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윈도 교활함이고, 크리스마스도 교활함이다. 직장생활이나 사업도 교활함이고, 대부분의 경우 가정생활도 교활함이다. 그 교활함을 생선 가시 바르듯 발라내야만 한다. 그러지 못하면 인생 자체가 수십 년짜리 교활함 인증서일 뿐이게 된다. 아무리 순수한 물도 교활함이라는 썩은 오물이 한 방물만 섞이면 더러운 물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교활하다는 소리를 듣고 기분 좋을 사람 없다. 백이면 백, 아니 구십구 명은 언짢아 하기 마련이다. 자신 안에 교활함이 가득하다는 걸 영혼이 알아서 발끈하기 때문이다. 교활함이 없는 사람은 누구한테 교활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교활함은 이중성이다. 두 마음이고 두 얼굴이며, 겉 다르고 속 다름이다. 누구는 위선이라고 부르고, 누구는 부캐라고 부른다. 교활함의 중심에는 ‘비밀’이 있다. 비밀은 교활함의 씨앗이고 양분이다.
세상은 교활함을 권장한다. 할로윈이라는 켈트족 인신공양 명절과 태양신 아폴로의 생일인 크리스마스를 이용해 스스로를 높이고 욕망을 채우라고 떠민다.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뉴스에서, 수십 년간 줄기차게 그래왔다.
문화 행사를 즐기는 거니까 얼마든지 재밌게 노세요. 이날만큼은 파격적인 복장도 하고, 자신있는 신체 부위를 노출도 좀 하고, 그저 축제를 즐기는 척 하면서 얼마나 많은 이성이 나를 흘깃흘깃 욕망하는지도 좀 보고, 괜찮은 이성과 눈이 맞으면 술을 핑계삼아 즉석 교미도 해보세요. 만약 커플이라면 얼마나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커플인지를 마음껏 자랑하는 틈틈이 재주껏 눈요기가 가능합니다. 그저 축제 분위기를 즐기는 척, 문화인인 척 하기만 하면 이 모든 숨겨진 욕망을 채울 수가 있답니다.
이런 교활함은 세상 모든 관계에, 모든 말과 행동에 적용된다. 외톨이가 되는 것이 두렵거나 인싸이고 싶다면 친구가 될 만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척, 우정하는 척 여러모로 챙겨주면 된다. 같이 먹고 놀 상대가 필요해서, 같이 어울리면 내가 더 빛이 날 것 같아서 친구가 되었을 뿐이란 사실은 비밀로 하고, 넌 진정한 내 사람이라고 주문을 외듯 말해주면 된다. 우정의 민낯은 직장을 잃거나 파산을 하거나 암에 걸리면 마치 썰물 진 갯바닥처럼 드러나지만 그런 일은 티비에나 나오는 거니까 괜찮다. 진실 보다는 기브 앤 테이크지. 기브 앤 테이크가 곧 진실이지, 한다. 그저 겉으로 우정인 척 하면 된다. 마음속 깊은 곳의 비밀 따위를 누가 안다고.
자식이 ‘잘 되는’ 게 진짜로 자식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내 프라이드를 위해선지는 중요치 않다. 겉보기에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자식만이 모든 희망인 사람이면 될 뿐. 내가 먼저 진실된 사람이 되어 자식이 그걸 배운다면 어디 가서 무얼 해도 떳떳하고 당당하겠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될 테니까 굶어죽지도 않겠지, 무엇보다 진실된 사람, 좋은 사람이 되어가겠지, 라는 생각 따위는 안 한다. 아무래도 동창회 같은 데 가서 자랑할 정도는 되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또아리를 틀고 어디 안 가니까. 주위에서 보는 것도 있고 하니까. 자식이 척척 졸업하고 취업하고 결혼해서 남부러울 것 없는 자식이길 원하는 게 무슨 부끄러운 일이란 말인가. 그런 것들을 양심이니 진실이니 하는 것들보다 조금 앞세워 실속을 챙긴들 무엇이 문제란 말이냐. 다 그러고들 사는데. 아무리 강변해도, 자식의 출세를 간절히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교활함이란 걸, 응당 자식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만을 바라야 한다는 걸, 영혼은 안다.
교활함을 발라내자면 작은 일에도 큰 일에도 ‘한마음’이어야 한다. 입으로 원한다고 말하는 것과 마음속으로 원하는 것이 정확하게 일치해야 하고, 그 저변에 깔린 다른 마음이 없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매시 매분 매초 교활해지려는 마음을 오랏줄로 묶어서 의금부 앞마당에 무릎꿇려야 한다. 부캐가 없는 단일 캐릭터여야 하며, 무엇보다 비밀이 없어야만 한다. 비밀이 있는 사람은 모든 말과 행동의 배경에 ‘비밀이 탄로나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이 숨어 있다. 그러면 반드시 어느 순간에는 교활한 거짓말이나 연기를 하게 되고, 그건 다시 또 하나의 비밀이 된다. 교활함은 비밀을 낳고, 비밀은 교활함을 훈육한다.
단언컨대, 교활함을 버리지 않은 채 남들 눈에 좋은 사람처럼 비춰진다면 그건 저주다. 괜찮은 이성과 원나잇 하고 싶다고 떠드는 사람이 안 그런 척 하면서 뒤로 하는 사람보다 백번 낫다. (그래서 난 평판을 믿지 않는다.) 친구한테 툭 터놓고 넌 내 병풍으로 모양새가 나와서 참 좋아, 이용 가치가 있어, 라고 말하는 사람이 넌 내 사람이야, 하는 사람보다 백번 낫다. 그들은 오염된 마음의 때만 빼면 되지만 아닌 척 하는 사람들은 교활함 덕에 스스로 때가 없다고,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그렇게 봐주니까 진짜 그런 사람인 양 스스로를 속인다. 교활함이 주는 착각은 지옥으로 난 고속도로다.