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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별 Toni Nov 02. 2023

영어 북클럽에서 원서를 읽는 이유

멱살 잡고 당신을 끌고  갈 북클럽 조력자들과 영어원서 읽어 보실래요?

  불같이 활활 타올랐다가 찬물 한 바가지에 냉큼 꺼져버릴 의지를 가진 자가 바로 나다. 작심삼일까지는 아니고 대략 작심 한 달이 평균 기록이다. 영어 공부 또한 마찬가지이다. 작심 한 달이 서너 번 정도 나를 찾아왔지 싶다. 그래서 얼떨결에 영어 원서 읽기 북클럽에 가입했을 때도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서너 번의 실패 끝에 회의에 빠져서인지, 나의 의지는 활활 불타오르는 대신 그저 작은 촛불처럼 일렁거릴 뿐이었다. 작심 한 달을 넘어 꾸준히 원서를 읽고 있을 나의 모습 같은 건 상상 밖의 일이었다.


  북클럽에서 익명의 사람들과 함께 원서를 읽는 게 도대체 어떤 식으로 나에게 영향을 미쳤던 것일까? 마술처럼 이상한 힘에 꾀인 듯, 한 달 두 달 원서를 읽어나갔다. 이제 더는 작심 한 달, 아니 작심 일 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평생 즐길 취미를 찾았다는 생각에 그저 흡족해하며 영어책을 읽고 있다. 물론 중간중간에 찬물이 한 바가지씩 퍼부어진 순간도 있다. 그러나 꺼지는가 싶던 촛불은 되살아나 따뜻하게 일렁인다. 작지만 단단한 의지가 촛불에 담겨 있다.


  북클럽에서 원서를 무작정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는 찬물에 연거푸 타격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제일 먼저 온 타격은 아무래도 나의 영어 실력과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내 영어 수준으로도 영어 소설 읽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정말 신이 났었다. 스토리마저 재미있으니,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그런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해석이 불가능한 문장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답답하지만 해결할 방법이 없어, 이해하지 못한 채 다음 문장을 따라갔다. 어쨌든 책의 마지막 장을 끝내고 나자, 첫 완독이 주는 환희와 뿌듯함에 마음이 벅찼다. 그러나 곧바로 심란해졌다. 이해하지 못하고 쌓아 둔 문장들이 내내 궁금했다. 완독했다고 말하지만, 과연 완독한 게 맞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책을 건성으로 읽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의적인 마음이 생겨났다. 원서 읽기를 통해 영어 실력이 얼마나 향상될 수 있을지 또한 의문이었다. 반신반의하면서 원서를 계속 읽어나가긴 했지만, 혼란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북클럽에서 책을 함께 읽을 때 고민하게 되는 또 다른 문제는 바로 책 선정이다. 북클럽에서 선정한 책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있다. 딱히 끌리지 않는 책을 한 달 동안 잡고 있을 때면, 시간 낭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한, 책과 별개로, 꾸려진 소모임의 분위기가 나의 성향과 맞지 않을 때가 있다. 너무 수다스럽고 밝아서 카카오톡 메시지가 끊임없이 울리는 소모임이 있고, 아니면 그 반대로 너무 조용해서 책을 읽고자 하는 동기부여가 덜 되는 소모임이 있다. 북클럽 멤버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몇 개 되지 않는다. 때로는 기대치 않게 운명적인 책을 만나기도 하고, 나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익명의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선택의 결과가 항상 좋을 수는 없다. 그저 책 한 권을 완독했다는 기쁨에 만족해야 하는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아쉬움이 남는다.


  영어로 책 한 권을 읽는 게 쉽지 않다. 답답하고, 짜증 나고, 끌려가는 느낌이다. 혼란이 마음을 들쑤신다. 그런데도 원서를 계속 읽을 수 있는 건 북클럽 때문이다. 남들이 읽으니까 일단 나도 따라 읽어 본다. 원서를 오랫동안 읽어 온 실력 있는 회원을 보면서 희망을 품는다. ‘나도 계속 원서를 읽다 보면 그들처럼 되겠지’,  나와 같은 처지의 신규 회원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그래, 나만 힘든 게 아니야. 일단 꾸준히 읽어 보자’.


