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쳉스토호바 기행] 여기가 중부 유럽 선배들의 무덤?

<쳉스토호바 루사티아 고고학박물관>, 루사티아 묘지가 통으로 변한 박물관

by 흑투리


폴란드의 쳉스토호바. 그중에서도 사람의 이목에서 벗어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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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Raków 역. 시장 광장에서도 도보로 한 시간가량 걸어야 하는 비교적 외곽인 지역이다. 사실 그렇게 외곽은 아니지만, 뭐랄까. 딱히 관광객이 방문할 이유가 보이지 않는 평범한 로컬 거리다. 이런 곳을 투리 본인은 왜 방문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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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이 작은 박물관을 구경하기 위해서. 처음에 쳉스토호바에 대한 대표 박물관 목록을 보니, 여기가 그 박물관들 중 하나에 속했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여기만 유독 멀리 떨어져 있어서, 고심 끝에 활동을 하기 가장 애매한 시간대에 들르기로 결심한 것이다. 금요일부터 시작한 3박 4일의 쳉스토호바 여행에서 야스나 고라 수도원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이런 곳은 가장 관광지 분위기가 나는 일요일에 들르고 싶었기에, 방문하기 애매하거나 불편한 곳들은 2일 차에 후딱 찍고 끝내버리자는 얘기다!



아무튼, 여기는 어떤 박물관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중부 유럽의 선조들이 잠들어 있는 유적지를 보존한 공간이다. 사실 말은 조상이라고 하지만, 육체적 나이대로 따지면 어린아이들도 있고 투리의 형 누나들도 있는 그런 단체 무덤이라고 보면 된다. 재미도 없는 고고학 박물관 아니냐고? 그래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아무리 요양 여행이라고는 해도, 유럽인의 선사 시대를 보는 게 그나마 유의미한 편일 테니까.



자자, 그러지 말고. 이왕 여기까지 읽어주신 거, 조금만 더 따라와 주지 않겠나? 마침 한국인의 선사 시대랑 어떤 점이 달랐는지 확인할 기회가 다가왔으니 말이다!







4월 26일, 이른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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쳉스토호바의 Częstochowa Stradom 역에서 나온 투리는 라코프(Raków) 역까지 가야 했는데,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폴란드의 PKP 국내 기차표를 즉석으로 끊었다.



아, 여기서 한 가지 TMI. 투리가 초기의 글에서 폴란드의 국내 버스 이용에는 Jakdojade 앱이 편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당시에는 해당 앱에서 쳉스토호바로 설정했을 때 해당 앱에서 티켓을 직접 구매할 수 없었다. 어지간하면 큰 도시들은 Jakdojade에서 이용권을 바로 구매할 수 있었지만, 카토비체쳉스토호바처럼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도시들은 여전히 직접 지원이 안 되었던 것이다.



Poland ticket.jpg 지원이 안 되는 도시의 티켓란을 설정했을 때 표 지원이 안 되는 화면. 어떤 도시는 아예 검색도 안 된다.



지금은 확인해 보니 카토비체랑 쳉스토호바에서도 티켓 지원이 가능하니, 여러분이 쳉스토호바에 간다면 투리와 같은 문제를 겪은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2026년 기준 피와(Piła), 노비 송치(Nowy Sącz)와 같은 소도시들처럼 여전히 지원이 안 되는 도시들도 꽤 있다. 이보다 더 작은 자코파네(Zakopane)는 아예 검색도 되지 않는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원론적으로 얘기하면 자코파네 같은 도시들은 워낙에 관광 도시라서 표를 살 수 있는 기계를 쉽게 찾을 수 있거나, 아예 유명 관광지행 미니밴을 골라 바로 돈을 내고 이용할 수 있다(Ex) 모르스키에 오코행 밴).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투리는 또 하나의 여분용 앱을 준비했다. 바로 moBILET 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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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BILET 앱과 이용 화면의 모습.



투리가 아는 바에 따르면 moBILET는 폴란드에서 티켓 구매용 앱들 중에서 가장 많은 도시를 지원하는 앱이다! 그래서 여러분이 혹시 폴란드 내에서 다소 마이너 한 지역을 방문한다면, 위 앱으로 해당 지역 이름을 검색하면 본인에게 맞는 버스 티켓을 찾을 확률이 급상승한다. 당시에는 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영어 지원이 가능하다는 걸 몰랐지만, 언어 설정에 들어가면 지원 언어를 영어로 바꿀 수 있으니 이용하실 분들이 계시면 잘 확인해 주시기 바란다.



