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 취소로 나 홀로 졸업 연설
2020.02.25.
졸업식 자체가 취소되어 오래 지녀온 졸업 연설의 꿈을 이루지 못해(그리고 사실 성적순으로 하면 단상 데뷔 자격 미달이지만.. 당시 아쉬운 마음에 총장님에게 편지까지 썼던 기억이 있다.) 나 홀로 나는 학부 시절 이렇게 살았다. 를 작성해 보았다.
2015년 3월 이후로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처음으로 '경영학의 이해'라는 전공 수업을 듣고 동기들과 커리집에서 점심을 먹었던 입학 첫날부터 -혹은 고등학교 졸업식 다음날 사발식에서 처음 막걸리를 접한 그날부터- 오늘 이날까지 하루하루가 너무 생생해서 2020년 2월이 와버렸다는게 믿기지 않는다.
신입생 땐 새내기답게 출튀를 바탕으로 학교축제, 체육대회 등 최선을 다해 놀았다. 그리고 더 열심히 연애도 했다. 어색하게 선배들과의 밥약속을 다니고 동아리에 소속되어 기타 연주회도 했다. 지금 보면 별일도 아닌 것에, 혼자 속상해하다 동기 자취방 계단에서 굴러 한밤중에 응급실에서 턱을 꿰맨 일도 있었다. 크고 작은 일들을 겪고 맞이한 첫겨울 방학에 교환학생에 지원했다.
2학년이 되어선 학교 앞 병원이나 국제 행사 같은 곳에서 꾸준히 통번역 봉사를 했다. 바쁘게 지내다 여름 방학을 맞아 캄보디아 봉사활동을 다녀온 후 바로 교환학기를 위해 플로리다로 떠났다. 한 학기의 교환 학생 생활은 내 안의 많은 부분을 바꿔주었다.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고민할 환경과 시간이 주어졌고, 좁았던 생각의 틀도 조금씩 깨졌다.
한국에 돌아와선 유난히 외로웠다. 겨울 방학 동안 집에 틀어박혀 잠만 잤다. 학기가 시작하고서도 마음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중 동기가 학교 언어 프로그램으로 남미에 가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당시 선발 중이던 중국어 프로그램에 먼저 신청했다가 얼떨결에 여름방학 내내 학교에서 중국어를 배우고 한 달간 상해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같은 반 친구들과 온종일 함께하며 가까워졌고 이 계기로 사람 관계하는데 다시 편해졌다. 그 뒤로 가을학기엔 사람들과 더 가까이 지내기 위해 팀플이 많은 수업을 골라 들었는데 지금까지도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교육봉사는 대학 생활 내내 꾸준히 했다. 3학년 겨울 방학에는 삼성드림클래스에 참가하여 한 달 동안 성대 수원캠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수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반을 이끈다는 게 쉽지 않았다. 다른 선생님들과의 갈등도 있었고 독감이 심하게 돌아, 자고 일어나면 반 아이들이 한 명씩 퇴소했다. 여러 일들이 겹쳐, 퇴소 직후 개인적으로 공부하던 시험을 제대로 준비 하지 못해 스트레스성 장염으로 시험 전날 응급길에 실려가기도 했다. 그래도 드림클래스는 지금 생각해봐도 좋은 학생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행복한 추억이다.
졸업학년과 마주하고 싶지 않아 휴학을 했다. 그 기간 동안 갑자기 언어에 꽂혀서 토플, 토익, HSK, JLPT 등 계속 시험을 쳤다. 동시에 학교의 여러 언어 프로그램에서 활동하다 보니 반 년이 후딱 갔다. 당시에 매일 학교 과학도서관에서 공부했었는데 도서관 입구 포스터를 보고 베니스 교환이라니 신기하네 하고 지원했다가 다음 학기 유럽으로 떠나게 되었다. 신입생 시절, 이러다간 난 한평생 유럽에 가보지도 못할 거야 하면서 펑펑 울었던 일이 있는데 그 시절을 되돌아보면 이렇게 본격적으로 떠나게 된 것도 신기한 일이다. 여름방학중엔 오전엔 이대에서 수출입 공부를 하고, 오후엔 고대에서 이탈리아어를 배웠다.
