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bst 궁궐 박물관>, 기품과 품위를 갖춘 사랑의 별장
3권으로 넘어간다고 딱히 마음가짐이 달라진 건 없지만, 이왕 새로 시작하는 만큼 조금은 기분 좋은 기행글로 갔으면 좋겠다. 약간의 TMI를 늘어놓자면, 투리는 본인이 갔던 관광지의 특징에 어울리면서 동시에 사람들의 관심을 확 끌어당길 제목과 첫 문단을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을 쓴다. 브런치의 어느 작가건 마찬가지겠지만, 글 하나하나를 쓰는데 본인은 정말로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오죽하면 투리의 파트너 유한열이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유튜브 영상 하나 만드는 게 더 어려울 것 같다만) 투리 본인의 글 한 편 쓰는 난이도가 자기 영상 하나 만드는 거랑 똑같을 것 같다고 말하겠는가.
어떨 때는 제목이랑 첫 문단까지 쓰는 것까지 4시간씩이나 걸리기도 하지만, 감사하게도 이번에는 그리 장고(長考)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 궁궐의 특징을 보았을 때, 투리는 딱 하나의 명징한 키워드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바로 "결혼"이다.
결혼. 최근 들어 한국에서는 그 의미에 의구심이 많이 제기되고는 있지만, 결혼은 한 가정의 탄생을 알리는 축복이자 크나큰 경사이다. 요즘에는 어려워진 경제 사정과 남녀 갈등으로 인해 출산은커녕 결혼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안타깝지만, 일반적으로 결혼을 한다면 양가의 가족과 친척이 모두 나서서 그 부부를 축하해 준다. 여기서 조금만 재미있는 상상을 해 보자. 독자 여러분 중에서 비혼주의자 분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 싶다. 만일 여러분의 부모가 여러분이 결혼하면 아래 사진의 집을 그냥 주겠다고 한다면, 그래도 결혼할 생각이 없는가? 관리인도 딸린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다들 사진 봤겠지? 망설이지 말고, 3, 2, 1! 그대의 대답은? .....거절하기에는 너무 좋아 보여서 조금 고민하지 않았는가? 사진에는 건물의 외관만 나와 있지만, 내부 양식은 말할 것도 없고 뒤에는 정원까지 딸려 있는 끝내주는 집이다. 하지만 이 행복한 고민은 안타깝게도 평범한 한국인들에게는 허상과 같은 이야기일 뿐. 그래도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가끔씩은 이런 상상을 하면서 딱딱한 현실을 잊는 것도 나쁘지 않은 힐링인 것 같다.
사실 주인공이 여러분이 아닌 거지, 저 집은 실제로 신혼부부를 위해 선물한 집이다. 폴란드 우치에는 섬유 산업을 통해 성공한 부자들이 몇몇 있는데, 그중 두 가문이 서로 혼인을 맺자 딸 쪽의 Herbst 가문에서 이 집을 선물로 주었다. 그래도 이 집은 지난 글의 우치 도시 박물관보다는 비교적 우아하고 단아한 느낌이 강한데, 이번 글에서는 이 집에 대해 간략히 다루며 독자들의 힐링(?)을 최대한 자극해 주도록 하겠다! 그럼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안으로 한 번 들어가 보자!
당시 이 집에 왔을 때, 투리가 이곳을 관광할 시간은 불과 15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투리가 이곳에 오기를 고집한 이유는 바로 티켓 때문이었는데, '우치 MS1 박물관'에서 산 티켓이 그 다음 날까지 '우치 MS2 박물관'과 이 집도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 날도 이미 일정이 빡빡한 탓에, 지금이 아니면 이곳을 방문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서서 급히 여기까지 달려왔다. 아예 안 보는 것보다는 하나라도 더 보는 게 이득일 것 같아서 말이다!