다만 대도시에 간다면 Jakdojade만으로 지원이 가능하기에 어지간하면 moBILET 앱까지 쓸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자모스크(Zamość) 같은 소도시를 간다면 이쪽이 Jakdojade 앱보다는 이용하기 편할 테니 각자의 상황에 맞는 앱을 취사선택하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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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쳉스토호바는 규모 있는 도시니까 무사히 도착했다 치고. 이제 박물관에 대한 설명을 본격적으로 해보자. 이 박물관의 정식 명칭은 '쳉스토호바 루사티아 고고학박물관(Rezerwat Archeologiczny Kultury Łużyckiej)'으로, 루사티아 문화권의 묘지를 필두로 그들과 관련된 여러 유물들이 전시된 곳이다. 루사티아 문화란 무엇인가. 청동기 시대철기 시대 초기(1700 BC - 500 BC)의 북부 중부유럽에 형성된 문화를 일컫는 말로, 현재 폴란드체코, 슬로바키아, 독일 동부 및 우크라이나 서부의 일부 지역에 걸쳐 존재한 문화권이다.



20250426_124756.jpg 1961년에 발굴된 한 남성의 두개골. 두개골 양쪽에 천공 구멍이 보인다.



해당 장소에 속한 범위가 생각보다는 꽤 넓게 느껴질 것이다. 이 박물관은 선사 시대 집단의 묘지 유적을 보존하면서 이와 관련된 루시티안 문화를 보존하고 전시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루시티안 문화권이 가진 대표적인 특징은 항아리 화장묘(Urnfield)라는 화장 문화이다. 이 문화권은 시신을 화장하면 그 유골을 토기 항아리에 담고, 그 항아리를 통째로 묘지에 묻는 방식으로 화장을 진행한다. 그렇기에 도시 중앙에서 벗어난 이 박물관에서는 유적 속에서 그 흔적을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다.



20250426_124834.jpg 포즈난 의과대학 법의학 연구소에서 체스토호바-라쿠프 공동묘지의 39번 무덤에 묻힌 여성의 얼굴을 복원한 모습.



그렇다면 여기서 이 루사티안 문화권은 어떤 민족의 조상인지 궁금할 것이다. 슬라브족일까? 게르만족일까? 그게 아니면 켈트족? 정답은 '아직 모른다'이다. 어쩌면 크게 의미가 없는 질문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 묘지가 형성되었을 기간대가 슬라브인이나 켈트인 같이 민족 정체성이 명확히 형성되기 전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다만 루사티안 문화가 중부 유럽의 여러 민족 형성 과정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시각이 있기는 하다.



이 정도면 여러분에게 루사티안 문화권에 대해 충분한 배경설명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뭐 어쨌든, 자세한 얘기는 이제부터 시각 자료와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아래의 사진은 쳉스토호바-라코프 지역에 묻힌 유적을 그대로 보존한 모습이다.



20250426_124959.jpg 유적의 전체 모습.
20250426_124847.jpg 각 유적의 유골에 해당되는 설명문.



자, 위의 사진이 루사티아 문화권 시대 사람들이 매장된 유적지를 그대로 전시한 전체 모습이다! 폴란드어로 적혀서 내용을 알기 어렵겠지만, 정리하면 유골들은 각각 그 성별과 연령대가 다양하다. 이들의 관계가 서로 어떠했는지는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루사티아 문화는 비교적 조직화된 정착 사회였기 때문에 마을 단위의 공동묘지일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최소한 같은 공동체 안의 관계까지는 갔을 여지가 다분할 것이다.



20250426_125350.jpg 루사티아 문화의 고분들을 보여주는 사진.



루사티아 문화권이 생기기 전, 사실 기원전 17~15세기경부터 프로토-루사티아 문화권으로 불리는 집단이 존재했었다. 그리고 기원전 17~16세기에는 트르치니에츠(Trzciniec Culture) 문화권 역시 비스와 강(Vistula)과 드니프르(Dnieper) 강 사이 지역에서 형성되었다. 두 문화권의 대표적인 차이는 주거 방식에 있는데, 프로토-루사티아 문화권은 경제가 유목과 목축 중심이었기에 주거 유적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그에 반해 트르치니에츠 문화권은 농업의 비중이 커서 주거 유역과 야영지가 잘 알려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토기 유물들은 트르치니에츠 문화권에서 발견될 확률이 더 높겠지? 그런 의미에서 위 사진 속의 토기는 트르치니에츠 문화의 토기이고, 청동 팔찌와 핀은 프로토-루사티안 문화의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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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기원전 14~13세기 무렵, 화장이라는 새로운 장례 풍습이 중앙 실레시아에 도달했다. 이 풍습은 청동기 시대의 발전과 함께 동부 유럽의 여러 지역으로 퍼져나갔는데, 이 생활양식은 북쪽으로도 더욱 확장되었다. 후기 청동기 시대와 초기 철기 시대에 걸쳐 위의 집단들은 계속 존재했으며, 이렇게 해서 루사티아 문화권이 발전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이 문화권에서 가장 많이 보존된 유물은 도자기 용기였다. 이 도기들은 항상 수제였다. 처음에는 바닥부터 점토 띠를 하나씩 덧붙이면서 쌓아 올리다가,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는 방식으로 마무리하는 방식이 루사티아 문화권의 그릇 제작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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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사티아 문화는 토지 경작을 주된 활동을 하고, 가축 사육이 그 기반이 되었다. 사냥, 어업, 채집은 보조적인 활동에 불과했다. 이것은 루사티아 유적지에서 보존된 식물학적 유물들을 통해서 추측할 수 있었다. 이들의 재배 작물은 여러 종류의 밀과 기장, 보리, 귀리였으며 초기 철기 시대에는 소량의 호밀도 나왔다. 그 외에도 다양한 작물들이 유적지에서 발굴되었다.



