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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파인더 Sep 27. 2022

NZ (뉴질랜드) 6일 차

Wai-O-Tapu

Thermal wonderland, Wai-O-TAPU

 "아빠~ 혹시 방귀 뀌었어요?" 자동차의 창을 열며 큰 딸이 인상을 찌푸린다. 그리고는 창을 열어 신선한 공기를 마시려고 얼굴을 내민 딸은 이내 고개를 다시 차 안으로 돌린다. "도대체 이게 무슨 냄새예요? 읔! " 난생처음으로 맡아보는 유황가스의 존재감에 아이들이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에도 유황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 있지만 이곳 로토루아가 만들어내는 강력한 유황의 향을 맡을 수 있는 온천 지대는 그리 흔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이와 같이 로토루아에 오면 꼭 들러야 할 곳이 바로 '와이-오-타푸'라 불리는 천연 온천지대이다. 수 천년에 걸친 시간 동안 땅 속 깊숙한 곳에서 끓어오르는 마그마가 지표면 아래의 지하수와 만나 지표면을 뚫고 분출된 온천수가 이루는 장관은 그야말로 경이로움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지구의 남단에 위치한 뉴질랜드의 대 자연이 만들어낸 최고의 걸작품 중 하나가 바로 이 로토루아에 있는 것이다. 온천이라고는 수안보 온천, 부곡온천과 같이 자연 온수를 활용한 온천 시설만을 방문해본 촌스러운 스무 살 시절 나에게 이곳 와이오타푸 온천지대는 실로 충격의 장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우리 아이들은 아빠의 십 수년 전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미간은 찌그러져 있는 모습으로 나의 과거와 그 형상을 겹치는 데칼코마니가 되어 이 장소를 방문하게 되었다. 

https://www.waiotapu.co.nz/

 작은 숲길은 어느 제주의 곶자왈에서 만나볼 수 있는 낯익은 풍경이다. 그러한 친근하기 그지없는 작은 숲길이 펼쳐진 입구를 지나자 내 뇌리가 기억하고 있는 자연이란 풍경 속에서는 만나기 힘든, 초자연적인 색감을 지닌 남쪽의 자연과 마주하게 되었다. 

영생을 보장하는 열매이지만 아무도 손을 대지 않는다.

 손을 뻗어 열매 하나를 따서 입 안에 머금으면 태초의 영롱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고 나는 슈퍼맨과 같은 초자연적인 힘을 소유하게 될 터이나, 나의 무의식은 수십만 년을 거쳐 DNA를 통해 전달되었던 강력한 위험 신호가 이 열매들을 맹렬하게 거부하고 있었다. '그 열매로 설사 네가 초능력을 가질 수 있다 해도 죽음은 피할 수 없으리라' 찰나의 시간 동안 삶과 초능력 사이에서 경중의 실랑이를 벌이던 나는 결국 찬란한 보랏빛깔이 주는 즐거움에 만족해야만 했다.

 우리 가족은 일제히 코를 막고 인상을 찌푸리기 시작한 건 입구를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우리의 코를 자극했던 유황 가스의 냄새는 우리의 발길이 가스의 근원지에 점점 가까워져 가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후각을 통해 전해지는 위험신호-태고의 조상으로부터 대대손손 이어져 뇌리에 박혀있는-는 눈앞에 펼쳐진 경이로운 풍경 앞에 무너져내리는 듯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갈수록 코를 찌르는 강렬한 냄새는 눈앞에 펼쳐지는 놀라운 풍경에 어느새 무뎌져 갔고 우리의 눈꺼풀은 쉴 틈 없이 깜박이며 난생처음 접하는 새로운 정보를 뇌에 차곡차곡 저장하고 있었다.

마치 세상을 물감으로 물들여놓은 것 같은 사진 속 세상

 걸어 들어가면 갈수록 더욱 기이한 세상을 접했던 우리는 지금껏 우리가 살아온 세상이 진짜인지 아니면 지금 있는 이 공간이 진짜 세상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장자의 상태 즉 호접몽을 꾸고 있는 듯했다.

이전의 일, 나 장주는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다. 희희로서 나비가 되어 있었다. 스스로도 즐거워서 마음 따라 팔랑팔랑 춤추고 있었다. 장주인 것은 완전히 염두에 없었다. 깜짝 깨어나니, 이게 웬 일, 장주가 아닌가. 그런데, 장주인 내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는지, 내가 실은 나비인데 지금 꿈에서 장주로 있는지, 어느 것이 사실인지 나는 모른다. 장주와 나비에는 확실히, 형태상으로는 구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체로서의 자신에게는 변화는 없고, 이것이 물건의 변화라는 것이다. -출처: 위키백과

 땅 속 깊은 곳의 마그마의 열이 전달되어 지표면을 뚫고 나온 온천수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을 보면서 이 장면은 현실이 아닌 허구라고 상상한 나는 문득 손을 저 물속에 담가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오늘 부로 뉴질랜드의 여행을 마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와우~ 언빌리버블~ 인크레더블~" 주위의 사람들도 연신 감탄사를 외쳐대며 신선한 충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다.

