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트먼트도 작성하지 않은 채 새벽에 쓴 쪽대본으로 영화 촬영을 한다는 홍상수의 작업 스타일은 이미 유명하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우연성을 초대한다. 특히, 이따금 영화에 등장하는 나비(「당신자신과 당신의 것」)나 고양이(「강변호텔」)같은 유기체의 움직임은 도무지 고의로 연출할 수 없는 우연이지만(고양이는 그렇다 하더라도 나비를 어떻게 교육할 수 있겠는가?) 아주 절묘하다.
우리는 홍상수 영화 특유의 스타일에서 이질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발동된 소극적 소격효과를 체험한다. 그러다 종종 프레임 내부로 뜻밖의 피사체가 침투하고, 카메라는 돌연 이를 강조하며 씬을 마무리 짓는다. 이 즉흥적인(혹은, 즉흥적으로 보이는) 시선은 혼란스럽다. 절묘한 피사체의 등장은 우연인가, 고의적 연출인가. 그러다 문득, 징그러울 정도로 전경화된 인물의 내면과 영화의 어법은 관객의 세상과 병렬된다. 이제 영화는 우리에게 그 관계를 탐색하도록 권유한다. 그러니까 이러한 피사체는 영화가 현실의 재현된 이미지가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세계로서 실재함을 주장하며, 동시에 그것을 현실과 느슨하게 이어주는 매개가 되는 것이다.
유기체가 아닌 장소를 통해서도 이러한 관계를 재인할 수 있다. KMDb에 기재된 우혜경의 평에서 이야기된 것처럼 홍상수는 “영화에서 공간이 아닌 '장소'를 선택”하는 경향이 크다. 그리고 홍상수에게 선택된 장소에는 극 중 사건과 인물의 욕구가 음각되어 영화와 현실의 구획 모두에 깃드는 것만 같다.
강릉(「강원도의 힘」)이나 통영(「하하하」), 북촌(「북촌방향」)과 같은 장소들, 홍상수 영화에 등장하는 장소들은 거대한 실체감을 가진다. 그리고 영화를 관람한 누군가가 이러한 장소에 찾아가 존재하는 것은 다만 영화 촬영지를 방문한다는 팬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세계와 세계 사이의 증인이자 중개자가 되는 영화적 순간의 연속을 체험하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