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물 안의 개구리

by 무채색 개발자

안녕하세요. 설비 엔지니어에서 개발자로 전향한 '우물 안의 개구리'였던 무채색 개발자입니다.


오늘 처음 브런치에 글을 올립니다.

왜 개발을 하게 되었는지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K배터리 열풍 속으로

2021년, 컴퓨터정보공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아두이노로 졸업작품을 만들던 시대였죠. IoT와 4차 산업혁명이 대세였던 그 시절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졸업 후 현실은 달랐습니다. 한창 호황이었던 2차전지 산업이 더 빛나 보였고, 미래가 확실해 보였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삼성SDI' 같은 기업들이 연일 뉴스를 장식했고, 지방의 취업 시장은 온통 K배터리 열풍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렇게 2차전지 설비 엔지니어가 되었습니다.



0.1mm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세계

주 업무는 불량률을 줄이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프레스 금형의 치수를 측정하고, 테스트하고, 또 테스트했습니다. 0.1mm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반복 작업. 캘리퍼스와 마이크로미터가 제 손에서 떠날 날이 없었습니다.


"불량률 0.5% 줄이기" - 우리 팀의 연간 목표였는데, 방법은 언제나 똑같았습니다. 더 자주 측정하고, 더 꼼꼼히 육안 검사하는 것뿐.



"원래 그래. 20년째 이렇게 해왔어."

4년 반 동안 겪은 협업 방식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하는 거예요?"라고 물으면 "원래 그래. 20년째 이렇게 해왔어."


새로운 방법을 제안하면 "야, 그런 거 하다가 문제 생기면 네가 책임질 거야?"


사수들은 변화를 두려워했고, 매뉴얼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Excel 시트에 수기로 데이터를 입력하면서도 "이게 제일 확실한 방법"이라고 믿었습니다. 센서가 쌓아둔 데이터는 그저 서버 용량만 차지할 뿐, 아무도 분석하지 않았습니다.


'스마트 팩토리'라는 간판만 걸어둔 채, 20년 전 방식 그대로 일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질문은 막히고, 호기심은 짓밟히고, 새로운 시도는 "쓸데없는 짓"으로 치부됩니다.



정말 작은 세상에 갇혀 있었던 나

그 시절의 저는 정말 작은 세상에 갇혀 있었습니다. 공장 밖에는 토스, 당근마켓 같은 스타트업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었는데, 저는 그런 세계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개발자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IT 서비스 기업이 뭘 만드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매일 같은 기계 소리, 같은 불량률 보고서, 같은 사람들과의 같은 대화. 그게 제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일이 전혀 기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일이 전혀 기쁘지 않았습니다.

출근길에 '오늘도 똑같겠지' 하는 한숨

퇴근길에 '내가 오늘 뭘 했지?' 하는 허무함

월급날에도 '이 돈 받으려고 내 시간을 팔고 있구나' 하는 씁쓸함


가장 무서웠던 건, 10년 차 선배들의 모습이 제 미래처럼 보였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마이크로미터만 들고 있는 그들을 보며 '저게 나의 10년 후구나' 싶었습니다.


'이 일을 내가 왜 해야 하지?'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게 이런 거였나?'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반복을 경험해 봐서 알게 된 개발의 의미

요즘 후배들이 "왜 개발을 하고 싶냐"라고 물을 때마다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개발 말고 반복되는 것들을 경험해 봐서, 이 개발이라는 일이 얼마나 의미 있고 재밌는지 더 잘 알게 됐어."


개발을 정말 잘하는 분들에게 "개발하시는 이유가 뭔가요?"라고 물어보면 돌아오는 답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끝없는 성장, 현실적인 이유(연봉), 유연한 환경.



끝없는 성장

저에게는 '끝없는 성장'이 가장 매력적입니다.


4년 반 동안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만 반복하던 제가, 이제는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고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조금 더 나은 개발자가 되어 있다는 것.


그게 제가 개발을 하는 이유입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