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끊지 못해서 고민하는 그대에게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 '대성당'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은 술을 마신다. 책에는 알코올 중독자로 살았던 레이먼드 카버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열아홉 살에 결혼하고, 문학적 재능을 펼쳐 보이기 전에 일찌감치 두 아이의 아빠가 되면서, 레이먼드 카버는 가족을 부양하느라 여러 가지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그 와중에 작가로서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술이 그의 인생을 갉아먹었다. 삼십 대 초중반에 그의 알코올 중독 상태는 최악의 길로 접어들었다. 마흔을 앞둔 1977년, 레이먼드 카버는 실신한 상태로 몇 차례 병원에 실려 가면서 심각하게 금주를 결심하게 되었다.
'내가 전화를 거는 곳'은 알코올 중독 재활원에 입소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화자인 '나'는 밥을 먹지 않고 며칠째 술만 마시는 지경에 이르자 스스로 재활원에 입소하기로 결정했다. 알코올 중독 증상으로 손을 떠는 제이피,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진 타이니를 지켜보면서 화자는 자신에게도 이런 증상이 나타날까 봐 몹시 불안해한다. 또한, 자신을 재활원에 데려다준 후, 술에 취한 상태로 빗길에 운전하여 집으로 돌아간 여자 친구가 걱정스럽다. 여자 친구에게 당장이라도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화자는 두려운 마음에 전화를 걸지 않는다. 아내에게도 전화를 걸고 싶지만, 내가 전화를 거는 곳이 다시 재활원이라고 말하기가 꺼려진다. 화자는 재활원에서 만난 제이피의 사연을 들으면서 자신의 불안에서 잠시 벗어난다.
제이피가 알코올 중독에 빠지게 된 사연을 들어보면, 사실 어떤 계기 같은 걸 찾아볼 수 없다. 첫눈에 반한 굴뚝 청소부 록시와 결혼하여 아이 둘을 낳고 오손도손 사이좋게 지내는 중이었다. 퇴근 후 TV 앞에서 맥주를 마시던 평범한 일상이 그저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맥주 대신 진 앤 토닉을 마시기 시작했다. 딱히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또 그러던 어느 날 퇴근 후 집에 바로 가지 않고 술집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집에 와서도 술잔을 놓지 않았다. 그러다가, 술을 마시는 시간이 이른 오후로 당겨졌다. 결국 어느 날부터는 눈을 뜨자마자 아침부터 술로 목을 축였으며, 보드카를 용기에 담아 일하면서 하루 종일 술을 마시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록시와의 잦은 다툼이 몸싸움으로 이어졌다. 음주 운전으로 면허가 정지되고, 일하는 동안 사다리에서 떨어지는 등 제이피의 알코올 중독 상태가 심각해지자 장인이 제이피를 재활원에 입소시켰다.
제이피의 경우처럼 퇴근하고 집에 와서 간단하게 술을 한 잔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잠재적 알코올 중독자라고 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이렇게 잠재적 알코올 중독자인 상태로 지내는 것이 가능한데, 왜 또 다른 누군가는 이 단계를 넘어 심각한 알코올 중독으로 빠져버리게 되는 것일까. 술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리의 결핍을 채워주는 것일까. 술이 우리에게 주는 위안이 도대체 얼마나 큰 것일까.
가깝게 지내는 이웃이 있다. 이들의 이름을 제인과 찰리라는 가명으로 부르겠다. 우리가 어울리기 시작한 건 코로나 사태가 시작될 때쯤이었다. 물리적 고립으로 사람이 그리울 때였다. 집 뒷마당에 모닥불을 지피고 둘러앉아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게 큰 위안으로 다가왔다. 겨울 추위쯤은 아무렇지 않았다. 담요를 두르고 매운 연기를 코로 들이마시면서도 좋다고 앉아 모닥불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도란도란 이야기가 이어졌다. 술이 목으로 술술 넘어갔다.
술을 처음 마시기 시작한 게 이때부터라고 제인이 말했다. 일 년, 이 년 뒷마당에서 술을 마시는 횟수가 쌓여 갔다. 맥주만 마시던 제인이 어느 날부터인가 캔 칵테일을 마시기 시작했다. 칵테일을 텀블러에 부어 마셨는데, 물을 마시듯 텀블러를 가볍게 비우고 다시 술로 채웠다. 제인의 주량이 늘어나는 것이 눈에 보였다. 한 시간에 서너 캔을 비웠다. 어떤 날은 만나서 술을 마신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혀가 꼬이고 눈이 풀렸다. 만나기 전부터 술을 마신 상태였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나를 붙잡고 '네가 정말 좋아'라는 말을 스무 번도 넘게 하면서 놓아주지 않은 적도 있었다. 점점 제인과 술 마시는 자리가 불편하게 여겨졌다.
