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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키퍼 Nov 23. 2023

다시 줄리어 반즈


그래서, 이제 나이가 드니, 이게 나의 인간적 기능 가운데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젊은이들이 내가 그들을 부러워한다고 믿도록 놓아두는 것. 글쎄, 먼저 죽는다는 잔인한 일과 관련해서는 분명히 부러워하지만, 그 외에는 아니다. 젊은 연인들을 보아도, 그들이 거리 모퉁이에서 수직으로 얽혀 있거나, 공원의 담요 위에서 수평선으로 얽혀 있는 것을 보아도, 그것이 나에게 불러일으키는 주된 느낌은 일종의 보호하고자 하는 태도다. 아니, 연민은 아니고, 보호하고자 하는 태도다. 그렇다고 그들이 내 보호를 원할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그런 행동에서 허세를 보일수록 내 그런 반응은 더 강해진다. 나는 세상이 아마도 그들에게 하게 될 일로부터, 그들이 아마도 서로에게 하게 될 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고 싶다. 하지만 물론, 이건 가능하지 않다. 나의 돌봄은 요구되지 않고, 그들의 자신감은 제정신이 아닐 정도니가. (줄리언 반즈/연애의 기억 중)



줄리언 반즈의 소설을 다시 읽는다. 그 지적인 문체는 정말 눈물이 핑 돌 정도다. 내가 나이 먹는 것이 슬프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젊은 사람들이 겪을 파란만장함으로부터, 어쨌건 지나친 감정 소비는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절대적으로 좋은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보호라는 말도 참 적절하다. 이제는 내가 돌봐야 하는 대상이 있고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먼저다. 그런 지금이 싫지 않기에 되돌아간다면... 이란 상상을 하지 않게 되는듯하다.

그래도 나는 조금 더 젊게 살고 싶고(엉망진창으로 늙고 싶지는 않다) 나이 먹은 사람들한테 느껴지는 어눌함은 내 몸에 새기고 싶지 않다. 쨍쨍하게 맑은 정신으로 감각을 잃지 않고 깨끗한 겉모양을 지키고 싶다. 그런 면에서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내가 기특하다, 진작에 이런 꾸준함을 장착했더라면 참 좋았겠다 싶다. 아무리 봐도 꾸준함 만큼 의미 있는 게 없다. 행복함은 일상에서 꾸준히  이루어지는 일들을 착착 진행시키는 데 있다.

중학생 조카가 하는 말이 매우 인상적이다. 자기 엄마가 50년 세월의 내공을 자주 이야기 하는것이 짜증난다는 것인데, 이야기인즉은 엄마가 꼰대처럼 라뗀느~ 어쩌구의 말을 밥먹듯이 해대서가 아니라 엄마의 나이가 죽음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이 슬프다는 얘기다. 그때 나는 궁색하게도 나이 먹었다고 더 빨리 죽음으로 가고 있는건 아니다. 순서가 어디있니, 단지 죽음은 삶과는 상관 없는 이야기. 죽음 이후는 사는것과는 관련이 없으니 지나치게 그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것, 우리에게 의미 있는건 오늘 하루,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관리할수 있는 오늘 하루를 재미있고 의미있게 사는 일. 그것만이 내가 할수 있는 일이다. 뭐 대충 이런 이야기를 했던것 같다. 물론 중학생 조카가 그 말이 대단한 철학이라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겠지만 살다보면 그녀도 알게되겠지, 사느건 살면서의 의미이지 그 이후는 어쩔수 없다는것을. 어린시절의 내가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를 잔소리로 치부하고 나름의 이야기에만 빠져있었던것을 생각하면 내가 주저리주저리 하는 말은 아마도 허공으로 날아갔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어쩔수 없지. 작은 위로가 되는 길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나눠보는게 어른의 일이 아닌가. 건강하게 아이들이 자라기를 , 어린 시절 내가 했던 수많은 오류들.. 나쁜 생각들...피할수 없는 것이었겠지만 내 옆에 좋은 어른이 있었다면 좋았겠다라는 생각을 했던 내가 기억난다.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은데, 이런게 어른의 속성이고 어린이들의 속성인지는 알수가 없네. 다만 오늘 내가 할 일들을 또 차곡차곡 해나가는것만이 내게 최선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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