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절기가 있듯이 사람 감정에도 절기가 있습니다.
말씀하신 문장, **“끝은 허무할지라도 시작만큼은 긴장과 설렘이어야 합니다”**를 철학적으로 풀어보면 몇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습니다. 단계별로 정리해 볼게요.
시작에는 가능성과 잠재력이 담겨 있습니다. 철학자 하이데거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세계 속에 던져진 존재(Dasein)’로서 항상 선택과 가능성 앞에 서 있습니다.
시작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가능성의 장’이므로 긴장과 설렘이 자연스러운 상태입니다.
반대로 끝은 이미 결과가 드러나고 현실화된 순간이므로, 잠재적 긴장보다는 허무함이나 공허함이 남을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스피노자적 관점에서 보면 행위의 의미는 과정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시작의 긴장과 설렘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관심에서 비롯되고, 이는 인간이 시간을 경험하는 방식의 핵심입니다.
끝은 과정이 완성된 순간으로, 기대가 사라져 허무함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장 폴 사르트르는 인간이 본질보다 존재를 우선한다고 말했습니다.
즉, 행동과 선택 자체가 존재를 드러내는 순간이며, 그 순간에는 긴장과 설렘이 필연적으로 따라옵니다.
결과가 끝나고 나면 인간 존재의 ‘실존적 긴장’이 사라지고, 허무함을 느끼기 쉽습니다.
시작의 긴장과 설렘은 행동 동기이자 삶의 에너지입니다.
니체가 강조한 ‘삶의 의지(Wille zur Macht)’처럼, 인간은 미래 가능성을 향한 긴장 속에서 자신을 실현합니다.
끝에서의 허무는 이미 경험한 결과에 대한 반추이므로, 시작의 생동감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비록 끝이 허무할 수 있어도, 시작의 긴장과 설렘 속에서 의미가 창조됩니다.
시작하지 않는다면 끝도 없습니다. 철학적 의미에서, 시작의 에너지가 삶의 의미를 결정짓습니다.
따라서 시작의 긴장과 설렘은 삶과 행위의 본질적 조건입니다.
� 요약하자면:
**“끝이 허무할 수 있어도 시작은 긴장과 설렘이어야 한다”**는 말은, 인간 존재의 가능성, 시간적 경험, 실존적 동기, 의미 창조라는 철학적 측면에서 모두 타당합니다. 즉, 시작 자체가 삶의 에너지이자 의미의 원천이라는 뜻입니다.
제가 앞전에 전에 있던 회사를 다시 간다고 했는데 한 달도 안 돼서 퇴사를 하게 됐습니다. 저도 전에 있던 회사를 다시 들어가서 열심히 해보려 했으나 마음과 뜻대로 되질 않아서 참으로 아쉽기는 하지만 안 맞아서 그만두어야 했던 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이번 일의 끈은 그 과정이 오래되질 않아서 허무함이 좀 덜하였지만 그래도 좀 오랫동안 다니고 나름 거기서 저를 좋게 봐줘서 저 나름대로 정든 회사이고 이번에는 진짜 끝이다라는 생각에 상실감이 적지 않았습니다. 바로 요번 전에 다녔던 그 회사에서도 8,9개월 정도 다녔지만 그 회사 그만둔 바로직후에도 허무함이 많이 남았습니다. 정말 다닐 때는 열정적으로 열심히 하고 성실히 다닌다고 저 나름 노력을 한만큼 정말 모든 일의 끝에는 성취감보다는 허무함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살다 보면 모든 일의 시작은 긴장과 설렘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지만 반면 그 모든 일의 끝에는 성취감도 성취감이지만 허무함이라는 감정이 더 클 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 허무함의 정도는 그 해당되는 그 일의 과정 속에 있으면서 정말 열정을 다하고 열심히 할수록 그에 비례해 그 정도는 커지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그 일의 과정 속에서 진행을 하면서 지속시간이 다른 일에 비해 짧거나 열중하는 정도가 작으면 성취감도 작아지고 그러면서 허무함의 감정도 작아지기 마련입니다. 직장인이 회사를 다니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경우에도 매사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어떤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 얼마 전에 수능이 치러지긴 했지만 수능이라는 큰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 속에 있으면서도 정말 진지하게 열심히 공부하고 최선을 다할수록 값진 점수를 가져다주긴 하지만 그런 성취감도 잠시 또 사회에 나가게 되면 계속 관문을 통과하여야 하는, 다르지만 똑같아 보이는 그런 인생을 결정하는 그러한 과정을 헤쳐나가면서 사회인으로 나가면 매사 시작은 항상 긴장을 놓치지 말고 또 한편으로는 정말 잘되겠다 하는 희망의 기대에 부풀어 오르고, 설렘을 겪은 후 또 과정이 끝나면 허무함이 반복되는 그러한 인생의 굴레 속에 사는 걸 체감하게 됩니다. 