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대남이다.

1. 이대남 시리즈, 그 첫 담론

by 내면의 온도

이대남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나는 그저 웃어넘겼다.

지금도 별 생각은 없다. 다만 우리를 사회의 골칫덩이처럼 느끼는 게 아쉬울 뿐.


나는 보수를 지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편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친구들이 보수를 지지하는 이유는 이해할 수 있었다.
최소한 보수는 약자를 위한다며 특정 집단에만 혜택을 주진 않으니까.(그게 옳은지는 둘째 치고)


이대남은 참 애매하다.
대학을 나와도 안정된 일자리를 찾기 힘들고,

집값은 부모 세대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비싼 현실.

그것도 좋다. 시련 없는 세대가 어디 있겠는가?

사회 초년생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기득권이 돼버렸다.

무언가 가져보기라도 했다면 억울하진 않았을 텐데.


결국 이대남은 페미니즘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애증의 관계랄까.

그렇게 뭉치기 힘들었던 20대 남성들을 하나로 단결시킨 것도

결국은 '페미니즘'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차후에 또 천천히 다뤄보기로 하고,


이대남들이 불편한 건 당연하다.

페미니즘은 말한다.

"이 세상은 남성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 이제 그것을 바꿔야 한다."

이대남도 남자니까... 결국 "바꿔야 할 대상"이 되는 것이다.

사실 "너희들이 이때까지 누려온 것은 잘못되었어, 잘못을 뉘우치고 가진 것들도 다 내려놔."

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에게 "당연하죠, 제가 너무 잘못했습니다. 다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불편한 게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의 아버지들은 그렇게 했다.

그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위로는 어머니가, 옆에는 누이와 동생이, 아래에는 딸들이....

누구보다 차별을 보고 살아온 세대가 아닌가. 나였어도 그랬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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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혜택 받은 남성들"에 이대남도 슬쩍 집어넣었다는 것이다.

여권 신장을 위한 좋은 일이라면,

당연히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대남들은 딱히 혜택 받은 적이 없다.(적어도 그렇게 느낀다)

그들의 학창 시절은 '여성이라서 배려받고, 남성이라서 희생당하는 걸 강요당하던 시절'이었다.

동시에 "여성과 남성은 동일하다."라는 교육을 태어날 때부터 받은 첫 세대였다.

그 괴리를 지적하면, 찌질한 남성이 되는 것은 덤이었다.


물론 안다. 우리는 여성이 아니기에 여성이 느끼는 고통을 온전히 이해할 순 없다.
하지만 적어도 여성들은 고통을 호소하면 들어줄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는 누가 들어준단 말인가


어쩌면 나는, 그저 누군가 들어주길 바라며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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