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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저 Nov 27. 2024

[좋거나 나쁜 동재] 지우지 못한 주홍글씨를 짊어지고

드라마 <좋거나 나쁜 동재> 리뷰

※약간의 스포일러 주의!


반가운 장르의 등장, 블랙코미디 스핀오프


<비밀의 숲> 시리즈의 애청자로서, 배우 이준혁의 팬으로서 이 드라마를 오래 기다려왔다. 그래서 다소 편파적인 감상이 될지도 모르겠으나… 아무렴 어떤가, 오랜만에 너무나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났는데!


하지만 시리즈와 배우의 팬이라고 해서 서동재 캐릭터를 좋아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서동재는 그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싫어하는 캐릭터였고, 무엇보다 메인 정체성이 ‘비리 검사’인 서동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를 미화하는 건 아닐지 걱정하기도 했다.


그러다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1-2화를 본 그날, 모든 게 기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을 보면서 가장 먼저 한 생각은 ‘동재는 이거 하려고 아득바득 살아남았구나’였다. 시즌1에서는 작가가, 시즌2에서는 배우가 ‘죽여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다던 동재는 블랙코미디 스핀오프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이제까지 살아남은 것이다. 그만큼 블랙코미디라는 장르가 서동재를 주인공으로 불러오기에 아주 적절했다.



주인공인 서동재는, 


<비밀의 숲 1>에서는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며 주인공의 안타고니스트조차 되지 못한 조무래기 악당인,

<비밀의 숲 2>에서는 여기저기 대책 없이 찌르고 다닌 나머지 대체 누구에게 원한을 사서는 납치까지 당한 건지 몰라 주인공을 헤매게 만든,

그런 조연이다. 

바로 그 서동재가 주인공이 되어 돌아왔다. ‘이런 기분이구나, 주인공이 된다는 건!’이라는 기쁨의 탄성을 지르면서.


동재는 (비)웃겨야 하는 캐릭터다. 비리 검사로 규정된 그를 진지하게 주인공으로 대접해 주는 순간 드라마가 아니라 다큐가 되지 않을까. 그래서 동재는 어둡고 진지한 “비숲”보다 블랙코미디인 “좋나동”에서 빛을 발한다. 어쩜 줄인 이름마저 이리 우습고 경박스러운지… 

<좋거나 나쁜 동재>는 철저히 주인공 동재를 따라간다. 시청자인 나는 동재를 따라다니며 줏대 없게도 그에 대한 평가를 자꾸만 바꾸게 된다.


네가 뭘 얼마나 잘하나 보자, 싶다가도

에휴 짠하다, 싶다가도

으이구 네가 그럼 그렇지 다. 니 업보다 이 자식아, 하다가도

그래도 막상 그렇게 되니 마음이 안 좋네…. 

이렇게 혼자 와리가리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보게 된다.



그런 주인공 주변에는, 


동재의 직장인 청주지검의 검사들은 정의롭다고 말하기엔 좀 애매하다.

오로지 대검에 입성하기 위해 마약 조직을 소탕하려는 ‘조병건’은 끊임없이 ‘이 공로가 나에게 올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게 그를 움직이는 동력이다. (그 결과로 마약사범을 검거한다면 나름 정의로운 게 아닐까)

후배 검사들이 ‘값싸게 딸랑대는 건’ 싫어하고, 위아래 무시한 채 서선배를 서동재라 부르는 병건을 째려보는 ‘전미란’은 크게 탈도 없고 티도 안 날 선에서 자기 권한을 남용하며 남완성을 돕는다. (그렇다고 그 둘이 서로에게 호의적인 것도 아니다)

그중 가장 정의롭다고 볼 수 있는 ‘김지희’도 우리가 늘 미디어에서 보던 ‘정의로운 검사’ 같지는 않다. 부정한 윗선을 들이받거나 함부로 쓴소리를 해대는 대신, 성실하고 묵묵히 본인의 일을 할 뿐이다.

이런 직장 동료들이 있는 청주지검에서 동재는 평범한 직장인 같다. 각자의 이유로 서로를 별로 안 좋아하지만 대놓고 내색하지는 못 하는, 검사라기 보단 직장인 같다. 


주인공이 된 ‘빌런 조연’ 서동재에 대립하는 남완성은 인물이라기보다는 장치에 가깝다. 

‘비리 검사’ 서동재의 수많은 업보 중 하나를 인물로 만들어 치고받고 싸우게 만든 것이다. 남완성의 맥 빠지는 퇴장은 조금 아쉬웠지만, 그때쯤 완성은 이미 제 역할을 다 했다. 동재는 이제 변했으니까. 



지우지 못한 주홍글씨를 짊어지고.


<좋거나 나쁜 동재>는 “비리검사 서동재”를 주인공으로 데려다가

얘가 사실은 이런저런 사정을 갖고 있었다며 변호하거나,

이런저런 좋은 일도 했으니 좀 봐주라며 그의 업보를 덮어주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제가 아직 쓰이고 있다’는 감각을 가진 채, ‘모처럼 창피하지가 않은 제대로 된 일’을 할 동재의 새 출발을 응원하게 만든다. 그걸 해냈다.


병건
작년에 사람 쥑이나 놓고 올해 사람 살렸다고 작년 게 없어지는 게 아이다.
그런 기준을 적용하면 제일 안 되는 게 우리 직업이고.

<좋거나 나쁜 동재> 10화 중


동재
전 그 일을 좋아한 것 같습니다. (... ) 말이 안 되죠?

원철
좋아하는 게 왜 말이 안 돼?

동재
제가 다 말아먹었으니까.

원철
뭐, 다시 펼 수도 있지 않을까?

동재
… 그럼 말이 안 되죠. 다녀오겠습니다. 

<좋거나 나쁜 동재> 10화 중


동재는 결국 자신의 주홍글씨인 ‘비리검사 타이틀’을 지우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그건 절대 지울 수 없다며 못 박아버렸다. 

그럼에도 동재는 잘 살 것이다. 

모범 검사가 되지도 못했고 대검에 가지도 못했지만, 

지우지 못한 주홍글씨를 짊어지고 X발 새끼들을 다 X 되게 만들며 잘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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