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혼자 남아 그렇다오
목덜미가 뜨거울 정도로 내리쬐는 햇빛. 숙소를 나온 지 5분 만에 벌써 등이 축축해졌다. 뇌가 얼음이 가득한 커피를 고장 난 프린터처럼 계속 출력한다. 10분 거리 카페는 예쁜 아르바이트생이 친절해서 좋고, 한 블록만 더 가면 있는 카페는 거북이 같아서 귀여운 아르바이트생을 보는 재미가 있다. 어딜 갈지는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다. 아, 카메라 챙기는 걸 까먹었네. 돌아가기에는 너무 덥다. 일단 가야겠다.
공원 그늘 쉼터를 지나가는데 매미가 악을 쓰고 노래를 부른다. 꼭 비명 같다. 하긴 땅속에서 7년 가까이 독수공방하다 나왔는데 이렇게 더우면 화가 날 법도 하다. 게다가 앞으로 2주 정도밖에 살지 못하니 짝을 찾지 못하면 독신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눈알까지 힘을 바짝 주고 노래를 불러야겠지. 사람들이 비로 착각하곤 하는 매미의 오줌은 기구한 운명을 지닌 이들의 심술일지도 모르겠다. 무사히 쉼터를 지나가는데 저 앞에 있는 쉼터에서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야 이 새꺄! &$&*$& 내가 임마! 어!!”
그늘 쉼터에는 노인들이 많았다. 체크무늬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는 바둑 할아버지. 부채를 살랑살랑 흔드는 색 바랜 핑크 난닝구 할머니. 중얼중얼 신문을 읽는 코끝 돋보기안경 할아버지 등등. 그중 상의를 탈의한 대머리 할아버지가 눈에 띄었다. 누가 봐도 이 사람이 범인인 것 같다. 몸이 벌겋고 탁자 위에는 투박하게 박살 난 수박과 소주 여러 병이 보인다. 칼이 없어서 탁자 모서리에 내리찍어서 쪼개 먹은 걸까. 상남자 같다고 생각했다. 다들 삼삼오오 모여 앉아있는데 이 할아버지만 혼자다. 하긴 더위든 술이든 잔뜩 취한 사람 옆에 앉고 싶은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언뜻 봐도 아무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데 누구에게 저리 소리 지를까. 날도 더운데 참 기운차다. 뭔가 재밌는 영상을 얻을 것 같아서 휴대폰 카메라를 켜고 다가갔다.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 식! 다방에 앉아. 하!
도라지 위스키~ 한 잔~ 에다~ 짙은 색스! 폰 소릴! 들어보렴! 챠~싸!! 싸! ”
자연스럽게 지나가려고 하는데 할아버지가 번쩍 일어나 지팡이를 마이크 삼아 갑자기 노래를 부른다. 소리를 꺾으며 몸도 꺾는데 나름의 춤사위라고 추정된다. 웃긴 영상 소재를 찾은 것 같아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더 가까이 갔다. 무대매너가 상당히 적극적이다. 아무도 반응하지 않지만, 코앞까지 가서 반응을 유도하고 있다.
“새빨~간 립스틱! 나름? 어라.. 뭐야 임마!”
간만에 나타난 좋은 소재에 정신 팔려서 너무 티 나게 촬영을 해버렸다. 할아버지가 눈을 부릅뜨고 다가와서 휴대폰을 휙 낚아챘다.
“뭐 찍어, 임마 어? 뭐 찍냐고.”
순간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벙쪄있었다. 할아버지는 지팡이로 나를 찌를 듯이 휘둘렀고 얼굴을 코앞까지 들이밀었다. 모른척하던 주변 노인들이 흥미로운 일이 생겼다는 듯 쳐다보기 시작했다.
“어... 이거 지금. 어. 셀카 찍고 있었..어요..”
“뭐라는 거야.. 야 임마 뭐 찍었냐고..어? 나 찍은 거 아니여?? 이??”
더 가까이 다가오더니 손가락으로 가슴을 쿡쿡 찔렀다. 얼어서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자 의기양양해져서 이죽거리기 시작했다.