그러한 반복의 과정을 통해 살아나가는 것이고 우리는 성장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만둔 지 하루이틀 만에 구직활동을 통해 회사를 다시 가게 됐습니다. 지금도 글 쓰는 와중에 아니나 다를까 방금 채용하는 회사담당자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내일 출근하는데 변동사항 없냐고 그러면서 제가 부탁드린 거 20가지 복리후생리스트 좀 보내달라고 다시 부탁을 했습니다. 회사 안에 좋은 복리후생을 알고 있어야 제가 열심히 회사 다니는 좋은 동기부여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입니다. 참고로 제가 내일부터 다닐 곳은 미국 시애틀에 본사가 있는 구글 협력사의 한국지사에 참고서 서울이 아닌 안양에 있습니다만 어쨌든 내일부터 무탈하게 잘 다닐 수 있어야겠다는 긴장과 설렘이 동반된 감정하에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회사 다니느것에 대한 끝은 지금은 전혀 상상되지도 않은 지금 상황에서 저는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보다는 그래도 크지 않지만 나름 한 번쯤 다녀보고 싶은 외국게회사를 다닌다는 생각에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기대에 부풀어 글을 쓰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렇게 회사규모가 크진 않지만 장기근속하면 본사견학과 여행을 지원해 준다는 복리후생을 가지고 있고 그런 복리후생을 가지기 위해 사내 영어동호회가 있다고 그러는데 실제 내가 외국으로 가든 안 간 든 간에 그러한 복리후생을 갖추고 있다는 회사를 간다는 생각에 잘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되고 의지감을 갖게 해 준 건 다름 아닌 회사이기도 합니다. 모든 일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도 하지만 그 끝은 언제 끝날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러한 과정이 얼마나 지속될지도 모르기에 전 지금 현재 시작지점에 있기 때문에 현재에만 집중하여야 하기도 합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고 끝이난 다하더라고 그 끝은 시작과 같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의 끝은 성취감은 잠시뿐 허무함이 더 큰 걸 알기에 아니 허무함이 전부라는 사실을 알아도 그래도 시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기도 하고 시작하려면 그저 그렇게 안 좋게 시작하는 것보다 긍정적인 기대감을 가지고 약간의 긴장과 약간의 설렘 그리고 잘해야겠다는 의지를 가지면 일의 중간과정은 그리 나쁠 것 없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해는 동쪽에서 뜨고 서쪽에서 해가 지듯이 해가지면 하루의 끝은 별거 없구나 또 하루가 갔네라고 별거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또 얼마 안 있으면 새해가 시작되고 새해 해맞이행사를 기대에 부풀어 나름 소원을 빌면서 희망차게 시작을 하고 한 해의 끝이 지면 다사다난했던 해의 마무리를 짓듯이 우리네 감정도 생각도 그 시작과 끝의 시기에 맞춰서 돌아가는 것도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어쨌든 저도 이성적으로 일의 끝은 성취감보다는 허무함이 온다는 걸 알고 있지만 저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의 본능이기에 현재 시작과정에는 희망찬 회사생활을 기대하며 힘든 일이 있어 고비가 오더라도 지혜롭게 견뎌낼 수 있도록 마음에 품게 됩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과 인생 돌아가는 패턴은 항상 반복되듯이 그러한 상황에 맞춰서 감정의 끝은 허무할지라도 모든 일의 시작은 긴장과 설렘으로 가득 차여야 하는 것은 우주의 절기가 있듯이 사람의 본능에도 감정의 절기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