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과 이스라엘-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는 순간이 왔다. 늙고 병들고 자식들마저 뿔뿔이 흩어져버린 상태가 되고 나서야 그는 야곱에서 벗어난다. 야곱 시절에 그는 가정과 사회에서 돌봄을 받지 못해 왔고 그래서 늘 외로웠다. 그는 자신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고 상처로 남았다. 후에 형 에서를 만나는 장면은 지금 와서 생각해도 야곱의 아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무서운 형을 조금이라도 늦게 만나고 싶은 마음에 그에게 다가가는 긴 행렬 맨 뒤에 자리 잡았더랬다. 형에게로 가는 내내 그는 공포감에 떨었다. 두려움 때문에 잠에 빠져 있을 수 없었다. 형을 만나기 마지막날 신은 그를 찾았다. 그 또한 신을 기다렸다. 신은 자신의 의도를 분명히 밝혔다. 더 이상 야곱으로 부르지 않겠다고. 야곱 시절에 받았던 상처와 불안은 모두 지워 주겠다고. 그래서 앞으로의 삶은 거짓과 욕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물론 야곱도 원하던 바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자신을 방치해 온 신을 믿을 수가 없었다. 신이 원망스럽고 야속했다. 야곱은 신에게 처절하게 매달렸다. 자신을 버려두지 말라고 애원했다. 신은 야곱의 부르짖음을 기다려 왔었다. 야곱 자신에게 가득한 탐욕과 교만함을 발견하고 고백하길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야곱이 변하기를 기대했다. 야곱은 신의 기대를 알지 못했다. 가정과 사회에서 이룬 성공 신화가 신의 뜻이라고 믿었으니까. 정작 자신의 불안과 두려움은 형의 축복을 빼앗아 달아나던 어린 시절 그대로 살아 있는데 말이다. 형과 재회를 앞두고 야곱의 두려움은 되살아났다.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두려움과 공포는 자신의 내면에서 시작된 것임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욕심을 버리고 낮아지기로 했다. 그리고 형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했다. 진심으로 사과했고 용서를 구했다. 형 또한 그를 받아들였다. 비로소 야곱은 차꼬에서 풀려났다. 자신만이 알고 있었던 상처를 공개하고 진실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 용기 덕분이다. 그것은 분명 신의 시나리오는 아니었을 것이다. 신은 관객에 불과했다.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어쩌면 이 서사에서 신의 방문은 불필요한 장면일 수도 있다. 야곱은 분명 후회했고 형을 만나고 싶었을 테니까 말이다. 오랜 세월 외로움과 배신감에 아파했기 때문이다. 장면이 막을 내리면서 야곱은 이스라엘이 된다. 이스라엘은 야곱에게서 태어난 것이다. 야곱 시절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시대는 오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만약 삶이 고통스럽고 외롭다면 오히려 기대해 보길 바란다. 뜻한 바를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다. 다만 에서와 화해를 완성한 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