“뭔 말을 해봐.. 임마 어? 이 새끼가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았길래 막 함부로,.. 어! 임마 이거 초상인가 호상인가 그거 아녀? 경찰 불러? 어!”
‘가정교육’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당황감이 사라지고 화가 치솟았다.
“저기요. 지금 가정교육이라고 하신 거예요? 하.. 진짜”
“뭐 임마! 말대꾸를 하네? 어린 노무 새끼가 이씨.”
입맞춤이라도 할 듯이 얼굴을 들이미는데 입 냄새가 너무 지독했다. 적어도 5년은 양치를 안 한 듯한 냄새였다.
“아. 진짜 냄새 이씨.. 지울테니까 내놔요.”
냄새에 질려 화를 내다가도 대충 마무리하고 싶어졌다.
“뭐여?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 할 거 아녀. 쓰읍! 손 치워. 어히! 손 내려.”
“아.. 뭐 어쩌라고요... 하 진짜.... 뭐 하자는 거야 진짜..”
“돈 내놔. 돈. 3만 원.”
돈을 요구하는 술주정뱅이 할배의 눈빛은 뱀 같았다.
“아니 무슨..그냥 지우면 됐지 무슨 돈을 달래.”
단호한 표정의 할배는 침을 꼴깍 삼키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마치 힘을 모으는 듯이.
“뭐라고? 이 새끼 이거. 꺼져!! 경찰 부른다? 야 떨어지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할배. 이제 쉼터에 있던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공원 내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웅성웅성하는 사람들. 뭐가 됐든 빨리 이 상황을 끝내고 싶어졌다.
“아니.. 하.. 뭐 3만원 가지고 이래요. 줄게요 줄게. 빨리 휴대폰이나 내놔요. ”
“술 떨어졌으니까 그러지 임마. 이제 줄 생각이 든겨? 어차피 줄 거였으면 처음부터 응? 빠딱빠딱. 어? 하지 임마. 이씨 남자 새끼가..”
“아 알겠다고요. 현금 없으니까 일단 핸드폰 내놔요. 편의점에서 줄게요.”
상황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풀리자 할배는 변덕쟁이처럼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이죽이는 웃음. 열 받았다.
“에헤이~ 모든 일에는 다 절차가 있는 거야 이놈아. 일단 돈부터 줘야 할 거 아니여~ 잉? 자꾸 재촉할 거면 꼬추 떼라 임마. 이씨. 이히히”
주변에서 구경하던 한 할아버지가 꼬추 떼란 말에 빵 터져서 웃는 소리가 들렸다. 부끄러워 빨개진 얼굴, 수치스러웠다. 그리고 현금 없다는 말은 못 들은 건가.
“뭐라는 거야 이씨. 알겠으니까. 아! 핸드폰을 왜 거기다 넣어요!”
바지를 앞으로 당겨서 허리춤에 휴대폰을 넣는 할배. 구경꾼들은 무슨 시장통 공연을 보듯이 웃었다.
“바지에 주머니가 없으니까 그러지 임마. 남자 새끼가 별걸로 호들갑을 떨어 아무튼. 그냥 요즘 놈들은 이래서 문제라니까. 안 그래?”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며 놀림거리로 만들려는 할배. 진짜 때리고 싶다. 한 대만 때리면 속이 뻥 뚫릴 것 같았다. 더 상대하다가는 사고 칠 것 같아서 농담하며 낄낄대는 할배를 두고 혼자 편의점으로 출발했다. 안 따라오면 그냥 혼자 가서 아무 술이나 사 올 생각이었다.
“야 임마!! 같이 가야지. 하여간 싸가지가 ..”
너무 열 받아서 휙 돌아서 째려봤더니 할배는 놀라서 말을 멈췄다. 2초 정도 노려보다가 근처 편의점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욕이 입에 맴도는 걸 겨우 참았다. 도보로 10분 정도 거리에 편의점이랑 동네 마트가 있던 것 같다. 정확한 위치는 몰랐지만 대충 방향만 맞춰서 걷다 보면 보일 것 같다.
“야!.. 임마!.. 무시하냐?”
“아 뭐!! 뭐! 왜 부르는데!”
