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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May 21. 2021

노르웨이에서는 뭐 먹고 살아? 1편

아침과 점심: 샌드위치, 연어, 그리고 치즈에 대하여

노르웨이의 식문화는 한국만큼 발달하지 않았다. 언젠가 적었듯 높은 물가에 외식을 비교적 자주 하지 않는 경향도 있고, 전통적인 음식 메뉴가 있긴 하지만 특별한 명절에 먹지 매일 먹지는 않기 때문이다. 유럽이니까 어렴풋이 주식이 밥대신 빵이라는 것 쯤은, 그리고 북유럽이니까 이케아에서 파는 미트볼 비슷한 걸 먹겠다는 것 정도는 누구나 알테지만, 이번에는 어떤 걸 어떻게 어떤 때에 먹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차갑고 가볍게 먹는 아침과 점심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는 많이 달라졌지만, 한국에서는 모름지기 밥, 국, 반찬을 놓고 먹는 것이 "끼니"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노르웨이에서는 아침과 점심 식사는 차가운 음식을 먹는 것이 보편적이고, 아침과 점심 메뉴에 큰 차이가 없다. 특히 여기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이렇게 차갑고 가벼운 점심을 먹는 데 평생 익숙해진다. 급식이 아니라 각자 점심 도시락으로 주로 샌드위치 같은 것을 싸가지고 가기 때문이다. 가정에서도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 정도 되는 아이들은 스스로 도시락을 싸 가도록 가르치고, 젊은 직장인부터 어르신들까지 모두 다 그렇게 도시락을 만들어서 가지고 다닌다. 그렇다면 도시락으로는 주로 어떤 것을 싸 가지고 다닐까?


노르웨이식 샌드위치, smørbrød


노르웨이에서는 우리가 잘 아는, 그 빵이 양 쪽에 있는 샌드위치를 자주 만들어 먹지 않는다. 노르웨이식 샌드위치는 smørbrød, 영어로는 open sandwich로, 빵을 양쪽으로 닫지 않고 한 쪽만 준비하여 연 채로 먹는 것이다. 노르웨이어로 smør는 버터이고 brød는 빵임을 생각하면 그냥 기본적으로 버터를 바른 빵에 뭐 다른 것을 재량껏 얹어 먹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노르웨이식 샌드위치는 아침과 점심, 그리고 저녁을 5-6시 쯤 먹고 나서 자기 전 밤 8-9시 경에 먹는 조촐한 야식 (kveldsmat)을 준비할 때 애용된다.


노르웨이식 샌드위치 (smørbrød)를 담은 흔한 도시락 (matpakke). 사진 출처: bramat.no


빵 위에 얹어먹도록 나온 여러가지 전용 토핑을 pålegg [포올렉] 이라고 하는데, 그런 여러가지를 얹어 열린 샌드위치를 한 손으로 잡고 먹는다. 메인 메뉴를 다 먹고도 꼭 볶음밥을 볶아 먹는 민족에게 빵쪼가리에 치즈 두 어장을 얹어서 먹는 것이 끼니라고 하면 황당할 수 있다. 그러나 사진에 있는 간단한 smørbrød가 생각보다 흔하긴 해도 매일 딱 저렇게만 먹는 것은 아니다. 여러가지 올려 먹을 게 사실 많기 때문이고, 시간과 정성을 쏟으면 더 아름답고 그럴듯한 도시락 (matpakke)을 만들 수 있다. 노르웨이어로 Mat[마앝]은 음식, Pakke [팍께]는 포장이라는 뜻으로, 도시락을 일컫는 말이다. 


좀 더 그럴듯하게 점심 먹는 법 예시 (matpakke). 사진 출처: meny.no/tema/matpakke/


빵에 얹어먹는 토핑, Pålegg


토핑의 종류는 여러가지이고, 무엇을 어떻게 함께 먹느냐가 관건이다. 우선 고기 쪽으로는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칠면조 등을 편육으로 만든 햄 종류나 (노르웨이어로 skine. 사진 한 중간 아래 쪽에 있다), 페퍼로니와 같이 썰린 소세지나 살라미 종류, 그리고 소금에 절이고 건조하여 얇게 저민 하몽과 비슷한 햄 (dry-cured ham; 노르웨이어로 spekeskinke)가 있다. 