  북클럽이라는 장치가 효과를 발휘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승리욕이다. 열 명에서 스무 명가량의 멤버가 함께 출발선에 선다. 낙오자로 찍히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강렬해진다. 가는 길에 찬물 한 바가지가 쏟아져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결승선에 서고 싶다. 한 달의 후반부에 접어들고 완독하는 멤버들이 하나둘 늘어나는 것을 보면 나도 얼른 완독 자 대열에 이름을 올리고 싶다.



  북클럽에서 완독만큼 중요한 게 인증이다. 한 달에 스무 번 인증하는 규칙이 나에게는 아주 유용하다. 게으르고 즉흥적인, 그래서 루틴 있는 삶과는 거리가 먼 내게 루틴이 생긴 것이다. 어떤 날은 한 시간 이상, 또 어떤 날은 십 분가량 책을 읽는 게 전부이지만, 매일 책을 읽는 습관이 결국 완독에 이르게 한다. 조각조각 내서 한 달 동안 모은 시간이 책 사이사이에 빼곡하게 쌓여 있다.


  북클럽은 완독을 위한 기술적인 장치에 가깝다. 그러나 정서적인 면에서 톡톡히 그 효과를 발휘한다. 회원들끼리 인증하면서 서로 완독을 응원한다. 인증을 미루고 싶은 날, 누군가의 인증 메시지를 보고 나면, 나도 스르륵 책을 펴게 된다. 인증과 더불어 책 이야기가 오고 간다. 가끔은 책 말고 사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한다. 익명의 사람들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드라마 한 편 보고 나서 나누는 수다가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듯, 책을 읽고 나서 나누는 책 수다는 언제나 활기차다. 익명의 멤버들과 나누는 정서적인 교감이 생각보다 진하다.



  북클럽에서 책을 함께 읽은 지 이 년이 다 되어 간다. 원서를 읽는 동안 여전히 어려운 문장과 만나면 어리둥절하다. 그러나 예전처럼 답답해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내가 소화할 수 있는 만큼만 얻어 가도 만족스럽다. 책을 읽는 동안 웃고, 울고, 고민하고, 성찰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애당초 목표였던 나의 영어 실력 향상, 그래서 영어 실력이 좀 늘었을까? 어휘력이 향상되었다. 그래서 영어 드라마를 볼 때 예전보다 더 잘 알아듣는다. 말하기의 경우에는 아직 체감되는 향상이 없는 것 같다. 어떤 날은 영어 말하기가 술술 풀리다가, 또 어떤 날은 머리가 먹통이 돼서 횡설수설하는 게 예전과 별로 다를 게 없다. 북클럽에서 읽는 책이 재미가 덜해도, 이제는 딱히 불만이 없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에 모험을 떠나는 마음으로 여러 소모임에 참여한다. 새로운 경험은 좋든 싫든 어쨌거나 신선한 자극이 된다.


  원서를 읽고 싶은 모든 사람에게 북클럽이라는 장치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모든 배움이 그러하듯 원서 읽기 역시 시작은 막연하고, 나에게 알맞은 방법을 찾아 나가는 게 쉽지 않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나에게 적합한 최고의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그 길고 힘든 여정에서 실패와 좌절이 몇 번이고 찾아온다. 이때 필요한 것이 끝까지 나를 응원해 줄 조력자이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묵묵하게 원서를 읽고 있는 북클럽 사람들, 우리가 바로 서로의 조력자이다. 서로 다른 목표를 가진 채 저만의 고충을 혹은 낭만을 담아 책을 읽고 있는 우리라는 존재 자체가 촛불을 밝혀주는 힘이다. 게으르고 변덕스럽고 외로운 존재인 나에게는 조력자가 절실하다. 거창함 따위는 필요 없다. 작지만 단단한 의지가, 비바람에도 끄떡없을 촛불이 하나둘 켜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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