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기회-
’ ”결과는 분배 방식에 달려 있습니다. 기계로 창출된 ’부’가 고르게 나누어지면 모두가 안락한 삶을 즐길 수 있을 것이고, 기계 소유주들이 ‘부‘의 재분배에 대항하는 로비에 성공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끔찍하게 가난해질 것입니다. “ ’ ’ 이 대통령이 ”생산수단을 가진 쪽은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대다수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워질 텐데, 거기에 대응하고 준비해야 한다. “고 말한 것을 보면 그 의도는 더욱 분명해진다. ‘ (한겨레, 2026-3/18 26p, 하종강 칼럼)
벌써부터 ‘끔찍한 가난’ 때문에 주눅이 든다. 도대체 어느 정도의 가난을 말하고 있는 것일지 궁금하긴 하지만 알고 싶지 않다. 의식주가 길을 잃어버린 채 떠돌아다니는 삶이 될 것 같다. 부모님을 잃어버린 아이처럼 말이다. 그 아이는 끔찍한 외로움과 두려움에 시달리는 삶에 끌려다닐 것이 뻔하다. 또한 성장하는 내내 인간관계를 비롯한 내외적 갈등으로 상당한 고통이 수반될 것이다. 매일 자신의 삶이 부정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그 아이 인생은 폭파된 건물처럼 재생 불가능해지고 말 것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우리가 그런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불안함이 끔찍하다. 막연한 걱정보다는 현실적 대비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현재 나로서는 어떤 기반 시설을 준비하고 설치해야 할지 알 수 없다. 단순히 가난을 당하지 않을 방법만을 찾는다면 더욱 그렇다. 미래형 기술도 지식도 없고 걸쭉한 자본도 싱싱한 노동력도 전무하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수도 없다. 모두들 나와 같기 때문이다. 끔찍한 가난은 이미 대문 안으로 침입했는지도 모른다. 분명 대문을 열어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누구나 <가난>은 상상만으로도 역겨울 테니까. 그러나 침입자를 상대할만한 전략이나 전술이 없다. 그렇다고 가끔씩 떨어지는 부스러기들을 기대하며 살아갈 수 없는 노릇이다. 최소한 사소한 관계와 감정으로 삶을 연명하는 방식과 태도는 단호하게 떨쳐내야 한다. 그리고 낯가림에 버려지는 시간을 차단해야 한다. 어차피 현재 익숙한 것들은 사용 기한이 지난 것들이다. 더 이상 과거에 살던 패턴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기존 일자리를 고집하는 것은 어리석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출퇴근과 고용주를 위한 일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 시간을 관리하고 내게 필요한 것들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기계처럼 꼬박꼬박 일해 온 것에서 드디어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이다. 이 기회에 먼지 쌓인 날개를 활짝 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