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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선 여행가 Oct 12. 2021

현대 자동차의 후원을 받다

후원 없는 자유로운 여행이 가능할까?

서울여행가 협회의 총무 신재동 님은 고려대학교 출신으로 조양래 당시 현대자동차의 임원(이사나 상무급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과 동문지간이였다.


오랜만에 두 분이 만났다.

각자가 서로 다른 일을 하니 좀처럼 만나기가 쉽지 않다.


둘은 어깨를 끌어안았다.

신재동 님은 소년처럼 순박한 사람이다. 반가운 인사가 끝나자마자 행복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조 사장. 나 세계 여행가게 됐어. 자동차 2 대만 후원해 주시요." 했다.


조양래 씨는 "아직도 여행 타령인가. 언제까지 잠꼬대를 할 건가? 철 좀 들게 철 좀 들어.... 친구는 어이없고 한심하다는 표정이다"


"아냐. 참말이야. 자동차만 있으면 돼." 신재동 님은 주머니에서 아구 답사단 자동차 여행기획서를 꺼내 보이며 답사단의 단장이 김찬삼 교수라고 하자 조양래 씨는 금방 태도를 달리하며 "네가 김찬삼 교수를 모셔 올 줄은 몰랐다"며 민망해했다 한다.


조양래 씨는 "김찬삼 교수님이 단장이시라면 우리 회사는 차량은 물론 다른 인력도 지원하겠네"라고 하였다.


신재동 님은 "우리 조건은 별게 아니야. 여행인들은 차를 몰고 유럽의 끝까지 가는 것이지. 자동차는 빙판이나 사막에서도 고장 없이 잘 달리도록 해주면 된다."

조양래 씨는 "그런 것은 아무 문제가 없어요. 회사에서 여행인들의 경비를 다 부담하겠으니 CF 용 사진 몇 장만 찍으면 돼." 하는 것이다. 


신재동 님께서는 현대 측의 제안을 김찬삼 교수님께 전달하였다. 단장님은 단칼에 거절하셨다. 여행에서 후원을 받으면 후원해주는 사람의 여행이 된다고. 우리는 우리의 여행을 할 것이다. 그러니 현대에서는 자기네 촬영 기사를 보내서 우리의 여행을 그대로 찍어가라는 것이다. 그것은 괜찮다고 하셨다. 


현대에서는 아직 답변이 없다.


여행인 한 명당 경비가 1500만 원으로 예상이 되자 모두들 후원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었다. 가정주부인 나도 마찬가지였다. 일 년이나 집을 비우는 것도 모자라 그 많은 돈을 써야 한다니 여행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교수님께서는 최소 6명의 여행인이 있어야 한다고 하시는데 아직까지 3명밖에 모으질 못했다. 이대로 여행 계획이 물거품이 되는 게 아닌가 불안했다.


마침 남편 친구 중 한 분이 나를 찾아오셨다. 김교욱 씨다.

여행 시일과 코스와 경비를 알려 달라고 하신다. 관심이 있다 하신다. 나는 곧 단장님께 소개드렸다.


단장님은 흔쾌히 허락하셨다.


어느 날 김교욱 님께서 김 교수님 댁을 방문하셨다. 지인 중에 양조를 하는 모 재벌 회사가 있다. 이 여행 계획을 듣더니 사장이 이런 제안을 했다 한다. 3억을 여행 경비로 지급할 것이니 여행 중 좋은 곳에서 CF 촬영 몇 번만 해 달라고...

중국 곤륜산에서 스칸디나비아의 노르드캅에서 또 지구의 끝인 포르투갈의 카보다 로카에서 CF 사진을 찍어주는 조건이라 한다.


교수님은 일언 지하에 거절하신다.

"여행 후원금은 단 일 푼이라도 받으면 안 됩니다. 후원금을 받으면 여행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하셨다.


