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다시 프롤로그
도시의 한 복판 사거리에 지역 국회의원이 내건 현수막이 퍼뜩 눈에 들어온다. ‘전세사기 특별법 국회통과’. 민생을 챙기고 있다는 자랑인 것일까? 그동안 꾹꾹 깊숙이 눌러 숨겨두고 모른 척했던 어떤 감정, 슬픔인지 분노인지 모를 것이 튀어나와 격렬하게 나를 휘몬다. 결국 조그만 꼬투리를 도화선 삼아 눈물 콧물 쏙 빼며 한바탕 울고야 말았다. 손자가 겪는 일을 모르는 까닭에 딸의 속내 역시 알 수 없는 친정 부모님을 당황시키며.
1년이 지나간다. 이쯤이면 무엇인가 결론에 이르러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정부가 대책을 내놓고 건물은 정리가 되고 아들은 빈손이든 어쨌든 너덜 해진 마음을 추스르며 그 공간을 나설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아들이 살고 있는 건물은 이제야 경매에 들어갈까 한단다. 그사이에 야당은 급하게 ‘선구제 후회수’ 법안을 통과시키고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해 젊은이들을 다시 절망에 밀어 넣었다. 여야는 어찌어찌 다시 법안을 개정, 합의하고 조만간 법 실행에 들어간단다.
언론 보도된 대략 내용은 LH가 임차인들의 동의가 있다면 건물을 경매받아 임차인들이 10년간 무상으로 살게 한다는 것이 가장 큰 골자인듯했다. 이 지점이 눌러 참은 눈물을 쏟게 한 발화점이 됐다. 그 방에서, 10년, 서른이 마흔까지, 방이 아니라 감옥이지 등 등 떠오르는 단상들이 결국 나를 크레이지 우먼이 되게 했다. 어느 날 하루, 이성을 잃고 크게 울면서 ‘괜찮다 괜찮다’ 말하는 아들의 속울음을 들은 것 같았다.
뭐 좋은 일이라고,,,,,, 내 개인으로야 마음 아픈 일이겠으나 공유해서 결코 즐거움을 나눌 수 없다면 내 아픔을 전시할 일이 있나, 앞서는 부끄러움,,,,,, 이런 생각이 브런치에 글하나를 걸어놓은 채 다시 찾지 않은 이유였다. 사태를 알고 며칠, 절박했고 말을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으며 사람보다는 자판 두드리기가 편하리라는 생각이었으나 그 며칠이 지나고는 생각나는 대로 휘갈긴 글도 다시 펴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전세’ 혹은 ‘부동산’ 이런 단어만 보아도 가슴이 방망이 치는 시간을 보냈다. 현실을 외면하고 울컥 올라오는 순간을 큰 숨을 쉬어가며 지낸 시간, 지난 1년.
오늘 뉴스에서 여전히 젊은이들이 거리에 피켓을 들고 눈물을 찍으며 서있는 사진을 봤다. 내 아들이 몸은 저기 있지 않겠으나 같은 마음이겠다 싶어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무력함. 브런치로 다시 돌아온 이유이다. 무력함.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나 혼잣말로라도 나를 혹은 너희들을 위로하자, 하는 마음, 꾸미꾸미 눈물 흘리고 있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 믿는다.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