그리고 쭉 짜서 발라 먹는 튜브 안에 담긴 것들도 많은데, 가장 흔한 것은 베이컨이나 햄 맛이 나는 치즈 튜브 (Skineost/ Baconost), 할라피뇨치즈 (Jalapeńoost), 그리고 훈제 향이 나는 짜서 먹는 생선알 kaviar 등이 있다. 이 생선알 캐비어 튜브는 처음에는 꽤 비리다고 생각했지만 먹다보니 감칠맛도 있고 오메가3도 풍부하여 떨어지지 않게 사다놓고 먹고 있다. 특히 삶은 계란을 썰어 빵 위에 얹어서 캐비어를 함께 짜 먹으면 정말 맛이 있다. 


끼니를 위해 빵에 곁들여 먹을 수 있는 pålegg 예시. 사진 출처: nrk.no

이것 외에도 현지에서 많이들 먹는 pålegg 중 하나는 Leverpostei (영어로는 Liver paste) 이다. 한국어로 한 마디로 번역하자면 돼지 간 페이스트 정도? 순대 간을 빵에 얹어서 슥슥 발라먹을 수 있을 정도의 점도로 부드럽게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주로 캔에 담겨 있거나 은박의 용기에 담아 파는데, 약간의 훈제 맛과 감칠맛이 곁들여져 있으며 철분 등의 필수영양소를 많이 함유하여 아이들이 많이 먹도록 권장한다. 이 돼지 간 페이스트는 오이와 함께 곁들어 먹으면 맛있다.


비슷하게 캔으로 판매되고 예상외로 꾸준히 높은 수요를 자랑하는 것이 바로 Makrell i tomat 이다. 이는 영어로 Mackerell in tomato, 한국어로 토마토 소스에 빠진 고등어랄까? 이건 정말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데 나에게는 꽤나 호인 음식이다. 솔직히 교실같은 데서 점심 먹을 때 밖에서 따서 먹으면 실내에 생선 냄새가 나고, 혹시라도 옷에 묻으면 냄새 뿐만 아니라 얼룩이 잘 지워지지 않을 수 있어 까다로운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캔에 있다 보니 남기게 되면 다시 집에 가져가기가 어렵기도 한데, 집에서 먹으면 괜찮다. 


Makrell i tomat (토마토 소스와 고등어). 사진 출처: stineskoli.blogg.no/1447154449_nesten_som_godteri.html


이 토마토에 빠진 고등어 캔 뿐만 아니라 돼지 간 페이스트 둘 다 워낙 오랫동안 노르웨이 사람들을 지켰던 음식이고 널리 먹다 보니 열린 캔에 남은 음식을 그대로 냉동 보관할 수 있도록 캔 모양에 맞추어진 전용 뚜껑을 판매하기도 한다. 특히나 남편은 한 pålegg에 꽂히면 정말 그것만 몇 달동안 먹는 경향이 있는데, 작년부터 이 토마토에 빠진 고등어 캔에 빠져서 매일 한 캔 씩은 먹은 것 같다. 물론 중간에 햄, 치즈, 캐비어 등을 먹긴 하지만 이 토마토 고등어를 거의 주식으로 매일 먹었는데, 그 전에는 돼지 간 페이스트를 몇 달 동안 먹었었다. 요즘은 햇볓에 말린 토마토 (sundried tomatoes/ soltørkede tomater)에 꽂힌 듯 하다. 그것과 함께 상추 종류의 야채 (crispisalat; 이건 영어도 한국어도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햄과 치즈를 곁들여 매일 먹는 것 같다.


소개한 제품들 이외에도 시중에는 정말 많은 pålegg이 존재한다. 개인적으로 최애 조합을 좀 소개하자면, 마요네즈에 비트를 곁들여서 꾸덕하게 만든 비트샐러드 (rødbetsalat)와 상갓집 돼지머리편육(...)과 아주 비슷한 편육인 Sylte를 함께 먹는 것. 이 sylte 편육은 크리스마스 즈음하여 특히 많이들 먹는데,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시즈닝인 정향 (clove, 노르웨이어로 nellik), 계피 (시나몬 cinnamon), 육두구 (nutmeg; muskat), 팔각향 (star anis; stjerneanis) 등을 넣은 크리스마스 버전의 Sylte가 출시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정말 더 맛있다고요! 


