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없어질까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꼭 도착해야 할 곳이 없어
마음 졸여가며 달려야 하는 바퀴
앞바퀴가 뒷바퀴의 꼬리를 무는 뒤섞인 시간
거꾸로 가는 모든 것은 다급하게 자신의 과거를 지우는 것이다
바람을 거슬러야 하는 어미새
날개에서 배어 나오는 피곤을 지워야 하고
허공의 끝을 닿지 못한 맨드라미의 울분을 지워야 하고
날개도 없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미의 잔상을 지워야 하고
피부 깊게 빗금 친 마음의 잔해를 지워야 하고
퐁퐁대는 터널 속에 항상 블랙홀이 켜 있어
그 속 깊숙한 곳에는 처음으로 가려는 길이 열린다
원심력과 가속도의 중간쯤 어디에서 방향을 전환한다는 것은
시간을 되돌린다는 것이다
지나온 삶의 자국들을 말끔히 지울 수 있다
지나온 세월보다 훨씬 더 빠르고 완벽하게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러기엔
거꾸로 가기 싫어하는 바퀴의 비명을
소름 돋으며 참아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