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늦된 사람 Apr 02. 2022

그만 나가주세요

부라보 아저씨 2

토요일 영업시간은 점심까지다. 오늘은 장날이라 모처럼 거리에 활기가 있어, 영업시간이 지나도 난장이 정리될 때까지 매장에서 시험 공부를 했다. (난생처음 도전하는 토익시험이 코 앞이라 마음이 이만저만 급한 게 아니다.)


한껏 술에 취한 부라보 아저씨가 들어오셨다.

중장비 관련 일을 하시는 부라보 아저씨는 일이 없는 날에는 항상(!) 만취해 계셨다. 오늘도 그런 날들 중 하루였다.


술에 취해 대부분 알아들을 수 없는 발음으로 말씀하셔서

나는 맥락으로 아저씨의 요구사항을 알아차려가며,

"정식, 포장해 드릴까요?"

라고 말했다.


그 사이, 가게 앞 난전 할머니께서 들어오셨다.

"할머니, 계란 후라이 추가하시겠어요? 500원이요?"

"그냥 정식 줘"


할머니와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저씨가 할머니가 앉은 식탁 위로 2000원을 던졌다.

(비틀거리며 주머니에서 꺼내다 보니 던져졌다.)


"할머니 밥값 내가 낼게"

어리둥절한 할머니가


"이거 고마워 어쩌노, 내를 알아요?"

"요 앞에 나물 파는 할매 아잉교?"




부라보 아저씨의 주사는 '돈을 쓰는 것'이다.

가격과 상관없이 돈을 더 내거나, 다른 사람의 밥값을 계산하거나, 어떤 때는 먹을 것을 사다주시기도 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가오나시'처럼, 그냥 돈을 낸다.


물론, 가져가시라 돌려드리고 설명하는 등등의 과정을 모두 거쳐봤지만, 술 취한 사람에게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저씨가 정가보다 더 낸 돈은 종이에 적어 계산대 옆에 붙여 놓고 부라보 아저씨의 선금으로 관리한다.


오늘도 그저 그런 날들 중 하나인 줄 알았다.

지난번에도 가게에 오신 다른 손님의 밥값을 계산하셨으니;;;


손은 주문을 처리하면서도 눈과 귀는 매장에 있었다.

만취 상태인 부라보 아저씨가 할머니에게 불편한 행동을 하지 않는지 살펴보았다.


아예 할머니 앞에 자리를 잡고 앉은 아저씨는 본격적으로 할머니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할머니의 나이와 호구조사를 마친 아저씨가 그 문장을 내뱉기 전에는 나도 그저 관찰만 했다!


"자식들이 뭐 한다고 엄마가 이 나이 먹도록 여기 나와 있게 하노"




"그만하세요. 할머니 식사하셔야 돼요."


할머니는 아저씨에게 고맙다고 하시며 식사를 시작하셨다. 지나가던 행인 1일뿐인 아저씨가 다짜고짜 할머니를 동정하는 행동이 불쾌한 것은 나뿐인 것 같았다. 당사자인 할머니는 오늘치 밥값을 아껴서 그것으로 된 것인지, 이만한 일은 신경 쓸 일도 아닌 것인지 기묘한 이 둘의 대화는 할머니의 식사 내내 이어졌다.


아저씨의 감정은 극으로 내달리더니 결국, 선을 넘었다.


"자식이 뭐한다고요? 이 XXXX들이!"


그만 나가주세요


"사장님, 그만하세요. 이제 나가 주세요."  


아저씨는 술 먹고 와서 미안하다며, 포장된 음식은 할머니에게 주라고 하신다. 안 가져가시면 환불해드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니

"알았어. 가져갈게. 못됐어"

"네. 안녕히 가세요."


저 혼자서 친절로 착각하고 남의 삶을 모욕하는 동정이었다. 아저씨는 단돈 5000원으로 누군가의 삶을 순식간에 평가하고 얼마의 우월함을 얻었다.  할머니는 아저씨의 호의 같아 보이는 동정을 요구하지도 않았지만,  거절하지도 않았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감정 따위보다 5000원의 실리를 얻은 할머니의 경지를 따르지는 못하겠다.


얄팍한 내가 살아온 지난날도 아저씨와 할머니의 삶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돈도 없고 배짱도 없지만, 이 가게는 내 가게니까 아저씨의 만행을 더는 지켜보고 싶지 않았다.  




 




**부라보 아저씨가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7color/26


매거진의 이전글 성실함은 기본값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