연어를 빼놓을 수 없지!


훈제 연어 (røkt laks). 사진 출처: oda.com

노르웨이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연어. 아무래도 연어의 나라인 만큼 여기서는 연어를 차갑게도 뜨겁게도 많이 먹는데, 한국의 식당에서 쉽게 사이드로 볼 수 있는 훈제연어샐러드는 사실 여기서 많이 본 적이 없지만 훈제연어를 빵에 얹어 먹으면 정말 맛있다. 사진과 같은 훈제 연어 (røkt laks)를 사면 보통 얇고 긴 조각으로 미리 썰어져 있는데, 이것을 빵과 먹을 때 가장 많이 먹는 조합은 역시 계란이다. 훈제 연어가 꽤나 짭짤하기 때문에 계란후라이나 스크램블드 에그, 썰은 삶은 달걀을 곁들여 먹으면 좋다. 그리고 쪽파나 허브의 일종인 딜 (dill)이 연어와 정말 궁합이 잘 맞는데, 특히 크림치즈를 빵에 발라서 훈제 연어를 얹은 뒤에 파나 딜을 곁들여 함께 먹으면 금상첨화. 


혹시 노르웨이에서 연어를 사서 먹고 싶은데, 아니면 기념으로 집에 가져가고 싶은데 뭘 사야 할 지 모르겠다면 막간의 꿀팁! "Røkt"는 훈제(smoked)라는 뜻이고 "Laks"가 바로 연어(salmon)의 노르웨이어 이름이다. 생연어는 모두 Laks라고 써 있고, 회나 초밥으로 먹을만큼 싱싱한 연어 제품은 Frøya나 Salma라는 브랜드에서 판매하는 생연어 덩어리를 사면 된다. Laks라고 쓰여 있어도 네 덩어리로 잘려 있고 은박으로 된 용기에 담겨 있는 것들은 생으로 먹기에는 부적합하고, 대신에 오븐에 굽거나 후라이팬에 구워 먹기에 알맞은 것들이다. 


하지만 생연어는 냉장보관이 필요하니까 아무래도 여행 후 기념품이나 선물로는 알맞지 않다. 그럴 때는 앞서 말한 훈제연어 "Røkt Laks"를 사면 짜기 때문에 한국까지 비행기 수하물로 가는 시간 정도는 거뜬히 견딜 수 있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여러 브랜드 중에서도 해산물로 유명한 Lofoten의 지역 이름이 써 있거나 Troll 이라는 브랜드가 고급진 편이다. 한 블라인드 테스트에 따르면 Fiskemannen도 좋긴 하지만 다른 브랜드보다 살짝 더 짠 편이라고 하니 참고하시길 (출처: bramat.no/forsiden/tester/2343-bramat-tester-rokelaks-i-skiver). 

훈제 송어 (Røkt Ørret). 사진 출처: rema.no/fiskeriet/produkter/palegg-saus-og-smaretter/

한편, 연어처럼 붉은 살을 지녀 겉보기에 굉장히 흡사한 Ørret이라는 생선이 있는데, 이는 송어(trout)이다. 연어와 비슷하게 훈제 송어 (Røkt Ørret)도 있고, 생으로 먹는 덩어리는 없지만 구워 먹는 용으로 잘라서 파는 Ørret이 있다. 사실 가격이나 맛에 있어서 얘네들이 연어보다 한 수 위인데 한국에서는 그닥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송어가 오븐에 익혀 먹었을 때 풍미가 더 강하고, 좀 더 촉촉하면서 살이 연어보다 탄탄(?)하고, 붉은 색깔도 연어보다 짙다. 내 입맛에는 훈제 송어가 연어보다 덜 비린 것 같기도 한데, 연어보다 풍미와 향이 좀 더 강해서 비린내를 덜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연어가 보다 만만하게 먹을 수 있는 편이라면 송어는 먹을 때 약간 특별한 느낌? 한 번 시도해 보시라. 강추. 



