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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계절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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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언캐슬 Nov 13. 2024

부운지浮雲池, 천년의 기다림

  

그때 마을 어귀에 도달하면

거쳐야 할 의식처럼 안개 자욱한 둑을 만난다

새벽에 도착한 차창 밖

밤새 성큼 자라 웅성대는 안개

안개는 자신의 그림자를 먹고 몸집을 키운다     

안개는 가끔 일렁거리는 바람의 갈등에 움찔은 하겠지만

온 사위에 솜이불을 덮어 서두르는 새벽을 다시 재우려 한다

그것이 물인지 흙인지 풀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한쪽 모퉁이에서는 일찍 깬 물고기의 물 차는 소리

사냥에 실패한 어미 새의 신음이 배어 나와도

안개는 꿈쩍도 않고 둑을 버티고 있다

마치 아침 햇살을 기다리는 듯      

순간

햇살이 밀물처럼 솟아오르면

안개는 얼른 족쇄를 풀어 몸집을 순식간에 물속으로 숨는다     

바람이 선선하다

새들은 호수의 저항을 받으며 낮게 물을 탄다

물속으로 거꾸로 잠긴 야트막한 산

봉우리 아래 가을처럼 구름이 고즈넉이 졸고 있다

가끔 새들이 자맥질할 때마다 화들짝 깨어나

안절부절못하곤 하는 물속 구름과 산     

잠에서 깬 구름은 가벼운 기지개를 켠다

물의 피부는 짜릿한 전율을 느끼고

물속 깊숙한 곳에서 천년 기억을 깨우려 한다     

연蓮은 이미 알고 있었다

깨어나야 할 시간이 오백 년이건 천년이건

숨죽여가며 기나긴 시간을 버텨내야 했다

살을 에는 한파와 불볕 된더위도 천 번이나 참아내야 했다

발아의 기억을 잊지 않으려 되뇌고 되새겼다

연緣은 있다고 해서 그곳에 늘 있는 건 아니었다

때로는 호수 속 졸고 있는 구름의 꿈결처럼

혹은 목을 스치는 안개의 간지럼처럼 모호했다     

발아하기 가장 좋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서두르면 사라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발아의 비밀번호를 풀어낸다

아침노을 녘 물길마다 희고 붉은 고함들이 우줄우줄 걸어 나온다

급소를 들켜버린 연꽃의 웃음이 자지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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