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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Feb 10. 2021

오슬로에 살다보면

내가 좋아하는 도시의 디테일 (Covid-19 edition)

오슬로에서 산 지 4년 차. 이제는 막연하게 '집'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곳이 이 도시가 되었다. Covid-19 때문에 사람들과의 교류가 줄고 마음가는 대로 나다닐 수 없게 되었다. 반복되는 매일의 리듬에 무감각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추운 날씨 덕분에 옷깃도 마음도 꽁꽁 여며놓았다. 흔치 않게 해가 나는 오늘은 그래도 한 템포 쉬어가며 오슬로를 이방인의 눈으로 살펴본다.



영국에서 발견된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가 보고된 이후 웬만한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 경제적으로 부담이 커 이대로 유지할 수는 없으니 쇼핑몰이 아닌 작은 가게들은 지난 주부터 문을 열도록 허용하고 있다. 그래도 식당 내 주류 판매는 여전히 금지이고, 실내에서 2m 간격을 유지할 수 없을 경우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며, 그런 규제 때문에 애초에 식당에 앉아서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확연히 줄었다. 몸 사이 마음 사이 늘어난 거리이지만 날씨가 화창하면 무조건 밖으로 나가는 것이 노르웨이 사람들이다. 

가장 '힙'한 구역인 Grünerløkka의 한복판. 출처: 내 사진첩


오슬로에는 아직도 전차, 그러니까 트램 (노르웨이어로는 trikk)이 다닌다. 속도가 빠르지도 않고, 소음도 꽤 심하고, 기온과 기후 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예상치 못하게 정차하는 경우도 많지만 이상하게도 누구나 트램을 타는 것을 좋아한다. 그 낭만 때문인 것 같다. 흔들흔들 앉아서 천천히 거리를 둘러볼 수 있는 여유, 그리고 아주아주 오랜 시간동안 도시를 누벼온 산 증인이라는 느낌, 보수 관리를 위해 사람 손이 참 많이 가는 무식하지만 다정한 도시의 친구랄까. 트론하임 (Trondheim)의 경우 현대화라는 명목 하에 트램을 모두 없애고 트램이 다니던 트랙도 아스팔트로 덮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도로 곳곳에 그 트랙이 드러나 있는 경우가 많고, 좁고 깊게 파여 있는 트랙이라 가끔 자전거 바퀴가 끼이면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어서 결국 안전을 위해서도 미관상에도 좋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고 한다. 그래도 오슬로에서는 웬만한 시내를 트램으로 다닐 수 있다.


집 근처 Økern T-bane 지하철역. 출처: 내 사진첩


이 사진에서 두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휠체어와 유모차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게 경사로가 있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얼음이 이상한 모양으로 녹아있다는 것이다. 오슬로의 버스와 지하철역에는 모두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고, 건물을 지을 때도 휠체어와 유모차의 접근 가능성을 반드시 담보해야 한다. 버스가 정차하면 문이 있는 쪽으로 기울어질 수 있고, 필요할 경우 버스 운전자가 버스 바닥에 설치 되어 있는 경사로를 펼쳐 승객의 승차를 돕는다. 그리고 길을 걷다 보면 가끔 한 군데만 눈이 이상하게 녹아있는 것을 볼텐데, 그것은 그 안에 열선이 설치되어 있어서 그렇다. 미끄러져 다칠 확률이 높은 노약자를 위해서 통행량이 높은 지하철역이나 시내에는 눈이 녹을 수 있도록 곳곳에 열선이 깔려 있다. 


