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의 아이들
학기 말, 그리고 특히 학년 말이 되면 학교의 선생님들은 공통의 업무를 한 가지 하게 된다.
나이스 플랫폼을 활용한 학생 성적처리가 그것이다. 말만 들으면 간단해 보일 것 같은 이 업무는 의외로 지켜야 할 양식도 많고, 적어야 할 분량도 많다. 신규 교사 시절 혹여나 실수를 하여 동료 교사들에게 누가 될까 노심초사하며 반 아이들의 생활기록부를 완성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얼마 전, 아버지가 자신의 생기부가 필요하다면서 50년이 다 되어가는 낡은 국민학교 생기부 하나를 팩스로 받아온 일이 있었다. 과거의 교사들은 어떻게 학생들을 기록했을까 하는 순수한 호기심 반, 아버지의 학창시절 그것도 아주 날것의 국민학교 생활은 어땠을까 하는 껌껌한 궁금함 반으로 냉큼 읽어보았다.
6년 치의 생기부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그 옛날 생기부의 분량은 A4로 1장 남짓이 전부였다. 요즘 이렇게 적었다가는 당장에 민원이 들어올 것이다. 그런데 학생 수가 60~70명이었던 과거에는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정말, 정말로 이건 뭐지 싶은 곳이 있었다.
' 2학년 - 평범함 '
아이의 학업 수준을 나타내는 학업발달 기록란에 적혀있는 단 3글자!
나도 교사다 보니 누군지도 모를 아버지의 2학년 담임선생님께 질문공세를 퍼부었다.
저희 아이,, 아니 저희 아버지가 대체 얼마나 평범했길래 그래 적으셨어요 선생님?
아니면 대체 생기부 적는 게 얼마나 귀찮으셨길래 저래 적으셨어요 선생님? 하면서 말이다.
교대 재학생 시절, 교사 출신 교수님이 말씀해 주신 내용이 떠올랐다.
"교실의 3분의 1은 천사, 반대로 3분의 1은 악마이며 나머지 3분의 1은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의 생기부에 평범하다고 적었다가는 큰일 난다. 아니 애초에 학년에서 서로 검토할 때 바로 수정 요청이 들어올 거다. 발표에 적극적이라는 둥, 모둠 활동에서 주도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둥 어떻게든 그 아이를 떠올리며 많은 행동발달 사항을 적어내느라 진땀을 뺐을 것이다. 그러나 50년 전 당당한 한 선생님의 세 글자를 보라. 진한 에스프레소처럼 아주 적은 양이지만 깊은 풍미가 느껴지지 않는가.
평범한 아이를 평범하지 않게 적어내야 한다. 그런데 평범하지 않은 아이는 평범하게 적어야 한다.
'교육적인 말'로 아이들을 포장하는 것은 매 번 어색하고 어렵기만 하다.
생기부 작성을 할 때마다 골머리를 앓는 한 초등교사의 푸념치고는 너무 길어졌다.
그런데 아버지, 아버지도 마냥 평범한 아이는 아니었나 봐요.
신체건강발달상태
' 5학년 - 하품을 잘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