화가 좀 쌓이기도 했고 공원에서 빠져나와 주변에 사람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성큼 다가가면서 반말을 해버렸다.
“아니 이 새끼가 반말을.. 이 씨.. 아니 집에 뭐 두고 와서 가질라 가야된다고. 새끼야...”
깜짝 놀랐는지 끝말을 흐리면서 휙 앞질러가기 시작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빠르게 걸어가는 할배를 따라갔다. 할배는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굽이굽이 굴곡진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니 다시 화가 치솟았다.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지? 왜 이렇게 일이 귀찮게 커졌지? 모든 게 답답했다. 자책도 조금 들었지만 앞서가는 허리 굽은 못난이 할배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가장 컸다. 이 좁은 골목길, 보는 사람도 없을 테고 저 싹수없는 노인네의 기를 팍 죽이고 싶어졌다. 눈을 흉흉하게 뜨고 따라가는데 할배가 서서히 느리게 걸으며 거리를 좁혔다.
“ 얌마.. 늙으면 가장 힘든게 뭔지 알아? ”
“ 뭐래 씨발 진짜. ”
들리지 않을 정도로 욕지거리를 뱉었다. 머릿속에는 폭력적인 상상으로 가득했다. 뉴스 속보에 ‘xx시 xx동 xx골목 20대 청년, 노인 폭행 사건’ 같은 헤드라인이 나오는 장면이 떠올랐다.
“ 혼자 남는 거여 혼자. 여편네 먼저 가버리고, 자식새끼들 바빠서 찾아오도 않고..... 아무튼, 외로운 게 가장 힘든겨. 임마. 그러니까 주변 사람 잘 챙기고 살어. 소중한 줄 알고. 싸가지 없는 새끼야.”
중얼거리는 말투에 갈라지는 목소리가 너무 거슬렸다.
“야 이새끼야. 듣고 있는겨? 임마 너. 임마 이씨 내가”
“자꾸 새끼 새끼 하... 닥치고 그냥 가요 제발. 겨우 참고 있으니까”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것 같아서 끊어냈다.
“ 이 새ㄲ..다 왔어 다 아무튼 요즘 애새끼들은 그냥.”
색이 다 바랜 파란 철문의 초라한 집. 할배는 끼익 문을 열고 도망치듯 들어갔다. 좁게 열린 문틈 사이로 낡은 집이 보였다. 폐가가 아닌가 싶을 정도의 구형 주택. 벽돌 사이사이 틈이 벌어지고 곳곳에 거미줄이 있었다. 풀이 무릎 높이까지 무성히 피어있는 마당이 보였고 마당 중앙에는 무덤 같은 흙더미가 하나 있었다. 아니, 무덤 ‘같은’이 아니라 무덤이었다.
“저게 뭐야…?”
할배는 집으로 들어가면서 발걸음이 점점 느려졌다가 힘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도 모르게 좁은 문틈 사이로 관찰하고 있었다. 드르륵 탁. 발소리와 서랍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낡은 집 마당에 무덤이 있고 정신이 이상해 보이는 할배.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기도 하고, 잘못 걸렸다 싶기도 하고 뜨거웠던 머리가 서서히 식기 시작했다. 드르륵.
“아이씨 어딨는겨. 늙어빠져서 다 까먹어버리네. 뒤져야지 그냥. ”
문을 열고 나오는 할아버지는 발음이 정확해진 게 술이 깬 것 같았다. 현관문을 열고 나오다가 마당에 시선이 닿은 그는 마네킹처럼 굳어버렸다. 무서운 걸 발견한 듯한 얼굴. 귀신이라도 보이나 싶었다.
“...뒤져야지.. 그래... 혼자 남아서 뭐하나.”
토하듯 겨우 내뱉는 문장들. 눈을 꼬옥 감는 있는 그. 꼭 서 있는 시체 같았다.
“...”
“혼자 남아 그렇다오. 혼자..”
다 쓰러져가는 낡은 집, 마당 전체는 잡초가 무성하고 그 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무덤. 입구에 우뚝 서 있는 늙은 남자는 쓰러질 듯 구부러진 오래된 소나무 같았다. 두 눈에는 끈적이는 송진을 뚝뚝 흘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