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에, 체력이 떨어져서, 아니면 체중이 늘어서 몸이 무거워졌다 등등등... 뭔가 시작하고 행동하는 데 어느 때부턴가 시간이 걸린다. 특히 쉬는 날에는 따로 정해진 할 일이 없으면 부지런해지기 힘들다. 그냥 몸이 점점 쉬운 길을 향해 방향을 잡기 시작하는 걸까?
물론 앞에서처럼 많은 이유들을 방패 삼으며 언제까지고 버텨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적으로 일어나는 상태들을 잘 관찰해 본다면 어떨까? 그리고 가능하다면 부지런해지는 쪽으로 마인드를 바꿔보는 것이다. 사실 요즘 시행착오 끝에 몸의 ‘늘어지는 상태’를 나름대로 줄일 수 있었는데, 들어보고 괜찮다면 한번 실행해 보는 것도 좋겠다.
>>우리가 매일 겪는 시작의 어려움은 이렇다.
상황 1> 일어날 시간이지만 졸렵다. 내면에서는
-“졸렵다.”, “어제 좀 늦게 자서 그래. 조금 더 자야 개운할 거야. 좀만 더 자자.”
-“일어나기 귀찮다. 휴일인데 좀 더 자도 괜찮지 머.”
-“오늘은 좀 늦어도 되잖아? 친구니까 이해해 줄 거야. 급한일도 아닌데. 그리고 걔도 저번에 늦었다고.”
상황 2> 운동하러 가기 싫음
아, 오늘은 쉴까? / 좀 피곤한데./ 배부르니까 조금만 쉬었다가 하자./ 이것만 하고 가자./ 조금만 잘까? 자면 운동도 더 잘될 거야./ 저녁 약속 때문에 시간이 좀 애매한데? 내일 좀 더하면 되지./
상황 3> 설거지, 분리수거 등등 하기 싫음
-아 몰라 있다 저녁에 하자.
-미리 한다고 상주는 것도 아니고, 천천히 하면 되지 머
-있다가 저녁까지 먹고 한 번에 설거지하는 게 낫지
다들 머릿속에서는 이와 비슷한 말들이 왔다 갔다 할 것이다.
특히 ‘5분만 더’라는 말이 하루를 시작하는 첫마디인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위의 예시들은 흔히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리고 이것이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쯤은 서로가 백번공감할 부분이다. 우리는 모두 동지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단위의 싸움'을 응원하는 바이다. 어쨌든 우리는 매번 반복되는 일들을 꾸준하게 유지해 가면서 잘 꾸려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상황은 우리가 매일 같이 겪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항상 잊어버리면서도 다시 알게 되는 사실이 있다. 막상 시작하면 쉬워진다는 것이다. 그 시작의 어려움을 쓱 넘어버리고 나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사실 이미 시동이 걸린 행동은 그런대로 하게 되는 것들이다.
그럼 그 시작점에 놓인 허들을 어떻게 넘는 게 좋을까? 답은 간단했다. 질문 속에 답이 있었다. 아예 처음부터 시작점에 허들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시작점에 그 허들이 있음을 부정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 쉽게 넘을 수는 없을까? 허들 없이 시작할 수는 없을까? 고민한다. 하지만 그런 방법 따위는 없는 것이다. 시작하는 허들을 직면한다는 것은, 넘어서야 하는 힘듦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한 것이다.
잠에서 깨어 누운 채로 눈을 뜨면 당연히 계속 자고 싶다. 누워있거나 앉아있거나 하면 그 자세를 벗어나고 싶지 않다. 일어나는 게 이롭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 하지만 처음에 일어나는 데 필요한 의지와 스트레스와 애쓰는 그 순간이 부담된다. 그것이 싫으니 회피하고 싶다.