사냥을 통해 얻은 야생 동물의 가죽과 모피는 의복 재료로 쓰였고, 뼈와 뿔은 도구 제작의 원재료로 쓰였다. 어업의 흔적은 청동 낚싯바늘과 낚싯대에 쓰인 나무 부표에서 확인이 가능했고, 채집 역시 발굴된 야생 식물들을 통해 그 증거를 찾을 수 있었다. 특히 크라쿠프 지역에서는 소금 제조용 용기의 존재까지 확인되었다. 이를 통해 이 문화권에는 염전이란 개념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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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사티아 문화권의 청동 유물은 구리와 주석을 9:1로 섞은 합금의 완성된 물품 형태로 외부에서 수입되었다. 예상 가능하겠지만, 청동 가공은 많은 기술을 요구하는 복잡한 과정이었다. 재료들은 우선 점토 도가니에서 녹은 뒤,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는 움푹한 주형이나 돌로 만든 조개껍질형 주형에 주조되었다.



철 유물 역시 루사티아 문화권에서 뒤이어 등장했다. 처음에는 완제품, 특히 장신구와 의복 부속품 형태로 외부에서 수입되었다. 그러다가 원재료도 수입되면서 지역 주민들은 단조 기술을 습득하게 되었다. 다만 이 사람들이 철 제련 기술을 알고 있었는지는 아직 확실히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 마디로 지금 보는 대부분의 유물들은 수입제일 것이라는 얘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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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 양식을 미니어처 모형을 만들어낸 모습.



이들이 살았던 집의 벽은 '수직 기둥 통나무 구조(Vertical-post log construction)' 방식으로 지어졌다. 위 사진의 모형을 보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는데, 말로 설명하면 땅에 박은 홈이 파인 수직 기둥들 사이에 가로 들보를 끼워 넣는 방식이었다.



집의 내부에는 화덕, 침상, 좌석, 직조 작업 공간, 그리고 맷돌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각 정착지에는 비스쿠핀(Biskupin)이라는 방어 구조가 세워졌는데, 이 정착지는 특별히 다듬은 참나무나 소나무 기둥을 비스듬히 호숫가에 박아 만든 구조였다. 그리고 마지막 줄의 기둥 뒤에는 방어용 둑이 추가적으로 설치되었다. 각 정착지에는 약 1000명이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저 구조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좌우했던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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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시기에는 태양 숭배가 매우 흔했다. 태양이나 별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장식된 유물들 외에도 원이나 십자가, X자 모양을 결합한 문양들도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문양들은 주로 도기에 나타났다. 십자가 형태의 홈선 장식은 그릇의 내부 벽면과 바닥을 장식했다.



거기에 위 사진을 보면 동물형 그릇이나 신발 모양의 컵들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역시 제의(祭儀) 의식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제기된다.



20250426_131311.jpg 다른 곳에 묻힌 유골의 모습.



흠, 이 정도면 확실히 박물관에 대한 대다수의 사진들과 배경은 설명한 것 같다.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와서, 아까 맨 앞에서 봤던 무덤에 대한 정리를 해볼까. 이 박물관의 시작은 우리가 있는 쳉스토호바-라코브 땅 위의 유적지, 루사티아 문화권의 인물들이 잠들어 있는 곳에서부터이다.



20250426_124959.jpg 맨 앞에서 봤던 같은 단체 유적지.



자, 다시 한번 위의 사진을 볼까. 자세히 보면 각각의 유골들을 구별하기 위해 번호가 표시되어 있다. 이중 1번과 2번 유골은 성숙기 남성(30~50세), 형님의 골격이다. 어떤 유골은 청년 누님(20~30세)의 골격에 해당하고, 또 10번 유골처럼 어린아이의 화장 유골도 존재한다. 다만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 당시의 평균 수명은 지금보다 엄청 적었다. 그렇기에 20~30대 사람의 유골이 지금의 MZ 세대와 같은 느낌은 아니겠지.



슬슬 결론을 맺도록 하자. 루사티아 시대의 인물들의 유적지로부터 시작한 쳉스토호바 고고학박물관. 이 흔적을 그대로 보존하고자 사람들은 이곳을 그대로 박물관으로 보존시켰다. 비록 도시의 중앙에서 조금 떨어졌지만, 이 박물관은 단 한 걸음의 미동도 없이 유적지를 지켜냈다. 폴란드의 한산한 도시를 산책하면서 호기심으로 방문한 루사티아 기록의 압축판. 부디 앞으로도 그 가치를 잃지 말아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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