Carl Berners plass에 있는 로터리. 사진 출처: dagsavisen.no/oslo/utskjelt-firkantkjoring-ble-suksess-1.1044750

오슬로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지만 한국과는 크게 다른 점이 바로 로터리 (영어로 roudabout; 노르웨이어로rundkjøring) 이다. 교통체증을 확연히 줄일 수 있고 교통량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데다 신호에 의지하지 않고 상황을 잘 살펴야 하기 때문에 교통사고를 예방하기도 해 아주 큰 성공이라고들 이야기 한다.  이 사진에 나와 있는 Carl Berners plass의 로터리는 특히나 트램 정류장이 있고 근처에 큰 버스 정류장이 두 개나 있어서 교통량이 항상 많은 곳이지만 로터리 덕분에 혼잡하지 않게 이용할 수 있다. 그리고 본인과 같은 뚜벅이들에게는 버스가 어디서 언제 오는지 잘 보이기 때문에 편리하기도 하다. 


빌려타는 전기차. Bybil. 사진 출처 visitoslo.com

아주 가끔씩만 차가 필요한 뚜벅이들에게는 아주 유용한 Bybil. 빌려쓰는 전기차로 서울시의 따릉이처럼 앱을 이용해 빌리고 타고가 가능하다. 비용은 1분에 6크로네 (약 680원)으로, 길게 빌리는 것보다 도시 내에서 그닥 크지 않지만 무거운 물건을 옮길 때나 대중교통으로 가기 까다로운 곳에 가야할 때 쓰면 아주 편리하다. 공공주차장에는 아무데나 세울 수 있고, 가끔 배터리가 낮은 경우 전기차 충전소에 주차해야 하는데 그럴 때는 일부를 포인트로 돌려받을 수 있다. 환경친화적이고 경차라서 부담없이 이용할 수 있는 아주 애정하는 서비스.


노르웨이는 자연이 정말 아름답다. 도시 안에서도 그렇다. 한국에서 휴가를 보낼 때마다 가장 그리운 것이 10-15분만 걸어도 만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풍경이다. 풍경 자체도 그렇지만 주변에 다른 인간이나 자동차가 부재함에서 오는 조용함과 고즈넉함이 나를 채워주는 느낌이 든다. 이 사진은 동네에 있는 공원의 개천인데, 날씨 맑은 날 해가 질 무렵인 3-4시에 가면 그렇게 예쁘다. 

Bjerkedalen (비에르께달렌) 공원. 출처: 내 사진첩

기술의 발달 속도보다 인간 몸의 진화속도가 현저히 느려서 그렇던 아니던 간에, 현재의 문명과 삶의 양식이 우리 인간의 몸에는 큰 스트레스를 준다. 거북목이나 요통 등 자세 질환도 그렇고 공황장애 같은 스트레스 관련 심리적 문제는 이제 아주 흔해졌다. 이렇게 쓰라고 만들어진 몸이 아닌 것이다. 자연의 초록색이 가장 스트레스 해소와 안정감을 주는 데 좋은 색깔이라서 방을 옅은 초록색으로 칠해야겠다고들 하는 세상이다. 숨이 차오를 때, 고심하는 문제의 답이 보이지 않을 때, 물 흐르는 소리와 눈 밟는 소리를 들으며 차가움을 온 몸으로 느끼는 게 도움이 된다.


노르웨이 의회 (Stortinget) 건물. 출처: 내 사진첩

한국에서는 3월이면 꽃샘추위가 시작되고 봄이 온다고들 하지만 오슬로에 아직까지 봄이 올 기미는 없다. 초록색과 꽃이 그득한 여름의 사진들을 보면서 그 때의 따스함과 더운 공기의 냄새를 기억한다. 예전의 일상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불확실함에 흔들리기도 하지만, 마스크와 손세정제를 챙겨 다니고 멀찍이 떨어져 걷는 게 익숙해진 'the new normal'의 일상 안에서 소중한 사람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의회 근처의 공원. 출처: 내 사진첩


우리 삶에서 포기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해 왔는지, 우리가 사는 곳이 그대로의 지구이기 위해서 얼마나 큰 변화를 필요로 하는지 전 세계가 몸살과 죽음을 함께 겪으며 실감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이전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환경친화적인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오슬로는 조만간 Ring 2 구역을 차 없는 도시로 만들기로 확정했다. 나는 또 내가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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