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파오

제10화

by 김경숙

내가 글을 쓰기 위해 온몸에 힘을 주는 동안 북어와 풍채는 지루한 몸을 비틀었다. 풍채는 열쇠 꾸러미를 자꾸만 만지작거렸다. 그때마다 쇳소리가 나서 쓰는 데 여간 방해가 되는 게 아니었다. 북어는 순자가 내온 부드러운 질감의 원두커피를 아끼듯 홀짝였다. 매혹적인 재스민 향이 북어의 찻잔에서 흘러나왔다. 생각할수록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었다. 북어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아, 하고 감탄을 자아냈다. 입안에 감도는 초콜릿 향 때문이었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내가 애용하는 커피였다. 그걸 뻔히 알면서 손님 접대용으로 쓰다니. 불만스러운 마음이 순자에게로 향했다. 북어가 일어나 뒷짐을 진 채 어정거리기 시작했다. 눈으로 촘촘히 내 방을 훑기 시작했다. 순자는 보릿자루처럼 구석에 서서 빈 쟁반을 가슴에 보듬은 채 나를 지켜보았다. 마치 감독관 같았다. 순자는 내 간병인이다. 오래전부터 집안의 잡다한 일과 가사 일을 도맡아 해오다가 내가 쓰러진 뒤부터 나까지 도맡았다. 그러니 간병인이라기보다는 집사란 호칭이 걸맞을지도 모른다. 순자는 아내에게 신뢰받고 있다. 순하게 보이지만 생각보다 교활할 정도로 눈치가 빨랐다. 어느 상황에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특히 강자와 약자를 잘 분간할 줄 알아 살아남는 법을 알았다.

“그림 멋진데요. 이 그림이 교수님의 아버님이신 한승기 작가님이 그리신 그림이 맞나요?”

커피 향 때문인지 북어는 여유롭고 차분한 시선으로 방안을 훑었다.

북어가 감상하고 있는 그림은 아버지의 그림이었다. 몇 년 전 경매를 통해 몇억 원대에 팔렸던 원본이 아닌 에디션이었지만, 캠퍼스 천에 인쇄한 그림은 원본 같았다. 작가의 세계관이나 내면세계를 보기에는 북어의 그림 감상은 초보 수준이었다. 북어도 SNS에 떠도는 나에 관한 사진과 정보들을 접한 것일까. 내가 한때 촉망받은 교수였고, 작고한 내 아버지의 그림 덕분에 어느 정도 재산이 있을 거라는 것과 또 그것을 누가 관리하고 있는지 궁금해들 하는 댓글 말이다. 북어가 사뭇 진지하게 감상하는 동안 나는 단문 한 줄을 완성했다.

“그 목걸이는 내가 그녀에게 선물한 것이 맞습니다.”

그녀는 제 아내보다 더 나에게 온 정성을 다해 돌봐주었습니다. 그 목걸이는 그 답례입니다. 나는 이런 말까지는 쓰지 않았다. 손에 힘을 풀자 볼펜이 바닥에 떨어졌다. 뜨거운 눈물이 가슴에서부터 솟구쳤다. 아버지도 나를 위해 이렇게 힘들게 그림을 그렸을까? 붓을 입에 물고서…. 내가 치파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단문 한 줄을 힘겹게 완성한 것처럼. 내가 애써 외면했던 아버지, 그 아버지 그림 덕분에 비참하나마 내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그림은 지금도 경매를 통해 낙찰되고 있으며 그 일은 아내가 전담하고 있다. 아내가 내 곁에 머문 까닭이다.

북어는 내가 온 힘을 들여 쓴 한 줄의 단문을 눈으로 훑으며 중얼거렸다.

“외로운 마음을 노려 금품을 뜯어내는 꽃뱀인 줄 모르고….”

복어가 한심하다는 듯 내뱉자 풍채가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목적을 달성한 둘은 순자가 가는 뒤를 따라 현관 쪽으로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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