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늦된 사람 Apr 07. 2022

밥 먹을 땐...

점심_숨가쁜 마음에 쉼표를 찍는 시간

어물전 사장님은 장날마다 식사하러 오신다.

지난겨울, 영업시간 변경을 알려드렸더니 사장님은 어쩌면 당신도 이제 장날에 오지 않을 것 같다고 하셨다.


"이제 장사 정리하시게요?"

"아니.. 뭐.. 투자를 하나 했는데, 잘 될 것 같아서요."


사장님은 새로 론칭하는 화장품 회사의 비상장 주식을 사고, 지역 센터장을 맡으셨다고 한다. 전문 방문판매 사원들이 본사에서 내려와 본인은 신경 쓸 일이 없다고 하셨다. 베테랑 난전 상인인 어물전 사장님은 이곳 시장에서 수입도 꽤 좋은 편이시지만, 바깥일이라는 게 찬바람 견디고 뙤약볕을 견뎌야 하니 몸고생이 심하다. (참.. 세상, 쉬운 일이 없다.)

나는 사장님의 사업계획이 꼭 어디서 들어본 듯한 투자 실패 사례 같았지만, 진심으로 사장님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했다.


  


어물전 사장님이 친구와 가게에 들어오셨다.

함께 온 친구는 식사를 하셨다며 사장님만 주문하셨다. 주방으로 들어가 정식을 준비하는 동안, 매장에서 들리는 두 분의 대화가 심상찮다. 


"계속 기다리라고만 하면 답답하지. 답답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야."


늦은 점심을 먹는 사장님에게 친구는 쉴 새 없이, 답답한 심정을 내뱉는다. 아마도 겨울에 꿈꾸던 것들이 암담한 상태인 모양이다. 친구는 참고 참았던 말을 거르고 거르며 내뱉지만, 생선가시처럼 목에 걸리는 말들을 들으며 사장님은 꾸역꾸역 밥을 삼켰다.


    


불쑥 손님이 찾아왔다.

식당에 손님이야 당연히 '불쑥'일 텐데,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다 뒤를 돌아봤더니 사람이 서 있어 깜짝 놀랐다. 

덥수룩한 머리에 때에 전 옷이 눈에 들어왔다. 용도를 알 수 없는 효자손을 들고 있는 남자 손님이었다.

긴장 태세 돌입!


재고를 진열하는 용도로 냉장고에 넣어놓은 맥주를 꺼내신다.


"코드를 빼놔서 안 차가워요."

"괜찮아요. 정식하나 주세요."


술을 너무 많이 마시면 어쩌지? 효자손은 왜 들고 다니지? 

머릿속에는 이미 범죄 스릴러 영화가 상영 중이다. 

정식을 내려놓으며 매장에 둔 핸드폰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들고 주방으로 들어왔다.


"밥 하나 더 주세요."

아주 오랜만에 밥을 먹는 사람처럼 손님은 허기를 채웠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숟가락, 뚝배기 긁는 소리에 내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들이 멈췄다.

"조금만 더 필요하세요? 아니면 추가로 한 공기 필요하세요?

"추가로 주세요."


고봉으로 그득히 퍼, 상에 내려놓았다.


손님은 아무 일 없이, 식사를 마치고 가셨다.


 



상권, 메뉴? 가격?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40대~60대 남자 손님이 많이 오신다. 옷차림새, 말투 등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하나는 똑같다. 그릇을 야무지게 긁는다.

스윽-스윽

밥하는 사람인 나는 후루룩-국 넘기는 소리, 스텐 밥그릇 삭삭 긁는 소리, 뚝배기 바닥 국물까지 비우는 소리를 들으면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보상을 받는 기분이다.


직업도 벌이도 제각각이지만, 모두에게 공통된 한 가지.

삶이 참 고단하다는 것.

고단한 하루 중, 밥을 먹는다. 

꾸역꾸역 한 끼를 때우든, 허겁지겁 시간에 쫓겨 겨우 한 술 뜨든

먹기 싫어도 억지로 한 숟가락 넣든

밥 한 그릇에 숨 가쁜 마음에 점을 찍는다.

   

어물전 사장님의 투자 전망에도 효자손 손님의 하루에도,

밥 한 그릇만큼의 위로와 응원을 보탠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만 나가주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