이 순간이 올 때 나는 요즘 마음을 달리 먹는다. 그냥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로 말이다. 스트레스는 절대 피할 수 없다. 힘이 드는 것도 당연히 피할 수 없다. “원래 처음은 그냥 잠깐 힘든 거야.” “당연한 거야. 일어나서 좀 움직이면 괜찮아져.”라는 식으로 힘든 채로 일어난다. 그냥 워낙 그런 거니까 받아들여라.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처음 행동에 강한 시동을 거는 것은 작은 차이지만, 결국 필요한 스트레스만을 받는 현명한 방법이기도 한 것이다.
시작하는 것은 아무리 부지런한 사람도 항상 힘들다고 말한다. 마라톤을 뛰는 사람들조차도 매일 뛰러 현관문을 나서는 것을 쉽지 않아 한다.* 다시 말해 이 감각은 익숙해지긴 하겠지만, 쉽게 넘겨내어 지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단지 빨리 떨쳐내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무라카미 하루키 p.75
올림픽 마라토너인 세코 도시히코와의 인터뷰 내용을 인용한다.
-"세코 씨 같은 레벨의 마라토너도 '오늘은 어쩐지 달리고 싶지 않구나. 아, 싫다. 오늘은 그만둬야지. 집에서 이대로 잠이나 자고 싶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당연하지 않습니까, 늘 그렇습니다!"
현대는 어느 때보다 보상이 빠른 사회다. 원하는 음식, 물건들.. 원하는 정보나 영상이 있다면 바로 찾아보고 구할 수 있다. 그 사실이 우리를 오히려 무기력하게 할 수 있다. 역사상 이렇게 빠른 반응이 오는 사회는 없었다. 어느 때보다 입력에 대한 출력이 빠르다. 자극은 커지고 빠져나오기는 힘든 구조인 셈이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은 여전히 즉각적인 자극도 적고 보상도 느린 편이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 속에 있던, 거기에서 오는 나름의 관성이 존재한다. 우리가 지구에서 살면 당연히 중력이 작용하듯이 말이다. 그러므로 이전에 비해 관성에서 벗어나는 힘이 더 요구된다. 잠을 자고 있으면 그 잠에 대한 관성이 작용한다. 유튜브를 보고 있으면 유튜브의 관성이, 공부를 하고 있으면 그것대로 계속하려는 힘이 작용한다. 집중하고 있으며, 그것이 나름의 가속과 탄력을 받아 해당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자고, 유튜브를 보고, 게임을 하는 등 특정 영역이 관성이 큼을 인정해야 한다. 좋은 기분이나 집중된 상태인데 그것을 깨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에 이르면 넘어야 할 허들은 제법 높아 보인다. 그리고 자세히 내면을 살펴보자. 그 허들을 유쾌하게 마무리 짓기를 원한다. 유튜브 영상 하나를 다 보고, 쇼츠 재밌는 걸 하나 다 보고 마무리 짓기를 원한다. 게임을 하면 이겨야지 막판이다. 안 그런가?
그러나 유쾌하길 바라는 것은 너무 과한 욕심이 아닐까? 빠져나올 때의 불쾌함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요즘에는 가능하면 일어나기 전에 생각을 하지 않는다. 생각 이전에 그냥 시동을 건다. 느껴지는 저항감이 관성임을 자꾸 몸에 체득시키려는 중이다. 밤새 꼬박 누워서 자고 있던 관성이 얼마나 강하겠는가? 당연히 바로 일어나기는 힘든 것이다. 어차피 아침에 일어날 때 몸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분비된다고 한다. 스트레스는 어차피 시작되었다. 그러니 기꺼이 끌어안는 편이 낫다. 그게 가장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어떤 시작이건 스트레스다. 정신적으로 그 스트레스를 기꺼이 받아들여보자. 시동을 거는 데는 힘 있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처음 자동차의 시동을 걸고 출발할 때도 에너지 소모는 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의 몸으로 시동을 거는 셈이다. 똑같이 순간적으로 큰 에너지가 소모될 수밖에 없다.
