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읽다3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미술을 모르는 나의 시선에서..

by 광해


나의 시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검도 피도 아닌 정적 그 자체다.


카라바조의 격렬한 장면을 떠올리면,
이 그림의 침묵은 오히려 더 섬뜩하다.


검의 날은 보이지 않고, 피도 없다.
하지만 그 보이지 않는 것들이
이 장면을 더 잔혹하게 만든다.


알로리는 모든 행위를 끝낸 직후의
무표정한 순간을 그려냈다.


유디트의 눈에는 이상한 슬픔이 서려 있다.
그녀는 승리자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무엇인가를 이루었지만,
동시에 돌이킬 수 없는 무언가를 잃은 사람처럼 보인다.


그 눈빛이 향하는 곳은 알 수 없다.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바라보는지도 모르는 듯,
혹은 바라볼 용기가 없는 듯한
공허한 시선을 하고 있다.


홀로페르네스의 얼굴은
잘린 머리의 형태로만 남아 있다.
그러나 그 표정에는 단죄와 후회가 공존한다.


살아 있는 자가 죽은 자의 표정을 하고,
죽은 자가 오히려 마지막 인간의 표정을 남긴다.


유모는 그 사이에서 방향을 잃은 사람처럼 서 있다.
그녀의 시선은 어디에도 닿지 않고,

그 존재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흐리게 한다.


유디트의 옷과 손에는 피 한 방울도 묻지 않았다.
그 완벽한 청결함이 오히려 더 섬뜩하다.
죄의 흔적을 철저히 지워버린
인간의 냉정함 같다.


그녀는 승리했지만, 그 승리는 기쁨과는 멀다.
보이지 않는 피가 그림 밖 어딘가에서
영원히 떨어지는 듯하다.


카라바조가 붉은 커튼으로 잔혹함을 감쌌다면,
알로리는 그 대신 녹색의 커튼을 드리웠다.


녹색은 생명의 색이지만,
이곳에서는 생명이 아니라
숨막히는 침묵의 상징처럼 보인다.


빛은 인물들을 감싸면서도
그들 사이의 거리를 더 넓혀놓는 것 같다.


그림자는 살아 있는 듯 요동치지만,
인물들의 표정은 정지해 있다.


그 극단적인 입체감이 오히려
감정이 멈춘 공간을 만들어낸다.


나는 이 그림을 보며,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를 죽인 것이 아니라
자신 안의 감정을 단죄한 것처럼 느꼈다.


알로리의 유디트를 통해,
감정과 목적을 잃은 유디트의 그림자를 본 것 같다.




-작품설명 : 크리스토파노 알로리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1613)


크리스토파노 알로리는 르네상스 후기에서
바로크로 넘어가는 전환기의 화가로,
1613년경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를 제작하였다.


이 작품은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17세기 초의 이탈리아는

르네상스의 이상주의가 점차
인간의 감정과 내면적 진실로 옮겨가던 시기였다.


알로리는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작품에 투영한 화가로,

이 작품에서 실제 연인의 얼굴을 유디트로,
자신의 얼굴을 홀로페르네스로 그렸다.


이로써 작품은 종교적 이야기이면서도
복수와 후회, 자기 동일화라는
인간적 감정의 깊이를 드러낸다.


이는 종교적 서사보다 개인의 심리와 감정에 초점을 둔
새로운 회화적 접근이며,
예술이 점점 인간의 내면으로 향해 가던
바로크 시대의 시작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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