예상했던 대로 유럽식 느낌이 충만하지 않은가? 이 집의 정식 이름은 'Herbst 궁궐 박물관'으로, 19세기 말쯤 완성되어 개인 주거지로 사용되다가 비교적 최근에서야 박물관으로 관리된 곳이다. 해당 집의 주인공은 마틸다 쉐블러(Matylda Scheibler)와 에드워드 하르베스트(Edward Herbst)로, 쉐블러 가문과 Herbst 가문 모두 직전 글의 포즈난스키 가문과 마찬가지로 산업 부르주아 가문에 속한다. 현재 이 집은 당시 부부와 그의 자식들이 살았던 내부 모습과 얀 마테이코(Jan Matejko)와 같은 최고의 폴란드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투리의 이전 우치 글을 봐온 독자 분들이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우치는 섬유와 면직물 산업의 발전으로 몇십 년 동안 급속도로 큰 발전을 이루어냈다. 이로 인해 이 도시는 굉장히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그 행운의 주인공들 중 한 명이 카를 쉐블러(Karol Scheibler)였다. 쉐블러 가문이 그 사업을 성공시키기까지 큰 기여를 한 가문들 중 하나가 에드워드 Herbst이다. 그래서 쉐블러는 자신의 딸을 그와 결혼시켜 일종의 정략결혼을 맺은 것이다.
비록 형태는 정략결혼의 그것과 같았지만, 그래도 부부는 서로를 사랑했던 걸까. 둘 사이에는 무려 네 명의 아이(Karol, Leo, Edward, Anna Maria)가 탄생한다. 지금 우리가 보는 이 집은 Herbst 家의 첫 번째 집이지만, 19세기가 끝나갈 즈음에는 두 번째 집은 소폿(Sopot)으로 거처를 옮긴다. 초기에는 여름 별장 같은 느낌으로 거주했다고 하지만, 나중에는 그 집이 진짜 집이 되었다고 한다. 이걸 소폿에 갔을 때 알았더라면 한 번 찾아보는 거였는데.
이 가족은 단순히 우치나 소폿에만 틀어박히지 않고 실제로 도시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활동들 중 하나가 어린이 병원 설립이었다. 이들이 병원을 설립하는 계기는 그들의 막내 Anna Maria가 굉장히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사건이었는데, 누구라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부부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병원의 이름은 그들의 막내딸의 이름을 본떠서 'The Anna Maria Hospital'이었고, 가장 처음으로 환자를 받은 날은 1905년 11월 3일이었다. 이 병원은 폴란드 초기의 현대식 소아과 병원들 중 하나였다고 한다.
1928년이 되었을 때, Matylda Herbst는 병원에 Sokolniki 지역의 일부 부지를 넘겨주기도 했는데, 우치에 있는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사용하라는 명목으로 그 땅의 소유권을 주었다고 한다. 병원이 받은 땅은 거의 숲으로 뒤덮인 장소였는데, 곧 그곳은 요양원으로 활용되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부자의 이미지와는 달리, 이 가족은 참으로 아이들을 향한 이타심을 많이 보였던 행동을 했던 것 같다.
물론 부부의 행적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우치와 소폿에 여러 교회나 성당들을 세우는 것을 지원해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그들은 학교나 도시, 신문사 근처의 소방대원들의 활동에도 보조금을 지원했다고 한다. 한편 우치의 신흥 사업가들은 Czeladź 쪽에 있는 "Saturn" 광산을 구매했는데, Herbst의 각 자식들은 그 공동체에서 각각의 역할을 맡아 그곳의 발전에 기여를 했다. 이를테면 광부들을 위한 주거지, 학교, 체육 시설 등등의 장소 확보 같은 것들 말이다.
이상의 옆쪽에 치우쳐 있던 전시관의 모습이었고, 지금부터는 로망의 시간이다. 배경은 어느 정도 알았으니, 이제는 구석진 방을 나가 내부를 제대로 둘러보자.
널찍한 공간을 지나 처음으로 마주한 방은 위 왼쪽 사진의 집무실인데, 장식들은 역시 19세기 가구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 같았다. 안내문에 따르면 이 방의 가구들은 신고전주의 양식의 도서관 장, 가죽으로 덮인 클럽 의자들, 그리고 신르네상스 양식의 책상과 안락의자 등이라고 한다. 참고로 왼쪽 사진의 창가 기둥 쪽의 흉상은 마틸다의 아버지 카를 쉐블러(Karol Scheibler)라고 한다.
한편 오른쪽 사진의 황금빛으로 빛나는 방은 신고전로코코 양식의 응접실이라고 한다. 박물관이 이 방에 주로 보존한 요소들은 풍부하게 조각된 금박 거울 틀, 각 계절을 의인화한 알레고리 그림들과 석고 장식의 천장이라고 한다.
