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SKY 캐슬>이 남긴 것
하늘 아래 제일 높은 성(SKY 캐슬)에서 벌어지는 탐욕, 그리고 진실
“한국에는 캐슬(城)이 왜 이리 많죠?” 한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한 말이다. 캐슬이라고 하면 중세 시대의 높은 성곽이 떠오른다. 서민들이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그들만의 고급스러운 공간. 그래서일까? 건설사에서는 유독 ○○캐슬이라는 이름의 아파트를 많이 짓는다. 그중에서도 역대 캐슬중 TV에서 가장 핫했던 한 캐슬은 단연 ‘SKY 캐슬’이 아닐까?
대한민국 상위 0.1%가 모여 사는 명품 타운하우스 SKY 캐슬. 널찍하고 쾌적한 공간, 멋진 차, 화려한 드레스, 그들만의 성대한 파티. 보여지는 비주얼은 단연 최고급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자식을 최고 명문대에 보내려는 명문가 사모님들의 처절한 욕망이 꿈틀거리면서 그들만의 리그가 펼쳐진다. 그녀들은 서로 시기하고 반목하다가도 얻어낼 것이 있으면 금세 똘똘 뭉친다. 그리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우리 속담이 ‘서울대 의대’만 가면 된다로 바뀐다. 수십억을 지불하면서 최고의 입시 코디네이터를 붙인다. 아이들이 먹는 음식, 공부방의 구조와 채광, 심지어 벽의 그림 액자까지 성적을 올리기 위해 셋팅된다.
이 드라마의 스토리는 작가의 상상력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상류층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이 종합선물세트인양 포장되어 있다가 회를 거듭할수록 하나씩 드러난다. 자녀의 도둑질을 학업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편인양 가볍게 여기는 엄마, 피라미드 맨 꼭대기에 올라가야 한다고 매순간 아이를 닦달하는 아빠, 살인사건이 일어나 한 친구는 죽고 다른 친구는 누명을 쓴 상황이 내신에서 몇 명을 제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반기는 부모, 학교 관계자와 손잡고 문제지를 빼돌려 전교 1등을 만들어내는 기업형 입시 코디네이터의 “어머니, 저만 믿으시면 됩니다”라는 대사는 이 드라마의 압권이다.
그런데 자식 교육에 올인하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떠올려보면 캐슬 내의 그들만을 추악하다고 마냥 손가락질할 수도 없다. 캐슬 밖의 우리도 희망, 적성, 능력과 상관없이 명문대 합격이라는 좁은 길로 아이들을 마구 내몰고 있지는 않는가. 치열한 전쟁터에서 부모가 아이를 닦달하는 건 탐욕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본능이라고, 없는 집에서 태어났으니 좋은 대학가서 출세해야한다고 아이를 끊임없이 종용하지 않는가. 개천에서 용이 나기 어려운 시대라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가 통용되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하면서 말이다. 드라마 열풍으로 부모들의 불안이 확산되어 사교육 의존도가 더 높아질까 염려스럽다. 입시 코디네이터에 대한 문의가 쇄도하는 작금의 세태 역시 우려된다.
반면 이 드라마를 통해 그동안 산적해 있던 교육 난제들이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르면서 교육 담론들이 쏟아지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직업을 사회적 역할 분담이나 기능이 아닌 신분으로 여기는 분위기, 부모의 탄탄한 재력은 자녀의 대학 합격까지 담보할 수 있는 우리의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캐슬의 단단한 성벽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학력, 직업, 교육 제도, 사회 구조, 임금 등 맞물려 있는 여러 변수들. 우리 사회의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한다는 공감대가 더욱 확산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공감대의 핵심은 바로 우리 아이들의 행복이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다.
드라마 주제곡인 ‘We all lie(우리는 모두 거짓을 말한다)’가 주는 함의도 놓칠 수 없다. 누구를 위한 교육이고 무엇을 위한 교육일까? 정작 부모의 체면을 유지하고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자식의 성공을 통해 못다 한 인생을 보상받기 위해, 쌓아올린 부와 신분을 대물림하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자녀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 억지 주장을 펼치며 우리는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묻고 싶다. 자녀 교육을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그래서 댁의 아이는 지금 행복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