곤충이 산다.
아.보랏빛깔 열매는 영생을..

 여기저기 둘러보던 우리는 이곳에 서식하는 곤충 한 마리를 발견했다. 평소였다면 눈길 하나 주지 않았을 평범한 날벌레 녀석이었지만 오늘은 이 녀석의 존재감이 엄청나게 다가왔다. 이 녀석은 매일 유황 가스를 들이마시며 연두색으로 물든 저 뜨거운 호숫가에서 물을 길어 마시다 그 생을 마감하겠지? 산소가 풍부하고 먹거리가 다양한 저 푸른 자연 너머는 가보지도 못한 이 녀석에게는 이곳이 자연이자 삶 자체일 것이다. 

 외계 행성의 세트장, 붉게 물든 바닥에서 끓어오르는 온천수가 만들어내는 수증기와 윤기가 흐르는 보라색을 찬란히 빛내고 있는 어느 나무의 열매가 만들어내는 이색적인 분위기로 이 장소는 지구와 비슷한 환경의 어느 외계 지역일 것이라 상상해 보았다. 이곳에 사는 생명체는 우리 인류와 다른 환경에서 오랫동안 살아왔고 최근에 행성 탐사를 떠난 지구인에 의해 발견되었다.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의 오만함과 욕심으로 아메리카 대륙의 문명은 파괴되고 멸망하였지만 미래의 신인류는 그러한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지 않는다. 우리의 미래의 후손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며 새로운 행성의 인류와 공존을 선택하였고 그들로부터 초능력을 전수받아 황폐해진 지구의 자연을 다시 과거로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게 되며 두 생명체는 서로의 좋은 것들을 공유하고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 결과 우주의 미래를 짊어지게 될 사랑의 신인류가 탄생된다는 훈훈한 스토리로 그 상상은 마무리되었다. 


이 곳에도 생명은 싹을 튼다.

 이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푸르름은 어딘가에 존재하고 각양각색의 동식물들이 어우러져 생태계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제주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뿌리를 내리는 나무들과 같이 그리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어 낸 우리 선조들과 같이 우리는 환경이 주는 고통에 굴하지 않고 그에 대항하면서 유규한 세월을 살아 견디어 온 것이다. 그 인내로  버텨온 세월 동안 우리 인류는 수많은 위기를 통해서 진보를 거듭하였고 현재 이 세상을 지배하는 가장 성장한 영장류가 되었다. 이런저런 생각 속에서 뉴질랜드와 내가 살고 있는 아름다운 섬 제주도를 바라보면서 이제는 우리는 지속 가능한 진보를 위해서 지금의 자연을 보전하는 법을 배우고자 노력할 시점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생각해보았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아름다운 자연과 그 자연이 선사하는 충만한 감동을 머지않을 미래에 태어날 후배들이 몸 소 체험할 수 없게 된다면 어떨까? 그에 대한 책임은 응당 현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각자에게 신중하게 물어봐야 할 것이다. 

 현 경제 구조가 만들어낸 여러 가지 혜택이 주는 편안함으로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세상의 생명체에게 적지 않은 위험을 안겨주고 있다. 더욱이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우리나라는 개인의 과소비로 발생하는 잉여 비용으로 지구 반대편 수많은 가족들을 배고픔으로부터 구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을 잘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이웃들을 돌보며 살기보다는 우리보다 나은 사람들을 향한 욕망으로 더 많이, 더 높이, 더 멀리 가기를 구하고 있다. 심지어 지금 이 순간조차도 이 아름다운 자연을 만나게 해 준 것에 감사하기는커녕 더 많은 것을 누리기 위해 더 많은 것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짐을 고백한다. 

 앞으로는 나보다 잘난 사람을 질투하고 더 많은 것을 달라고 기도하기보다는 지금의 행복에 만족할 줄 알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다면 나보다 힘든 이들을 위해서 빵 한 조각을 때어 줄 수 있는 사랑을 달라고 기도해야겠다. 나 하나로부터 시작된 이 하찮고 작은 기도가 우리 모두에게 전염병처럼 전해지게 될 때에 우리의 지구는 지금 눈앞에 펼쳐진 자연보다 더 아름답고 가슴 벅찬 유토피아가 될 것은 노스트라다무스 할아버지가 아니어도 예견할 수 있는 선명한 지속 가능한 우리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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