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저것 좀 봐. 노란 개나리꽃이 시루에 담긴 콩나물 대가리 같이 올라왔어?”
나는 창밖에 콩나물 대가리처럼 올라온 노란 개나리를 배경으로 사진이 찍혔다. 어떤 사람은 동영상을 녹화했다. 집에 돌아와 페이스북과 유튜브에 우스꽝스러운 내 모습이 올려진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철우 교수님 사랑합니다. 힘내세요.’란 용기를 주는 댓글이 무수히 올라왔다. 창피함과 뭉클함이 교차한 혼란스러운 마음을 나는 단식의 행동으로 치파오에게 화를 냈다. 치파오는 내게 사과하는 대신 내가 묻지도 않은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치파오는 계속 말했다.
치파오는 한국에 온 지 삼 년 됐다고 했다. 한국에 온 첫날부터 요양병원에서 간병 일을 했다. 입원환자 대부분은 치매, 뇌졸중, 파킨슨병, 루게릭병, 암 환자였다. 여덟 명의 환자를 혼자서 돌봤다. 24시간 교대 근무였다. 간병인들은 환자만 돌보지 않았다. 환자의 침상을 정리하고, 기저귀를 교체해 주고, 환자의 양치질과 세안, 음식을 주입하는 콧줄 속에 가래를 뽑는 일까지 했다. 환자 목욕도 시키고,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체위를 바꿔주고, 휠체어에 태워 물리치료실을 오가고, 워커로 걷기 연습까지 도와야 했다. 그렇게 일하다 과로로 쓰러진 간병인도 있었다. 간병인은 환자를 돌보다 쓰러져도 산재 처리가 되지 않았다. 노동자로 등록되어 있지 않아서였다. 반대로 간병인 때문에 환자가 다치면 전부 간병인이 책임져야 했다. 기계처럼 쉼 없이 일한 뒤에도 협회에서 월급을 떼어갔다. 협회를 통해 일자리를 얻어서였다. 치파오가 일하던 요양병원마저 폐업한 바람에 몇 개월 치의 월급을 받지 못한 채 체류 기간이 만료되어가고 있었다. 재외 동포 간병인들은 월급을 받지 못한 부당한 처지에 놓여도 노동법에 관한 보호 조치마저 마련돼 있지 않았다.
12
치파오는 자신의 우울한 이야기를 들려주다 말고, 내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발끝을 세워 빙그르르 돌다가 허리를 이리 돌렸다 저리 돌렸다, 를 반복했다. 나풀거리는 옷깃 사이로 아내의 목걸이가 슬쩍슬쩍 비쳤다. 내가 계속 무표정하게 있자, 그 빵빵한 엉덩이로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미안해!’
나는 무표정한 표정을 유지하려 노력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만 것이다. 무척 어색한 미소였다. 오랜만에 지어본 미소였기 때문이다. 내가 웃자, 치파오가 침대 맡으로 엎어지듯 달려와 내 볼에 입을 맞추었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인기척에 잠이 깼다. 눈을 떠보니 치파오가 아닌 순자가 커튼 앞에 서 있었다. 순자가 퇴원한 모양이었다. 커튼에 가려진 햇살. 방안은 다시 어두워져 있었다. 연극이 끝난 무대 같았다. 나는 눈으로 치파오를 찾았다. 치파오가 내 볼에 입 맞춘 부드러운 촉감이 꿈처럼 느껴졌다. 메마른 가슴에 쓸쓸함이 밀려들었다. 인사도 없이 가버린 치파오를 배웅이라도 하려는 듯 나는 쓸쓸한 눈을 굴렸다. 순자가 물었다.
“찾는 거라도 있으신 가요, 교수님?”
나는 커튼을 걷어달라고 우우우, 거렸다.
“교수님? 괜찮으세요?”
순자는 놀란 눈으로 반복해서 물었다. 내가 그토록 연구하려고 애썼던 로봇의 저장된 말 같았다. 나는 우우우, 거리며 말했다.
“커튼을 걷어줘요.”
“교수님, 의사를 불러드리겠습니다.”
순자가 말을 반복했다.
“그 애쓰지 마시고 간단하게 맞다, 아니다, 로만….”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북어가 재차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