순간적인 에너지를 들여야 함을 자각하기 시작하면서, 좀 더 기꺼이 행동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작하는 자체에 초점을 잡아 바로 시작하다 보니 이후에 일을 진행할 때는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불필요한 힘을 빼게 되고 좀 더 작업이 수월하게 느껴졌다.
시동을 걸 때처럼 당연히 오는 스트레스는 기꺼이 받아들이자. 그리고 이외의 다른 스트레스 요인은 멀리해 보자. 이 의무적 스트레스를 담담하게 받으려면 몸을 잘 관리해 주는 게 유리하다. 체력이 낮아져 있거나 잠을 못 잤거나 불안하면 충분한 휴식과 회복이 먼저다. 결국 몸으로 힘들어 가면서 체득한 셈이지만, 스트레스도 쉼도 의도적으로 마주하는 편이 마음 편하게 사는 요령 같다.
매번 부지런함이 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설거지를 미룬다고 해서 당장 지구에 큰일이 닥치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예전의 나는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부지런하려고 들었다, 하지만 세상 피곤하다. 열심히 사는 것도 좋지만, 내일도 태양이 뜬다. 무엇보다 나는 좀 여유롭게 살고 싶다.
모두 잘하려는 것이야말로 바보 같은 짓이었다. 스트레스의 총량이 늘어나는 셈이다. 운영 능력을 기르며, 중요한 것을 정해 집중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자기 핵심에 부지런함과 적극성을 가지면 그 자체가 생활에서 활력소가 되어준다. 각자 부지런함을 가지고 싶은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타협의 목소리’를 알아채라. 순간적인 힘을 내어 집중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필자의 경우는 지금 글쓰기이다. 글 쓰는 일을 시간을 지키고 지속해 나가려고 한다.) 중요한 일에서 만큼은 타협하지 말라. 시작의 허들을 훌쩍 넘어버려라.
게으름이 일어나고, 그 게으름을 수용해서 하루를 보냈을 때. 아니면 순간적으로 부지런함을 잘 일으켜 하루를 보냈을 때. 이 두 가지의 극단적인 날이 있다고 보자. 멀찍이서 보면 인생에서 하루를 이렇게 살았던, 저렇게 살았던 사실 미세한 차이도 느끼기 어렵다. 그런 하루에 굳이 연연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게으른 감정을 느끼고 있는 그 순간을 멀찍이서 바라보고 있다면 참 우스운 일이다. 잠을 5분 더 잔다고 피로가 풀리기는 했을까? 집안일을 계속 미뤄둔다고 해서 마음 편하게 쉬기만 했을까? 운동을 하루 미루고 쉬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어떤 느낌이 드는가? 작은 차이로 인해 끌려갈 것인가 이끌 것인가가 달라진다.
그런 마음들에서 죄책감을 찾으려는 것은 아니다. 그냥 시간이 지나서 지금에 와서 보면 왜 굳이 그런 마음이 들었나 싶다. 시작할 때의 망설이던 순간은 잠깐의 지나가는 감정일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선택이 이쪽이건 저쪽이건 작은 파도에 지나지 않으니 편한 대로 사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고 본다.
하지만 내가 중요해서 하기로 정한 일만큼은 게으름이 들어도 타협하지 않고 단숨에 시작의 허들을 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침부터 몸을 일으켜 세우며 허들을 넘고, 커피를 한잔 마시고, 바로 책상에 붙어 앉아 정해진 시간만큼 엉덩이를 붙이고 무엇이든지 쓰고 또 쓴다. 시작점부터 놓인 허들이 제일 넘기 어렵다. 막상 넘어서고 가속이 붙고 나면 생각보다 그냥저냥 하게 된다.
그러니 시작의 허들에 속지 말자. 생각 없이 훌쩍 넘어버리고 어떤 일이 일어나나 잘 지켜보자. 생각보다 괜찮다면, 이제 속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스스로 속지 않기로 정하면, 극복은 시작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