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엄마가 싫다

by 까만코

서른다섯이 되니 결혼 안하냐는 질문을 배로 듣고 있다. 그리고 몇 해만 더 지나면 아무도 안물을 것 같은 느낌적 느낌.

나는 결혼을 하고 싶은걸까? 사실 잘 모르겠다. 오래된 남자친구가 있지만 둘중 누구도 당장 결혼해서 삶의 패턴이 바뀌는걸 원하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고 결혼 얘기를 안하는건 아니다.

나이도 나이지만 사람들이 자꾸 물으니 무의식중에 자주 고민하게 된다. 나는 결혼생각이 없는걸까 있는걸까. 그렇다고 비혼주의는 아닌데. 아무리 고민해도 뾰족한 이유를 잘 모르겠다로 생각은 끝나고만다.


나는 평일엔 직장 근처에서 자취를, 금요일엔 본가로 넘어와 주말을 보낸다. 보통 일요일 점심까지 집에서 얻어먹고 돌아가는 허기진 자취 직장인의 삶.

금요일 저녁마다 먹고싶은 메뉴를 상다리 부러져라 차려오는 엄마의 정성은 감동적이다. 제손으로는 밥을 차려먹지 않는 어른이는 엄마가 죽으면 누가 나에게 밥을 차려줄지 생각해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없는 것같다. 꼭 레시피를 받아둬야지 오늘도 다짐만 했다.


엄마의 밥상은 감동적이지만 엄마와 밥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는 늘 어딘가 모르게 거슬리는 지점이 있다. 운동화에 다글다글 굴러다니는 돌멩이 조각 처럼 아무렇지않다가도 인식하는 순간 견딜수없어지는, 결국 운동화를 벗고 꼭 빼내버리고야 마는, 치명적이진 않지만 반드시 벗어나고 싶은 불편함이다.


우리 아빠는 내가 어렸을때 늘 엄마를 때렸다. 내 최초의 기억은 아빠가 때려서 나를 데리고 집을 나온 엄마가 데려간 여관 방 이불을 매만진 것이다. 흰색과 자주색이 섞인 색감과 비단결 같은 생생한 촉감이 어린 나에겐 인상깊었던 것 같다. 거기에 엄마가 내뱉는 무겁고 퀘퀘한 공기까지. 이제와 생각해보니 폭력과 가난이 난무하는 불우한 집의 냄새와 공기를 아직 내가 나인지도 모르는 아메바 수준의 어린 내가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 같다. 그에 대비한 쨍한 이불이 충격적이었을지도.


아무튼, 맞은건 엄마인데 나는 왜 엄마를 싫어할까? 물론 엄마는 나를 때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빠한테 맞는 엄마는 나를 때렸고 나의 어린시절은 아빠한테 맞는 엄마를 보는 나로서의 스트레스와 엄마한테 맞는 나로서의 두려움과 공포로 점철돼 있었다.


하지만 나를 때려서 엄마가 아직 싫은건 아니다. 내가 진짜 엄마가 싫었던 건 엄마의 손과 발이 아닌 입 때문이다. 아빠가 엄마를 때리면 엄마는 맞으면서도 끊임없이 욕을 했다. 아빠를 향해, 이 지긋지긋한 상황에 대해. 어린 나는 때리는 아빠를 말리는 대신 엄마의 입을 막았다. 엄마가 욕만 그만해도 이 끔찍한 시간이 조금은 빨리 끝날테니까.


가정폭력과 가난으로 힘겨웠던 엄마는 성미가 팍팍했다. 기침을 심하게 한다고 등짝을 맞아 소리를 참으며 기침했던 순간은, 그날 썼던 미피마스크와 함께 내 기억 한켠에 저장됐다. 늘 큰소리와 짜증을 일삼았으며, 딸을 데리고 나간 밖에서도 자주 그런 태도를 보였다. 어린이대공원에 다같이 갔던 날, 롯데리아에 햄버거를 사러 갔다가 주문 후에 화장실이 고장난 걸 알게된 엄마는 점원에게 거세게 항의하여 어린 나를 불편하게 했다.

심기가 불편해진 엄마는 결국 햄버거 값을 지불했지만 안에서 앉아 먹고 싶진않았나보다. 거리에서 서서 햄버거를 먹으라며 강요 했고, 그게 부끄러워 울던 어린나에게 울지말라고 발로 차던 표독스러운 발길질이 잊히질 않는다. 그 순간 가족끼리 놀러나와 지나가던 사람들의 충격받아하는 눈빛들까지 모두 나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을만큼 끔찍한 기억이다.


고등학교 때 아빠가 집을 나가면서 우리집에서 폭력은 사라졌다. 내가 대학에가고 공무원이되면서 엄마는 삶의 팍팍함에서도 벗어났고 이제는 자기보다 사회적 위상이 높아진 딸에게 점점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아이러니 했다. 사람은 경제권을 쥐면 가정 내에서도 지위가 올라가는구나. 저렇게 조심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깨달았다.


엄마의 기분에 따라 짜증듣고 기분이 안좋으면 폭력까지 당했던 내가, 이제는 도리어 짜증 내며 엄마를 혼내는 이 전세역전의 상황.

어릴때 나도 죄없이 당했으니 이제는 늙은 엄마가 당하는게 맞는걸까? 폭력가정에 태어나버린 나는 부모에 대해 쌓아온 원망을 털어버릴 겨를도없이 사회에나와 늙은 엄마를 마주했다. 직장에서는 직장인으로 1인분을 하면서 딸의 역할까지 해야하는 나에게, 이제 본인은 늙었고 그때는 인생이 너무 팍팍해 그랬다며 미안하다 사죄하는 엄마. 직장인 딸이 돌아오는 날마다 정성스레 밥을 차려내는 엄마.


효를 중시하는 이 사회에서, 용서를 구하는 엄마를 완전히 용서하지 못하고 짜증낼때마다 느껴지는 이 미묘하고 콤콤한 죄책감..

결국 요즘에는 ‘나중에 엄마가 죽으면 결국 장례식에서 나를 원망하며 슬퍼할 미래의 나’를 위해서 라는 명목하에 엄마에게 효도하려 노력하고있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나는 엄마가 싫고 엄마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특히 싫다. 남자친구와 그 가족들에게 나아갈 엄마의 말들이 벌써부터 부끄럽다. 괄괄하고 명랑하고 억척스럽고 엉뚱하고 큰 목소리의 엄마의 말들. 엄마의 말들을 듣고 그들이 우리엄마를 부끄러워할까 두렵다. 하지만 우리엄마를 배척하는 누군가와 내가 가족이 될 순없을 것 같다. 정작 나는 지레 겁먹고 부끄러워하는 주제에.


운동화의 돌멩이는 알고 보니 발바닥 깊숙히 박힌 티눈이었나보다. 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다시 자라나고 자라나 발 안쪽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야만다. 발바닥을 까발려야하는 상황에서는 나의 약점이자 부끄러움이 된다. 내 인생 한켠에 자리잡은 이 단단한 굳은살은, 언제까지 남아있을까? 굳은살이 박힌 내가 결혼을 해서 좋은 아내와 엄마가 될수있을까?

우리엄마와의 굳은살도 극복하지 못하고 아직까지 싫어하는 내가, 누군가와 새로운 가족이 될수있을까.


결혼하라는 엄마의 말에 차마 이만큼 솔직할수는 없어 , 아직 잘모르겠다, 고만 대답하는 서른 다섯 어른의 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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