언제부터였을까, 제인이 늦은 오후부터 텀블러를 손에 쥔 채 포치에 앉아 있는 모습을 지나가면서 종종 보았다. 텀블러에 든 게 물인지 술인지 걱정하는 마음으로 쳐다보게 됐다. 제인에게 같이 놀자는 문자가 오면 우려하는 마음이 앞섰다. 제인이 얼마나 술을 마신 상태에서 문자를 보낸 건지 궁금했다. 제인이 정말 좋지만, 술 취한 제인과 대화를 나누는 건 즐겁지 않았다. 그래도 가끔 어울려 술을 마셨는데 어떤 날은 제인이 멀쩡했다. 제인과 달리 찰리는 술을 별로 마시지 않았다. 다정다감한 찰리가 종종 제인이 술 취한 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 봤다. 그런 찰리를 보자 술자리를 최대한 만들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처럼 자주는 아니지만 요즘도 제인과 찰리와 가끔 어울려 논다. 제인은 여전히 텀블러에 칵테일을 부어 마신다. 지난달에도 오랜만에 우리 집 뒷마당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함께 놀았다. 다른 이웃 커플도 초대한 자리였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커플이라 할 이야기가 많았다. 우리 집에 도착했을 때 제인은 이미 술에 취해 있었다. 누가 말을 시작하면 제인이 자꾸 중간에서 끊고 자기 이야기를 늘어놨다. 계속 그랬다. 모두 느릿느릿 이어지는 제인의 말을 듣고만 있어야 했다. 결국 이웃 커플이 집에 가야 한다며 일찍 일어났다. 제인을 제외한 모두가 불편한 마음으로 헤어졌다.
남편도 이날은 화가 좀 났는지 싫은 소리를 했다. 술에 취해도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던지라 제인의 생소한 모습에 둘 다 적잖이 놀랐다. 그리고 제인이 정말로 걱정됐다. 제인이 친한 친구라면 '너 점점 심해지고 있어. 술을 마시면 어떤 상태가 되는지 알고 있니? 이제 신경 써서 주량을 줄여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좋겠어?', 이런 말을 터놓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해 무척 답답했다. 다음 날 제인, 그리고 다른 이웃 한 명과 브런치를 먹으러 갔다. 제인이 내게 말했다. '우리 어제 정말 재밌었지?' 제인의 물음에 웃으면서 '응'이라고 얼버무리는 내가 가식적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답답한 좌절감이 몰려왔지만, 착하고 상냥한 제인과 즐겁게 떠들며 브런치를 먹었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일이 좀 더 힘들었으니 한 잔. 비가 오니 감상에 빠져 한 잔. 선선한 초저녁 바람이 좋아서 한 잔. 나를 화나게 하다니 한 잔. TV 드라마를 보면서 한 잔. 이 어려운 걸 해냈다니 한 잔. 그대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한 잔. 운동하고 한 잔. 불타는 금요일이니 한 잔. 토요일이니 볕 좋은 대낮부터 한 잔. 배가 고프니 한 잔. 잠이 오지 않으니 한 잔. 여럿이 모였으니 한 잔. 놀러 왔으니 색다른 풍경을 안주 삼아 한 잔.
혼자라도 괜찮소, 적적한 나를 위해 건배! 둘이면 오붓해서 좋소, 이야기를 나눠도 그만 나누지 않아도 그만, 이 순간 내 곁에 있는 그대를 위해 건배! 여럿이면 흥이 돋지, 슬픔도 두 배, 기쁨도 두 배, 사는 거 뭐 있나, 우리 모두를 위해 건배!
술이 있는 삶을 살고 있는 나는 잠재적 알코올 중독자다. 다행히 술이 내 삶을 해하고 있지 않다고 믿는 것은 나의 자만일까. 소주를 궤짝으로 사다 두고 마시는 친구나 매일 밤 맥주 서너 캔을 마시는 친구, 혹은 술을 한 번 마시면 취할 때까지 마셔서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알지 못하는 제인에 비하면, 내가 마시는 술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정말 그러할까. 제인은 잠재적 알코올 중독자와 심각한 알코올 중독자 사이 어디쯤 있는 것일까? 나는 또 어디쯤 있는 것일까? 취한 상태로 오랜 시간 즐겁고 몽롱한 기분을 유지하는 게 도대체 어떤 원리로 가능한 것일까? 어떻게 그렇게 끊임없이 술이 들어갈 수 있을까? 제인이 제이피처럼 되면 어쩌나? 설마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겠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삶을 나누던 내 가족과 친구들이 저 멀리 한국에 있기에 요즈음은 주로 남편과 둘이 술을 마신다. 호탕하던 술판이 점잖아졌다. 맥주를 하루에 한 병씩 마시다 보면 슬슬 지겨워진다. 그러면 와인으로 바꾼다. 맥주보다 도수가 높은 와인은 확실히 취기가 빨리 오른다. 요즈음에는 청량한 마가리타에 입문했다. 마가리타도 와인처럼 알코올 도수가 높다. 가끔 어디 놀러 가서 맛보는 위스키의 뜨거운 알싸함은 또 어떤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위스키에도 관심이 간다. 맥주를 마시는 것은 커피처럼 기호 식품을 즐기는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에 비해 와인이나 칵테일을 마실 때는 정말로 술을 마시는 것 같다. 한 잔만 비워도 기분이 들뜬다. 이렇게 계속 마시다 보면 알코올 의존도가 점점 높아질 수 있겠다는 경각심이 든다.
제이피나 이야기 속 화자 역시 처음부터 알코올중독자였던 건 아니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그려보던 그들의 미래에 알코올중독자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젊음과 낭만, 소소한 행복이 있던 일상에서 술은 그저 달콤한 기호식품일 뿐이었다. 술이 달콤함을 버리고 악으로 둔갑하지 않게, 소소한 행복을 좌절로 바꿔버리지 않게 경계하자. 젊음과 낭만이 추억 너머로 사라지고, 내가 딛고 있는 현실이 재미가 좀 덜 할지라도 술이 주는 달콤함을 과하게 섭취하지 말자. 남편 곁에 앉아서, 오붓하게 건배. 우리의 존재가 서로에게 달콤함이 될 수 있기를! 그래서 술이 주는 달콤함에 배고파하지 않기를!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