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읽다1 <상처입은 천사>

미술을 모르는 나의 시선에서..

by 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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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선

처음 이 작품을 마주했을 때,
나는 천사가 아니라 그 천사를 부축하는 두 아이의 표정을 먼저 보았다.


뒤쪽의 아이는 마치 나를 원망하듯 묘한 눈빛으로 시선을 맞춘다.
그 눈빛에는 분노도, 슬픔도, 이해도 아닌
설명할 수 없는 ‘죄의 공유’ 같은 감정이 서려 있다.


마치 그들은 천사를 다치게 한 세상의 일부이자,
그 천사를 다시 세상으로 끌고 가야 하는
운명적인 짐꾼들처럼 보였다.


천사는 울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 얼굴엔 명확한 감정이 없다.


그 무표정이 오히려 더 슬프다.

아마도 그것은 감정을 느낄 여력조차 잃은 절망의 상태,
혹은 모든 감정을 초월한 체념의 순간일지도 모른다.


배경은 숨을 곳 하나 없는 황량한 평야다.
그 공간의 공허함은,
상처받은 순수함이 돌아갈 곳이 없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손에는 작은 꽃 한 송이가 쥐어져 있다.


그 꽃은 무기력한 현실 속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희망의 조각처럼 보인다.


이 작은 색의 온기 하나가
작품 전체의 절망을 조용히 버텨내게 하는 중심점이 된다.


검은 옷을 입은 앞쪽 아이는
마치 장의사처럼 차분히 의무를 수행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천사를 짊어진 채 묵묵히 걷지만,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없다.
그의 냉정함은 죽음에 익숙해진 자의 태도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아이들이 천사의 깨끗한 맨발을 보호하려는 듯 들고 있는 가마를 보면,
그 안에도 여전히 인간적인 연민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천사의 날개는 찢어졌지만, 치명적인 상처는 아니다.
그건 회복될 수도 있는 상처이며,
희미한 산맥과 듬성듬성 핀 들꽃이 그것을 암시한다.


세상은 여전히 잿빛이지만,
그 위에 피어난 작은 생명은
‘구원은 멀리 있지 않다’는 조용한 희망을 속삭인다.


이 그림은 나에게
인간이 저지른 죄와 그로 인해 짊어진 속죄의 무게,
그리고 절망 속에서도 놓지 않는 희망의 마지막 불씨를 생각하게 했다.


특히 깨끗한 맨발을 보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고결함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인간의 양심을 보았다.


아마 인간으로 따지면,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지켜주는 모습이라 생각한다.





-작품설명 : 후고 심베리 《상처입은 천사》(1903)


후고 심베리는 핀란드의 상징주의 화가로,
1903년에 ‘상처입은 천사’를 제작하였다.


이 작품은 헬싱키 아테네움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인간의 영혼과 감정, 그리고 내면의 상처를 시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북유럽은 산업화와 사회 변동 속에서 종교적 믿음이 흔들리고,
인간의 내면이 불안에 시달리던 시기였다.


당시 상징주의 미술은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감정과 영혼, 상처 같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표현하려는 흐름으로 전개되었다.


심베리는 그 가운데서

인간의 순수함과 고통, 그리고 구원에 대한 희망을
가장 섬세하게 표현한 작가였다.


‘상처입은 천사’는
핀란드가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던 시기의
사회적 억압과 국민적 슬픔을 은유하며,
인간이 짊어진 상처를 초월의 상징인 천사로 형상화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