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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Aug 01. 2024

손끝에 피어나는 생명력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 갔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여유조차 없어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이 전시가 눈에 띄었다. 예약 없이 갔는데 줄이 평일임에도 사람들이 꽤 많이 성황리에 모여들고 있었다. 4 개관으로 나눠 전시 공간에 들어가자마자 밝은 자수와 그림튀어나와 반긴다.


최근 자수를 회화와 더불어 미술사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자수를 놓기 위해선 교본에 맞게 여러 기법들을 연습하는 본도 있고 큰 작품을 만들 때면 그림을 그리 듯 밑 작업을 해서 작품을 완성했다. 화려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손으로 가느다란 실을 통해 한 땀 한 땀 바늘을 뗐을 걸 생각하니 그리는 것 못지않게 많은 시간과 노력, 미적 고려 등이 필요했을 거 같다. 가까이 보니 머리카락보다 더 가느다란 실들로 그림과 사진처럼 사실적인 묘사를 해 나갔다. 봉황이 날아오르고 사슴이 뛰어놀며 다람쥐가 마치 눈알을 굴리는 듯 아름다운 꽃과 더불어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첫 전시실엔 보료가 놓여있는데 방석이 얼마나 큰지 마치 거인의 엉덩이가 필요했나 싶다. 구한말 입었던 제복은 품위 있고 아름답지만 마치 55 사이즈의 남자 옷이라 할 정도로 품과 사이즈가 작았다. 옛 작품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역동감은 없지만 색과 실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아도 오랜 세월 빛바랜 모습이 은은한 기품 있는 색과 문양을 가졌다. 창의적이며 자연스러운 표현 또한 눈길을 끌기에 좋았다. 자수는 규방 문화로 알려져 있지만 조선시대 남자도 자수를 놓았단다. 글씨(한자)를 놓기도 하고 화려한 기물을 수놓기도 했다.


자수는 규방 여성의 전유물이었지만 고급 비단 실로 수놓아져 재력가가 아니면 접할 수 없던 문물이었다. 여성의 기술로 공예품으로 빛나고 미술과 창의, 회화로 빛을 발했다. 수놓아져 있는 꽃과 공작, 포도, 나무 등을 보면 실제 사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실물과 비슷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작품이 정말 아름답다. 숙명여고 학생들이 3년간 제품에 참여했던 "등꽃 아래 공작"은 거대한 작품으로 탐스러운 등나무 꽃과 걸어 나올 것만 같은 공작이 사질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광택과 음양의 조화가 있고 날개와 깃털 하나하나 살아 숨 쉬는 듯했다.


은은한 색과 화려한 궁중의 모란화는 색깔별로 화려한 꽃의 탐스러움을 병풍으로 제작했다. 부귀와 영화를 상징하는 모란은 이불, 보료, 베갯잇 장식으로 흔한 꽃이다. 아름답고 화려한 사실적인 자수뿐만 아니라 현대에 들어선 추상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도 있다. 손으로 시간 들여 실과 바늘을 꼬아서 만든 작품을 보면서 AI가 활동하는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그 가치가 남다를 것이다. 보기만 해도 "와" 하는 탄성과 가까이서 직접 보면서 정성을 쏟았을 누군가의 땀방울이 느껴지는 듯했다. 만든 이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한 자수전시회는 이번 주까지만 열린다. 좀처럼 보기 힘든 대작들이 많이 출품돼서 아주 좋은 기회다. 전시로 처음 선보이는 제품도 있다고 하니 꼭 보시길 추천드린다.


궁중자수 모란도 병풍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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