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가 선하다고 해서 결과도 선한 건 아니다.
나는 이상한 사람들을 본다.
딱히 나쁘지도 않은데,
굳이 상처를 준다.
그들은 악의조차 없다.
그래서 더 곤란하다.
악의를 가진 사람은
경계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악의 없는 사람은
경계할 순간을 주지 않는다.
그들은 그냥
자기 말과 행동의 무게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 둔감함이 만들어낸 결과는 언제나 현실이다
악의 없는 상처는 대개 여기서 나온다.
말은 빠르고,
생각은 느리고,
시야는 좁다.
상대가 어떤 맥락에 있는지,
어떤 감정 상태인지,
어떤 타이밍인지
그들은 아예 보지 못한다.
아니, 보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상처란 건 대부분 이런 빈틈에서 나온다.
이 빈틈을 메우는 것은
지능이 아니라 감각이다.
그들은 말한다.
“나쁜 뜻 아니었어.”
“그냥 한 말이야.”
“그렇게까지 생각할 줄 몰랐지.”
맞다.
그들은 정말 악의가 없다.
문제는
의도는 내 마음 안에 있고,
상처 또한 마음에 남는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건 결과 뿐이다.
선한 의도는 변명이 될 뿐이다.
악의 없는 상처를 주는 사람은
대부분 자기 기준 안에서만 산다.
자기 감정, 자기 속도, 자기 화법.
세상이 자기처럼 느끼고
자기처럼 반응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타인의 경계선을
자기도 모르게 넘는다.
이건 악의가 아니라 시야의 한계다.
하지만
한계는 설명이 될 뿐,
결코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내가 한 말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 말은 선함의 증거가 아니라
성찰 부족의 증거이다.
악의는 드러나지만,
둔감함은 숨어 있기 때문에
나는 이런 유형을 더 경계한다.
이 사람들은
미워할 가치도 없다.
그들은 그저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일 뿐이고,
생각보다 세상엔 많다.
내가 할 일은 간단하다.
선은 인정하되,
가까워지지는 않는다.
악의는 없지만,
피로는 남기 때문이다.
거리두기는 악의가 아니라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