그러나 김교욱 님은 한사코 후원금으로 답사를 하시라고 한다. 당시의 여행 경비 1,500만 원은 큰돈이다. 누구나 깜짝 놀랄 큰돈이었다. 일 년을 사업을 접고 게다가 여행 경비로 1,500만 원이나 낸다는 것은 어딘지 아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김 교수는 알아듣도록 말씀하신다. "남의 돈이 무서운 줄을 모르시네요." 하고 일어서 밖으로 나가시려 하신다.

김교욱 님이 따라 일어서면서 "3억을 여행자금으로 준다는 데 거절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따지신다. 


이에 화를 못 이기신 교수님이 앞에 있던 전화통을 집어던지시며 나가라고 고함치셨다. 김교욱 님은 아구 답사단에서 탈락됐다. 아구 답사 여행 프로그램에는 김교욱 씨가 단원의 자격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사진도 있다.


우울했다. 그 당시에는 자기의 돈을 내고 힘들고 위험한 곳을 여행하는 사람은 못난 사람인 줄 안다. 어디에서고 원조를 받고 떠나야 여행가 답다고 생각했다. 나도 김 교욱 님이 대단한 스폰서를 데려왔을 때 기뻤다. 과연 단장님이 유명하시구나 감탄했다.


후원을 거절하시는 교수님은 과연 돈이 귀하다는 것을 모르실까? 아니다.


누구보다도 돈을 좋아하신다. 사랑하신다. 아끼신다. 나는 그분이 돈을 많이 좋아하는 것을 안다. 그 누구보다 절약하시는 것을 보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타인의 후원을 받아하는 여행은 어떠한 영향이 있기에 저토록 몸서리치며 역정을 내시는 걸까?


나는 교수님이 진정되시길 기다린다. 아래층 안방에서 사모님하고 이야기를 나누시고 계시다. 선생님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으신 모양이다. 오늘은 늦었으니 다음 화요일에 오시오 하신다.


또다시 화요일이 됐다. 점점 동숭동 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신재동 씨도 엄재 량씨도 모두 알고 있다. 그 사람들도 은근히 스폰서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아무도 입 밖으로 낸 사람은 없다.


교수님 댁 앞의 냉면 집에서 만났다.


맥주를 한잔씩 돌렸다. 교수님이 목을 적신 후 말씀하신다.

"사람들은 후원을 받아서 가면 풍족하고 좋은 줄 압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요, 가지 않을 곳을 가라고 하며 꼭 보아야 할 것, 그것을 보려고 벼르고 왔는데도 못 보게 합니다. 일정은 바쁜데 같은 사진을 몇 번씩이나 찍고요. 같은 길을 10번이나 다시 간 적도 있어요. 목을 밧줄에 매어 끌려다니는 것 같아요."


"여행인이면 누구든지 자유로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돈을 내는 사람은 투자한 것의 몇 배를 벌려고 합니다. 투자자가 3억을 낸다면 그 사람은 30억을 보고 투자하는 겁니다."


잠시 숨을 고르신다.


"나는 내 것을 아껴서 여행을 합니다. 아낀 것은 내 겁니다. 자린고비라고 비웃는 사람도 있지만 길을 떠나면 아껴야 합니다."


하시고 싶은 말은 많지만 이만되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술맛 떨어지니 그 말은 그만 합시다. 자. 맥주 들어요. 조회장도 한잔."

"저는 교수님 드시라고 아낄게요."


 우리는 냉면을 먹고 그곳을 나왔다.


어두워지는 대학가 마로니에 공원 앞은 날씨가 추워서인지 한산하다. 서울 대학교가 있었을 때는 저 건너 2층 건물에 '별장'이라는 음악다방이 있었다.


생각이 짧았던 것이 교수님께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자기 것을 아끼고 남의 후원을 거절하는 마음이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 것 인지 알 것 같다.


현대자동차에서 답변이 왔다.


현대자동차에서는 갤로퍼 3대, 촬영팀인 이홍석 촬영감독, 박세철 기사, 권오정, 정노기 정비사 등 4명을 파견하겠다고 한다. 갤로퍼와 차량 정비를 후원해주는 대신 답사단을 촬영하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촬영을 위한 특별한 요구도 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단장님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여행 팀은 모두 9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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