유럽에서의 생활은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이었다. 지금도 사진첩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사진 한 장 한 장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이 그림 같은 골목 사이사이를 걸어 배를 타고 학교에 다니던 것도, 금요일만 되면 여기저기로 여행을 떠났던 것도 믿기지 않는다. 이번 주 여기 비행기가 20유로인데 다녀올까? 해서 매주가 가득 찼다. 유럽에선 누구와 지내지 않고 혼자 생각할 시간을 갖겠노라 이상한 다짐을 했었는데, 자연스럽게 소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비눗방을 속에서 동화 같은 꿈을 꾸다 폭하고 터져 현실에 떨어져 보니 피하고 싶었던 막학기였다. 돌아와선 전과 같은 우울감에 빠지지 않으려고 다양한 운동에 도전하고 오랜만에 해금도 연습해 무대에 섰다.
대학생활이 끝나간다니 이상한 욕심이 생겼다. 7학점 밖에 안 남았으면서 이제 와서 들어보고 싶은 수업이 많았다. 그래서 대책없이 막학기에 21학점을 신청해 들었고, 허덕이다 결국 1학년 때 그 학점을 받았다.(수 미상관) 학교생활 외엔 뭘 하지도 않았는데 그거 쫓아가는 게 그렇게 힘들었다. 와중에 정부 인턴 프로그램 에 지원해서 학기 직후 호주로 떠나야 했다. 이 과제 끝나면 저 팀플이고 그러면 기말고사고, 시험이 끝나면 나는 바로 출국해야 하고 그 후에 또 업무가 시작되겠지? 그러고나면 또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꼬리를 물어 발전을 위해선 개인의 행복보단 성실히 일하는 사람이 필요하니 성실하지 않은 사람의 인생은 도태된 것 마냥 치부된 건 아닐까까지 가버리니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쉽지 않은 마지막 학기를 마무리하고 인턴을 위해 시드니로 떠났다. 9개월의 첫 사회생활은 걱정했던 것보다 여유로웠다. 호주 전반적인 분위기도 그랬고 회사분들이 많이 도와주시기도 했다. 전엔 아이를 낳아 기르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없는데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을 이용해 한 달간 뉴질랜드 여행을 하며 처음으로 여러 생각을 하였다.
회사를 다니며 전공과 관련해 나의 부족한 점들을 많이 깨달았고 매일 개발자분들과 일하며 매출 데이터를 보다보니 IT, 그리고 데이터 분야에 관심이 갔다. 관련해서 더 공부하고자 호주 대학원들을 고려하다 자대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고3 때, 면접에서 대학 졸업 후 진로계획 질문에 대학원에 갈거라고 답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결국 이렇게 됐습니다, 선생님! 한국에 돌아 와선 이렇게 붕 뜬 시간 속에서 또 혼자 파고들게 우울하곤 하지만 앞으로는 그럴 시간도 없이 공부하게 되겠지. 아 개강이 두렵다.
내 인생에 방향성과 전문성은 여전히 결여되어 있지만 그 덕에 대학 생활 동안 이리저리 방황하며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스무 살 때까지 위로 쑥쑥 컸다면 지난 오 년 간은 옆으로 조금 넓어지지 않았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대학을 졸업하는 우리 사회에서 나의 지난 시간들이 대다수의 사람들과 별다를 건 없지만 처음 중학교를 진학했을 때부터 오늘의 졸업식까지,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을 포함해, 내가 얼굴조차 알지 못하는 분들까지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있었다는 것을 안다. 갈길이 멀지만 앞으로 항상 겸손한 자세로 많은 것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https://www.youtube.com/watch?v=OLDhaqosPtA
"나는 커서 어떻게 살까, 오래된 질문을 오늘부터의 매일이 대답해줍니다.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 그럴듯한 일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