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리아에서
우주가 너무 무겁다. 짓누르는 공기의 무게에 폐포가 압착되고, 횡경막이 늘어진다. 사막의 밤은 춥다. 밤부엉이에게 사막은 춥고 척박한 땅이다. 눈으로 뒤덮인 설원이 아니라 모래로 뒤덮인 사원이라고 그들은 말할 것이다. 사경이 정말 훌륭하다고, 이곳의 고요함은 정말 신비롭다고 신나게 감상을 늘어놓을 것이다.
아침 7시에 일어나서 밤 11시에 잠을 자는 내게는 사막이 눈 대신 모래로 덮인 사원이라기보다는 이곳 우리가 서 있는 땅이 지구라는 것을, 그리고 그 지구의 무수한 중력이 어떻게 우리를 붙잡아놓는지, 우리가 사는 곳은 이 땅이 아니라, 우주라는 것을, 우리는 우주인들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무거운, 그리고 뜨거운 우주다.
모래 속으로 푹푹 꺼지는 발에, 실체가 느껴지듯이 무거운 공기, 빛으로 나를 찍어누르는 태양,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훌륭하게 복사열을 전달하고, 땅은 그것조차 귀찮다는 듯이 하나의 장식물도 가지지 않는다. 그리고 나도 곧 이 땅의 일부가 될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이러한 우주적 공상에 부응하는 것인지, 혹은 이제는 환상까지 보이는 것인지, 아무것도 없던 사막 한가운데, 저 멀리 회색 벽이 보인다. 모래로 대부분 뒤덮인, 기울어진 벽이.
올려다보는 하늘에는 불덩어리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내려다보이는 사구는 순결함을 간직한 모래뿐이다. 이런 곳에 회색 벽은 무엇을 위해, 무엇에 의해 서 있는가? 적어도 내려가는 발걸음은 한층 가볍다. 오늘은 하늘에 구름 하나가 지나갈지도 모르겠다.
벽은 콘크리트다. 예상대로 뜨겁다. 그리고, 이 구조물의 입구는 아마도 모래속에 덮여있는 듯 하다. 모래 언덕 하나만한 높이의 벽 아래 그림자는 길다. 나는 입구 찾기를 잠시 미뤄두고, 그림자에 누워 잠시 눈을 감았다. 공기가 끓어오르지는 않는다. 오랜만에 숨이 가볍다.
돌아다녀 보아도 입구는 잘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파묻힌 것일듯 싶은데, 나는 이 모래를 들어올릴 능력이 없다. 내 그림자는 동그래진다. 정오다. 곧 그늘에 숨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입구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콘크리트를 주먹으로 때렸다. 여전히 정신이 아찔한 공기다. 다행히 뼈가 부러지지는 않았다. 다만 뇌가 익었을지는 모르긴 하겠다. 더 견디는 것이 가능할지는 참 모르겠다.
콘크리트는 온전하다. 나랑은 다르게 잘 서있다.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렀을까. 며칠 전에 세워진 건물일까? 혹은 세계대전의 참호였을까? 아니면 외계인의 기지라도 되는 걸까? 건축학이나 재료공학에는 박사 학위가 없어서, 표면으로 그 나이를 읽어내기는 아쉽게도 무리가 있다. 대신 표면 온도는 말해줄 수 있다. 뜨겁다. 엄청.
올라가서 모래를 들어내어 보기로 했다. 가능성 있는 입구는 아무래도 위쪽이다. 그나마 가장 시도해 볼만 한 곳이다. 흐르는 모래가 금빛이다. 마치 물 흐르듯, 생명력 가득히 흘러내린다, 참으로 유려하게. 바다와 사막은 무엇이 다른 걸까? 너울들과 언덕들을 구분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쩌면 사막의 공기는 바다같은 비린내를 품은 것같이도 느껴진다.
파내는 발길질에 따라 모래가 터져나간다. 부스스한 입자들이 공기를 메우며 눈이 찌푸려진다. 빛이 조각조각 나눠지며 모래빛으로 내리쬔다. 쿨럭거리며 가래침이 올라옴을 느꼈지만, 발밑을 더럽히기는 싫어 다시 삼켰다. 꺼끌한 모래파편들이 목을 따라 여러 평행한 줄들을 그려내려감에 텁텁한 공기와 내 몸은 더욱 조응해간다. 이 벽 위로 올라오기가 후회스럽다.
투발루의 바닷가를 나는 걷기로 했다면, 이러한 고생도 남일같은 딴세상 얘기였을 거다. 정글에 조난당하더라도 차라리 그곳에는 물로 가득찬 공기와, 잡아먹을 고기라도, 그나마 씹어먹을 풀때기라도 있다. 뭣하자고 고른 사막인가.
딱 파낸만큼 차오르는 정밀하고 공평한 균형에 기가 찬다. 모래 주제에 평등을 그렇게도 좋아하는가. 이럴 때만 평등인가. 이렇게라도 누리는 평등이 내 입꼬리를 조금이라도 올릴 수 있다면 그것도 그거만큼의 가치를 가지겠다. 더 파고 싶지 않다.
이제 그냥 이 모래에 빠져버리려고 한다. 발을 비틀고 다리를 꿈틀거리며 나는 이 모래속으로 들어간다. 아래에 입구가 있다면 바닥에라도 닿을 수 있겠지. 손으로의 굴착은 아무래도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
하늘에는 아까보단 누그래진 태양이 있고, 달이 보인다. 아까는 보이지 않던 달이다. 태양이 비껴난 자리를 틈타 자기를 저렇게 드러내는 모습이 얍삽하다 싶다. 이 벽과 비슷한 것 같기도.
목까지 차오른 모래, 온몸에 가해지는 질량에 숨을 들이마시기 힘들다. 그리고 눈물 한 방울, 아니 여러, 그것보단 눈물줄기가 흐른다. 수증기 한 방울 없이 건조하다 못해 이제는 내게서 물까지 짜내는가. 시리고 차가운 기운에 얼굴이 사방으로 수축하고 이완한다. 소리내어 나는 운다. 펑펑 운다. 서럽다.
어째서 나는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태양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내게 작열하는 광선을 내리쬐는가? 모래들은 나를 대체 무슨 이유로 나락으로 끌어내리는가? 뭣 때문에 회색 벽을 속에다가 파묻는가? 이 벽은 왜 희망 한 줄기를 주다 뺐다 하는가? 왜 나를 꾀어내 제 명을 재촉하게 하는가?
바닥이 딱딱하다.
콘크리트같이 딱딱하다.
우주도 그 만큼 견고하다.
콧속으로 들이차는 모래향기가 텁텁하다.
그리고 나는 우주와 하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