치즈와 유제품에 진심인 사람들: 브라운 치즈 좋아해요?


노르웨이 사람들은 자국의 유제품, 특히 우유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신랑에게 물어보니 시니컬하게 "다른 나라에서 우유 마셔봤어?ㅋ"라고 대답할 뿐 딱히 설명은 해주지 않았다... 나는 사실 유당불내증(lactose intolerance)이 있어서 그 맛있다는 오리지날 우유의 맛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는데, 유당을 제거하고 만들어진 락토프리 우유와 버터, 크림 등으로만 디저트를 만들어도 정말 맛이 기똥찬 것을 보면 원래 버전은 얼마나 맛있을까 상상할 수 있다.

유제품 브랜드 TINE에서 만든 브라운 치즈: Gudbrandsdalsost. 사진 출처: gardenandtable.net

그런 노르웨이 사람들이 노르웨이에 온 지 얼마 안 된 외국인들에게 항상 물어보는 것은 "Brunost 먹어봤어요? 그거 좋아해요?" 라는 것이다. 노르웨이의 특산품인 갈색을 띄는 치즈에 대한 질문인데, 노르웨이어로 brunost이고 대체로 브라운 치즈라고 불린다. 사실 브라운 치즈는 우유에서 치즈의 성분인 단백질과 지방 성분을 빼고 남는 유장(whey)이라는 것으로 만들어진 것이라서 엄밀히 따지자면 치즈가 아니다. 하지만 치즈를 만드는 사람들이 만들고, 치즈와 맛이 비슷한 데다가 치즈 먹듯이 먹을 수 있어서 치즈라고 한다. 소의 젖으로 만들어진 버전과 염소의 젖으로 만들어진 버전 (노르웨이어로 Geitost)으로 나뉘는데, 가장 유명한 브라운 치즈는 소와 염소의 젖 그리고 약간의 크림을 합쳐서 만든 Gudbrandsdalsost이라는 것이다. 맛은 달짝지근하고 부드러운 편이며, 염소 치즈에서 나는 그 특유의 구린(?) 향이 살짝 난다. 개인적으로 맛 자체는 좋아하지만 내가 소화할 수 없는 유당이 유난히 많이 들어있는 탓에 거의 먹지 않는다. 최근 노르웨이의 한 유제품 브랜드 시노베 (Synnøve)가 한국에 진출하면서 조금 더 알려지고 있다. 그들이 브라운치즈와 함께 판매하는 것이 와플인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노르웨이에서 먹는 따뜻한 음식들을 소개하면서 다시 쓰도록 한다. 



몇 년 전 오슬로대학교에서 공부하던 어느 날, 교내 카페테리아에서 

En god deal! Rundstykke med ost og skinke 25kr! 
(놓칠 수 없는 찬스! 치즈와 햄을 곁들인 모닝빵 샌드위치 단 돈 25 크로네!)

라고 쓰인 입간판을 보았다. 물론 rundstykke가 모닝빵보다는 좀 더 속이 꽉 찬 조그마한 빵 (breadroll)이긴 하다만 고작 손바닥 딱 반 만한 빵에 치즈 두 어 장과 햄 한 장을 올려서 학생들에게 3000원 짜리 점심 메뉴로 팔고 있는 것을 보고 당시 나는 기함을 했다. 정작 남편은 "이거 정말 좋은 딜인데 왜 그러냐"며 황당해 했고, 나는 솔직히, 아직까지도, 작은 빵에 치즈만 얹어 먹는 건 끼니라고 납득할 수 없다. 하지만 변한 것은 나도 이제 알바하러 갈 때 간단하게 만든 점심 도시락을 가지고 간다는 것. 단순히 치즈와 햄보다는 좀 더 다채롭게 준비하긴 하지만 이젠 아침에 미리 점심 도시락을 싸는 것도, 점심에 차가운 음식을 먹는 것도 많이 익숙해졌고, 짧은 시간 내에 가볍고 쉽게 바로 먹을 수 있는 게 편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성비 최고인 국밥은 그립지만, 그래도. 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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