다음은 아까보다 동양적인 느낌이 강하게 드는 살롱. 유럽의 많은 부자들은 근대 시대부터 극동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 이 부부도 그곳에서 온 물품 컬렉션을 여기에 저장한 것 같았다. 투리는 미술에 젬병이라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까 이 방의 목판화들 중에 그 유명한 카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齋)의 목판화도 있다고 한다. 투리가 폴란드를 돌아다닐 때마다 이렇게 중국이나 일본의 작품들을 드물지 않게 접할 수 있는데, 여러분도 기행글을 볼 때마다 접할 일이 꽤 있을 것이다.
여기는 또 다른 접견용 응접실처럼 보였다. 마찬가지로 가구들은 모두 19세기 것들로 꾸며졌으며, 이 방에 보존된 장식은 석고 천장 장식과 거울이 들어간 아케이드 구조물과 같은 것들이라고 한다. 사진에는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지만 벽 양옆에는 저렇게 미술 작품들도 걸려 있었다.
위의 방은 남성들을 위해 마련된 살롱인데, 가끔씩 흡연실의 역할도 겸했다고 한다. 뭔가 장롱 같은 것들이 이 방에 많이 있던 것 같았는데, 벽패널에 숨겨진 장식장들은 주로 화기를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진을 자세히 보면 카드놀이를 위한 탁자가 창가 앞에 있는 게 보일 텐데, 해당 탁자는 Herbst 가문의 상속자들로부터 구입한 것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이 집에는 위의 사진과 같이 식당도 둘러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내부를 쭉 둘러보았는데,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래도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집이라는 것까지는 느껴지지 않는가? 비록 짧게 있었지만 투리의 소감을 밝히자면, 이 집은 전에 박문했던 포즈난스키의 거주지보다는 확실히 소박하고 사적인 분위기가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운영 직전이라 몇몇 곳에서 전등을 꺼서 그렇게 느껴진 걸 수도 있겠지만, 어떤 방들은 좀 더 색깔이 진하고 어두워 보이기도 했다. 그런 걸 보면 여기 가족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MBTI I일 것 같은 느낌은 단지 나만의 착각일까.
아, 참고로 독자 여러분들께 알릴 부분이 있다면, 위의 집의 구조에 관한 설명부터는 모두 폴란드어로만 적혀 있었다. 당시에는 본인도 아무 생각 없이 집을 돌아다니다가 나중 가서야 그 설명문을 따로 번역한 것이니, 이 집을 방문할 독자 분들이 계시다면 유념해 주시기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그 부분이 투리에게는 좀 아쉽게 다가왔던 것 같다.
아무튼 조금 더 내려가니, 저렇게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는 강당 같은 곳도 이 집 안에 있었다. 사진을 보면 가이드로 보이는 여성 분이 다른 관광객들에게 배경설명을 하는 모습이 보일 텐데, 곧 영업시간이 종료돼서 그런지 얼마 안 가 다들 그 방에서 나갔다. 사람들이 나가고 투리는 잠깐 동안 강당을 훑어보다가, 창 뒤쪽이 열린 걸 보고 그쪽 방향으로 이동해 보았다.
재미있게도 창 뒤쪽은 바로 바깥이랑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맨 위쪽 사진의 카페 같은 곳이랑 이어져 있었다. 거기에서 조금 나가고 나서야, 투리는 정원 공기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 집에 정원이 딸려 있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아래 두 사진이 그 사진들이다.
이렇게 15분밖에 안 되는 시간 동안, 투리는 빠른 속도로 찍을 것들을 찍으며 이 집의 중요한 곳들을 하나하나 훑어볼 수 있었다. 어떤가? 박물관 전체에 비교해 보았을 때는 확실히 작은 편이지만, 집이라고 생각하면 확실히 유복한 가정의 거주지라고 생각할 만하지 않은가? 평균적인 한국인도 이 정도 집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이상의 내용이 Herbst 가문의 신혼부부 집에 대한 설명이었다. 비록 현실에서는 투리가 얻을 수 없는 집이지만, 나름 기품과 품위를 갖춘 장소를 3권의 첫 시작으로 담은 건 참으로 다행인 것 같다. 덕분에 여러분의 신혼부부 로망을 빨리 채워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상상해 봐라. 독자 여러분이 평생 사랑하는 사람과 저런 집을 산다고 생각해 보면, 너무 좋을 것 같지 않은가?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어디서 신혼집을 보내느냐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 그 자체라는 사실! 꼭 부모님이 이런 엄청난 박물관 스케일의 집을 보내주시지 않아도, 서로와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신혼부부가 많아지기를 기대하며 이번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