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참 어렵다

내 가까이 있는 것들

by 쵸코 아빠

우리가 매일 아침처럼 받아 들고 있는 그 편리함 뒤에, 누군가는 밤을 건너야만 한다는 사실을 얼마나 자주 떠올릴까.


최근 새벽배송 서비스 중단문제로 사회 곳곳에서 반응이 터져 나왔다. 노동자들은 깊은 새벽마다 이어지는 고강도 작업이 건강을 위협한다며 묵묵히 견뎌온 목소리를 드러냈고, 소비자들 역시 익숙해진 편리함을 잃고 싶지 않다며 청와대 청원에 수만 명이 동참했다.

새벽배송은 어느새 우리의 삶 속에 깊게 자리 잡았다. 새벽 문 앞에 당연하다는 듯 놓여 있는 상자 하나는, 바쁜 일상 속에서 한숨 돌릴 여유를 만들어 주는 작은 안정이다. 그러나 정작 그 상자를 이른 새벽부터 준비하던 사람들의 얼굴과 숨결은 우리는 좀처럼 떠올리지 않는다.


일부 고급 주택단지의 사례는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택배 차량의 출입이 제한되어 단지 입구에 물건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고, 노동자들은 끌차에 물건을 싣고 집집마다 오가며 한참을 걸어야만 한다. 심지어 바닥이 상한다는 이유로 끌차 사용까지 금지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편리함을 누리는 우리는 그들의 땀방울에 감사하기보다, 편리함이 중단될까 봐 불안을 먼저 느끼며 ‘당연한 서비스’로 여겨 버린다.


이런 사회적 태도는 사실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반복된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는 부모가 평생 베풀어 온 사랑을 잊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잔잔하게 풀어냈다. “부모님의 평생의 은혜에는 감사하지 못하면서, 누군가 잠시 베푼 작은 호의에는 평생 은인이라 여긴다”는 대사는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남겼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이들의 마음에는 무심하면서, 잠시 스쳐 간 친절에는 과하게 마음을 빚진 듯 살아간다. 익숙함은 쉽게 감사를 삼키고,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고마움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성경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의 “범사에 감사하라”는 구절은 너무 자주 들려서 가볍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살아보니, 그 말이야말로 살아가는 데 가장 어려운 마음가짐인 것 같다. 우리는 감사보다 서운함이 먼저 떠오르는 세상에 살고 있다. 부모에게는 고마움보다 섭섭함이 앞서고, 이웃의 고단함에 감사하기보다 나의 불편함이 더 크게 다가온다. 내가 받은 것보다 내가 더 많이 줬다고 느끼고, 조금만 손해 봐도 억울함이 마음을 가득 채운다.


그렇게 우리 안에 쌓이는 작은 이기심들이 결코 작지 않은 결과를 만든다. 사회가 점점 각박해지는 이유는 큰 사건들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조금 더 이해하려는 마음을 잃는 순간들, 엘리베이터를 같이 탄 이웃에게 인사하는 순간 같은 작은 것들을 잊어가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의 온도도 서서히 식어가는 것은 아닌지.


가끔 내가 받은 따뜻함을 떠올려보면 참 부끄러울 때가 많다. 매일 새벽을 깨우며 우리의 하루를 가능하게 해주는 노동자들, 만날 때마다 밥값을 먼저 내주는 선배, 보잘것없는 내 글을 꾸준히 읽어주는 독자들. 이들은 특별한 호의를 베푼 게 아닐지 몰라도, 그 순간의 따뜻함은 분명 나를 덜 지치게 하고 덜 외롭게 한다. 그런데도 그런 마음을 너무 쉽게 당연하다고 여기며 살아간다.


익숙함은 감사를 흐리고, 익숙함은 마음을 둔하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의 편리함 뒤에는 누군가의 밤과 수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일, 그 작은 마음의 움직임이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린 따뜻함을 되찾는 첫걸음이 아닐까.


감사, 참 어렵다.

하지만 어쩌면 감사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늘 곁에 있었는데, 우리가 잠시 눈을 돌리고 지나친 것뿐인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그 마음을 바라본다면, 우리 삶과 세상도 조금은 더 따뜻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